이끼 세트 - 전5권
윤태호 지음 / 한국데이타하우스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어느 외진 시골 축축한 밤에 한 사람이 숨을 거둔다. 이장을 위시하여 마을 사람들은 시신을 확인한다. 그리고 숨을 거둔 류형목의 하나뿐인 아들에게 전화를 하여 장례를 치르라 지시한다. 때마침 그 아들이자 주인공인 류해국은 수사기관의 비리와 자신의 명예를 위해 싸우느라 직장과 가족에게 버림을 받고 자신이 살던 곳에서 벗어나고자 하던 차에 평소 왕래가 없었던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서울을 떠나 그 마을로 들어가게 된다.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받고 세상을 피해 그 마을에 정착하려하는 류해국과 그런 류해국에게 강한 위화감과 거부감을 품은 이장과 마을 사람들 간의 사건들이 펼쳐지게 된다. 


이끼라는 인터넷 만화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단 것을 보니 연재 당시 이 만화의 인기를 알 수 있었다. 특히 마을 공동창고에서 야밤에 류해국이 전구를 켜는 장면에서는 온갖 추측들이 난무하였다. 전구에 구멍을 뚫어서 필라멘트가 산화했다느니, 수명이 다 된 전구를 마을사람들이 미리 바꾸어 놓았다느니……. 참 웃겼다. 그리고 거의 매회 마다 이런 장면은 이것을 의미한다면서 혼자만 깨달은 듯이 잘난 척들을 해대는 꼴이란 참 가관이었다. 정치적으로만 연결시키려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이장의 제목이 ‘이 새끼’, ‘이장 새끼’의 줄임말이라는 재탕 삼탕을 우려먹는 사람도 있었다. 
 

다른 건 제쳐두고서라도 왜 제목이 이끼인가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렇다. 이끼는 해가 잘 들지 않고 음습한 지역이면 세상 어느 곳에나 있다. 이 마을에서 일어나거나 마을사람들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이, 특수한 사건들이 많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건들이 이 세계 어느 곳이든지 존재하는 일들이다. 인류가 존재한 이후로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 같은 전쟁·살인·매춘·강간, 국가 발전과정에서 생기는 정경유착, 돈과 권력에 의해 정립되는 논리와 정의, 그리고 온갖 비리들. 이끼를 지구상에서 없애버리기 위해서는 온 세상을 평평하게 만들어서 그늘을 없애고 물을 없애야 하는데 이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만연해 있는 이런 것들을 없애기는 불가능하다. 사람이 있으면 사회와 조직이 형성되고 그 조직 안에서는 위계가 있고 권력이 생기고 비리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이치다. 더구나 그 조직이 커질수록 정도는 심해질 뿐이다. 여하튼 이래서 이 만화의 제목은 이끼가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의 생각이 나와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느끼는 바가 나의 정답이니까.
 

이야기 중간에 마을 사람들의 일화가 나오는데,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사정을 보여주고 그것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인 줄 알았다. 특히 이성규의 죽음을 알리는 이장과 이성규의 부인의 통화 장면은 가슴 한구석이 턱 막혔었다. 서울에서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이성규의 부인은 예전에 화재사고를 겪었던 매춘여성 중 생존자였던 것이다. 나는 마을 사람들이 과거에 어떤 사정이 있어서 잘못된 길로 들어섰지만 잘못을 뉘우치고 자기들끼리 열심히 살고 있었는데, 매번 의심하고 확인하는 것이 천성인 류해국이라는 낯선 이가 마을에 들어옴으로 인해서 불안과 갈등을 겪으며 점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절대선과 악의 구도 아니라,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사람의 세상사는 이야기일 것이라 기대하고 좋아했었다. 일본 만화 ‘몬스터’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런 나의 기대는 마을 공동 소유인 영지라는 여자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강간과 무자비한 횡포, 절대 악으로 비춰지는 천영덕 이장으로 인해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덕분에 마지막 장면인 '화룡점정‘이라는 장치적 도구는 관심도 없어졌다.

하지만 어쩌면 이러한 결말은, 피도 눈물도 그리고 양심까지도 없는 천용덕 이장을 위시한 마을 사람들의 만행이 우리 사회에서 일말의 양심도 없이 정치 행세와 권력을 휘두르는 윗대가리들의 위선이라고 꼬집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끼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도 말이다. 이끼를 박멸하는 것은 우리들의 요원한 미래며, 영원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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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0-10-30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거 영화도 안보고 만화도 안읽어서 어떤 내용인지 감이 안오네요. 그런데 이끼가 그런 의미이군요. 그럼 제가 좋아할 것도 같은데.. ^^

oppa 2010-10-30 15:45   좋아요 0 | URL
허어억~ 초라하디 초라한 제 서재에 오신것도 모자라 댓글까지 남겨주시다니~ ㅠㅠ
쑥스럽네요. 다른사람이 제가 쓴 글을 읽었다는 적나라한 증거라서.^-^;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제 서재의 첫 댓글이십니다!! ㅜ^ㅜ

아이리시스 2010-10-30 21:38   좋아요 0 | URL
뭐 트로피나 부상 그런 건 없나요? 상금도 좋구요.ㅋㅋ

2010-11-02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2 0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2 0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