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카반의 죄수
질풍노도의 시기에 나는 무엇을 했던가?
극중 실제 주인공들이 너무 성장한 탓에 다소 어색할 수 있지만, 해리는 13살이다. 반항적이고 심술궃다. 3편보다 5편에서 이런 심리적 상태는 명확하게 나타난다. 3편은 전주에 불과하다. 5편에서 부모님의 청소년기 시절을 시리우스에게 듣게 된다. 3편과 5편의 이런 저런 까닭에 연관성이 있다.
해리는 고아다. 불쌍하다고 생각하기에 너무나 유명하고 신비스럽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이해와 평가가 엇갈릴 수 밖에 없다. 작가 롤링이 학부모들에게 비난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그녀가 쓴 작품이 환타지물이긴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성장소설이다.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을 여의고 이모의 손에 자란 아이의 불우한 일생을 담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그는 시대의 악마 볼트모트를 무찌른 영웅이다. 겨우 십대에 해리가 겪어야 할 삶을 영웅심이나 모험심으로 치부하기엔 지나친 감이 있다.
이전 편까지는 무슨 일인지 모르고 지나왔지만, ‘아즈카반의 죄수’ 부터는 학교에서 배운 것을 써 먹기도 하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이 편을 기점으로 든든한 후원자를 만나게 된다. 비록 볼트모트와의 숨막히는 혈전이 없어 형식적인 면에서 떨어질지 모르지만 전체 흐름을 위해 중요한 요소들과 복선이 담겨있다.
원작이 존재할 경우 그에 충실할 것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전적으로 감독의 능력이다. 1, 2편의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이 전자라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후자다. 물론 능력의 우위를 따지고자 한 것은 아니다. 해리포터는 분명 재미와 흥미만으로 치부하기엔 아쉬운 점이 많다. 2시간 이내에 책의 모든 것을 영상으로 담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보다 많은 여백과 뉘앙스를 남겨두는 것이 좋다. 게다가 시리즈물이 아니던가? 해리포터의 작품세계는 청소년물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어둡고 침울하다. 그런 면에서 1, 2편의 감독 선택은 흥행을 위한 보증수표 같은 것이었다. 쿠아론 감독이랑 4편의 마이크 뉴웰 감독을 지명한 것은 원작에 충실한 작품을 기대해 봄 직하다.
주인공을 맡은 아이들의 성장을 미루어 볼 때 5편을 미리 찍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그나저나 롤링 여사의 책 쓰는 양과 속도가 예전과 다름이 다소 걱정스럽다. 이제 물러설 수도 없는 탓에 그녀의 부와 명성은 오히려 무거운 짐이 된 탓일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