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가운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
루이제 린저 지음, 박찬일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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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3일 평화도서관 발표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 가운데』를 읽고
     
 
 
“진리 찾기는 비자발적인 것의 고유한 모험이다. 사유하도록 강요하고 사유에 폭력을 행사하는 어떤 것이 없다면 사유란 아무것도 아니다.”(G. 들뢰즈, 『프루스트와 기호들』, 서동욱 옮김, 민음사, 2005, 143쪽.)
 
이 책 『삶의 한 가운데』(박찬일 옮김, 2005, 민음사)의 저자인 루이저 린저는 과연 가브리엘 마르셀의 평처럼 “현대의 가장 뛰어난 작가 중의 하나”임을 의심할 수 없었다. 또한, 과연 헤르만 헤세의 극찬처럼 이 책은 “순수하고 기품 있는 독일어”의 정수를 보여준다. 
 
실제로 이 소설은 무엇보다도 단단한 문장력이 압권이다. 낭만적 멜로가 남발하는 공허한 명언들이 아닌 성숙한 안목을 배태한 잠언적 문장들로 충만하다. 뭐랄까, 죽음을 이겨낸 사람의 초인적 모습이랄까. 아니면 죽음을 겪어 본 사람의 담담한 인간적인 모습이랄까, 그런 뿌리 깊은 인격의 문향이 물씬 배어 있다. 그렇기에 문장과 이야기의 고샅 곳곳에는 인생과 사랑에 대한 탁월한 지혜가 부끄러운 듯 숨어 있는 보석처럼 함장돼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슈타인이 여성 같고 오히려 니나가 남성 같다는 점, 니나가 사랑(슈타인)과 이념(퍼시) 중에 결국 이념이 맞는 사람을 선택했다는 점. 그러나 불륜과 강간으로 점철된 불행한 결혼. 그 불행한 결혼의 끝에 결국 퍼시를 향해 “[…]나는 당신이 나의 복잡함이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하는 만큼 당신의 단순함을 싫어해요.”(330)라며 환멸로 종언을 선언하는 장면 등등이 눈에 띄었지만, 책을 다 덮고 난 다음에는 ‘니나의 언니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어느새 내 상념을 점령하고 있었다. 
 
니나의 언니가, 슈타인과 니나의 도저한 사랑과 자유를 향한 열망의 대서사를 우리들 일반 독자들의 눈을 대표해서 읽고 있다고 느낀 것일까? 그러니까 나는, 니나의 언니는 니체적인 의미에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우리들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느낀 것일까? 
 
슈타인의 편지를 읽으면서, 그리고 니나와의 대화에서 니나의 언니는, 우리들 일반독자처럼,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숨겨진 소망을 말하기도 하고, 이들을 통해 점차 깨어나는 자신의 은닉된 본 모습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니나가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 사실은 이 여러 자아 가운데 하나의 자아만을, 미리 정해져 있는 특정한 하나의 자아만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지만.”(78)라고 말하자, 언니는 “그래. […] 가끔 우리는 선택이 아주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될 때가 있지. 혼자 있을 때, 자신의 내부에서 어떤 것이, 자기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는 거야. 우리는 그것을 보지.”(78, 강조는 인용자)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언니는 “사실은 지금 이 순간까지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78) 대화/책읽기를 하면서 하게 된 것이다. 아마 이런 게 대화나 책읽기의 의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니까 대화나 책읽기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자기가 억압해 왔던 저 깊은 심연에 매장된 본래적 자신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슈타인의 글과 니나의 말에 점점 빠지게 되면서 언니는 “처음으로 나는 슬픔도 재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233)고 고백한다. 모험과 좌절, 도전과 슬픔 등이 결여된, 철저하게 안락한 世人의 삶과 생활만을 추구해온 자신을 반성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언니는 “지독한 슬픔이 나를 엄습해 왔다. 위로를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예전처럼 산다는 것이 갑자기 불가능한 일처럼 생각”(268)되어 두렵다. 결국 “왜 내가 계속 마음 한 구석이 무너진 상태로 있어야 하는가. 나는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며칠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잊어버려야 하리라. 나는 이렇게 많은 결단, 체념, 죽음과 같은 느낌들을 참아낼 수 없다. 나는 니나가 아닌 것이다. 나에게는 나의 인생이 있다.”(269, 강조는 인용자)라며 다시 안락이 보장된 世人으로 복귀하고 만다. 
 
그렇다, 나는 니체가 아닌 것이다. 나는 헤라클레이토스가 아닌 것이다. 나는 스피노자가 아닌 것이다. 나는 왕충이 아니고 나는 이탁오가 아닌 것이다. 나는 안중근이 아니고 나는 전태일이 아닌 것이다. 나는, 나는, 나는 아닌 것, 아닌 것, 그들이 아닌 것이다! 
 
“내가 우는 것이 슈타인의 지난 고통과 니나의 엄청난 이별 때문만이 아니라, 나 때문에 그리고 축축하고 촘촘한 회색빛 그물에 얽혀 있는 인간들 때문에 우는 것이라는 것을. 대체 누가 그 그물을 찢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370)
 
언니의 이러한 슬픔과 회의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모르겠다. 정말 나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슈타인과 니나의 ‘위대한’ 혹은 ‘뜨거운’ 삶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찢어버릴 수 없다”고 말하는  언니의 말이 과연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책읽기/대화의 변증법이 여기서 폐제(廢除)된 게 아닌가 하는 혐의가 든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의 내 삶의 양태에 의문을 촉발시키고 환기시키는 데 문학 혹은 책읽기의 존재이유가 있다면, 다시 말해서 헤라클레이토스가 “보리음료도 젓지 않으면 분리된다”(『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옮김, 아카넷, 2005, 248쪽.)고 한 것처럼 지속적인 초월적 강타에 소통의 존재이유가 있다면, 언니의 저 말은 내게 루이제 린저의 절망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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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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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리뷰는 공정성을 위해 정창환의 '얼굴여행'에도 실었다.)

 

이 소설집 달려라, 아비에는 매일 밤 이런저런 온갖 잡다한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증 환자를 다룬 단편이 있다.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가 바로 그 작품인데, 그녀는 매일 저녁 털, 퀴즈, 팬티 등 딴에는 하찮은 일들이 자꾸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래서 직장에서도 실수가 잦아 미운털이 박혀 있다.

 

아마 여주인공의 얼굴형은 형상의학에서 신과(神科)라고 말하는 역삼각형일 가능성이 높다. 신과의 특징을 거의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삼각형인 신과(神科)는 생각이 많아서 우유부단한 경우가 많다.”[정창환, <얼굴여행>, 도솔, 25.] 주인공인 그녀가 가장 많이 하는 것은 더 이상 생각하면 안 된다는 생각[김애란, 그녀에겐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달려라, 아비, 창비, 2006, 87. 이하 쪽수만 표기.]일 정도로 온갖 잡념에 시달린다. 또한 그녀는 뭔가 선택하거나 결정해야 할 때마다 곤혹을 치르[90]는데, “그녀는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처럼 느껴[90]지기 때문이다.

 

신과는 잘 불안해하고 그러다 보니 신경이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다. 신경이 예민하여 감정적으로 상처를 잘 받고, 그로 인해 병을 얻는 수가 많다. …… 자신이 만든 화로 인해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잠이 안 들어서 또 화가 난다. 그러면 잠을 더 못잔다.”[얼굴여행, 24.]

여주인공 역시 어떤 빛도 어떤 소음도 없는 상태에서[라야] …… 숙면을 청할 수 있[106]을 정도로 민감하다.

그녀는 옛 애인이 자기보다 다섯 살 어린 여자와 사귄다는 소식을 듣고 잠 못 들고, …… 친구에게 빌려줬다 받지 못한 이만원 때문에 잠 못[93]든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주인공은 말로는 이것 역시 그녀가 잠 못 드는 진짜 이유는 아닐 것이다.”[92]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화가 난 상태인 듯하다. 분노로 가득 차 있는데도 스스로 그걸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않으려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매일 밤 잠 못 들면서, 매일 사람들과의 관계에 상처받으면서도 그녀는 서럽게 울지도 모르고 어쩌면 한번 더 자세를 틀며 진짜 이유 같은 건 없어라고 중얼거릴지 모른다.”[111] 이런 증상이 심해지면 정신질환을 앓을 수도 있다고 한다.

 

또한 신과의 사람은 성질temper'이 나쁜데 자신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해서 성격character’이 나쁜 것이[얼굴여행, 30. 강조와 영단어는 인용자. 이 책의 저자는 성격은 인격적인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것이고 성질은 인간적인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라고 한다.]라고 한다. 여주인공인공 스스로 고백한다. “불면의 가장 큰 이유가 자신의 성격일 때문일 것이라[90].

이런 타입은 불() 기운이 강한데, ()의 성질은 단단하게 굳힐 줄만 알고 부드럽게 굽힐 줄은 모르기 때문에 매사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똑똑 끊어지듯 날카롭게 행동한다.

아닌 게 아니라 여주인공은 아버지가 매일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견디다 못해 아버지가 화장실에 간 사이 가위로 텔레비전 유선을 싹둑 잘라버렸다.”[102] 그러고는 잠시 후에 자신이 실수를 한 것 같[103]고 후회를 한다.

 

여하간 신과는 불()이 많다. ()기인 불이 너무 많으면 음()기인 물이 부족해진다. 그 결과로 양기는 상체로 몰리고 음기는 하체로 몰려 하체가 약해져 다리의 병이 잘 생긴다. “옛날 남자친구가 자신의 다리가 발목만 얇다 하여 닭다리라고 놀렸던[108].일이 있었다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유독 발목이 얇은 것이다. 여주인공의 다리가 닭다리인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유장상법에는 족경무육足脛無肉 이라 하여 종아리 쪽에 살이 없는 상을 남녀모두 천()한 상으로 보고 있다. 여자의 경우, 특히 살림을 못한다고 나와 있다.

여주인공은 다행히 발목만 얇다. 상학(相學)에서 손목이나 발목이 가녀린 경우는 귀격(貴格)에 속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신과는 머리가 좋고 총명하며 매사에 꼼꼼하고 분명하게 행동한다는 큰 장점 또한 가지고 있다.  참고로, 경험상 편인태과나 정편인혼잡격들 중에 신과가 많다.

 

신과는 백 가지 보약이 편한 마음 한 가지만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얼굴여행, 26.] 뭔가를 억지로 하거나 서둘러서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신과에게는 걷기와 명상이 가장 좋은 요법(療法)이라 한다.

 

---심심풀이 삼아 써본 글이지만 쓰면서도 신기해 나도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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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러시아 고전산책 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고일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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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다가오는 무섭고 얄미운 죽음만이 유일한 진실이었고 나머지는 죄다 거짓이었다.”(90)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모험은 강상중 교수의 <살아가는 힘>을 읽고 나서였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들을 그래서 섭렵하게 되고 이 책까지 읽게 되었다.

 

최근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읽다보니 <이반 일리치의 모험>이 중요한 예로 등장하고 있어, 다시 한번 이 책을 들춰보게 된다.

 

이번에는 역술가의 입장에서도 보게 되었다.

 

그가 죽을 병에 걸리게 되는 결정적인 장면이 이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반 일리치는 남들에게 화려하면서도 고상해 보이는 집안 장식을 원한다. 그래서 직접 일꾼들을 거든다. 그러다가 작은사고가 일어난다.

 

한 번은 이해를 못 하는 도배공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보여주기 위해 사다리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뎌 미끄러진 적도 있었다. 다행히 건장하고 행동이 민첩해 굴러떨어지지는 않았고 옆구리를 액자틀 모서리에 부딪히는데 그쳤다. 부딪힌 곳은 무척 아팠지만 통증은 곧 가셨다.”(46)

 

부인의 지나가는 걱정에, “난 이래 봬도 한가락 하는 체조선수야. 다른 사람이라면 큰일 났겠지만 난 여기에 부딪히는 데 그쳤어. 건드리면 아프긴 해. 하지만 뭐 괜찮을 거야. 멍든 것뿐이야.”(47)

 

 

하인리히 법칙처럼 모든 사고는 작은 혹은 눈에 잘 잡히지도 않는 사고로 먼저 발생한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즉 노자가 말한 것처럼 見小曰明, 즉 작을 것을 볼 줄 앎을 현명한다고 한다고 한다면, 바로 이 작은 사고가 큰 사고를 예고하는 무의식이란 절대지의 경고였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델포이의 신탁의 주재자는 말하지도 감추지도 않고, 다만 징표를 보일 뿐이다.”(헤라클레이토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아카넷, 2005, 235-236)

 

멈추고 바라 볼 줄 아는 힘의 상실, 명상과 침묵의 부재가 우리에게 징표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잠재의식에서 느끼는 불안을 타조처럼 모래 속에 머리를 박는 것으로 우리는 흔히 외면한다. “뭐 괜찮을 거야.”라며.

 

분명 잘못된 욕망이었고, 잘못된 길을 가고 있었던 이반 일리치. 다행히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 전체를 반성하며 본래적 의미를 되찾긴 했지만,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아쉬운 맘 들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경우, 저 심심막측한 잠재의식 속에서 불안의 진동이 가늘게 떨려오고 있음 정도는 알고 있다. 그것을 밖에서 알려주는 것이 징표와 융의 용어로 하면 동시성 혹은 촉매적 외화현상이다.

 

역술의 많은 분야들이 바로 이 촉매적 외화현상으로 징표를 만들어 내 찾아내고 있다. 몰입해 퇴락한 에고를 잠시 가라앉히고 개인무의식과 집단무의식을 뚫고 들어가 한 점으로 쫄아든 자기를 찾아내 말()로 그 뜻을 알려주는() ()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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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여행
정창환 지음 / 도솔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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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의 유명한 소설집 달려라, 아비에는 매일 밤 이런저런 온갖 잡다한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증 환자를 다룬 단편이 있다.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가 바로 그 작품인데, 그녀는 매일 저녁 털, 퀴즈, 팬티 등 딴에는 하찮은 일들이 자꾸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래서 직장에서도 실수가 잦아 미운털이 박혀 있다.

 

아마 여주인공의 얼굴형은 형상의학에서 신과(神科)라고 말하는 역삼각형일 가능성이 높다. 신과의 특징을 거의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삼각형인 신과(神科)는 생각이 많아서 우유부단한 경우가 많다.”[정창환, <얼굴여행>, 도솔, 25.] 주인공인 그녀가 가장 많이 하는 것은 더 이상 생각하면 안 된다는 생각[김애란, 그녀에겐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달려라, 아비, 창비, 2006, 87. 이하 쪽수만 표기.]일 정도로 온갖 잡념에 시달린다. 또한 그녀는 뭔가 선택하거나 결정해야 할 때마다 곤혹을 치르[90]는데, “그녀는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처럼 느껴[90]지기 때문이다.

 

신과는 잘 불안해하고 그러다 보니 신경이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다. 신경이 예민하여 감정적으로 상처를 잘 받고, 그로 인해 병을 얻는 수가 많다. …… 자신이 만든 화로 인해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잠이 안 들어서 또 화가 난다. 그러면 잠을 더 못잔다.”[얼굴여행, 24.]

 

여주인공 역시 어떤 빛도 어떤 소음도 없는 상태에서[라야] …… 숙면을 청할 수 있[106]을 정도로 민감하다

 

그녀는 옛 애인이 자기보다 다섯 살 어린 여자와 사귄다는 소식을 듣고 잠 못 들고, …… 친구에게 빌려줬다 받지 못한 이만원 때문에 잠 못[93]든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주인공은 말로는 이것 역시 그녀가 잠 못 드는 진짜 이유는 아닐 것이다.”[92]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화가 난 상태인 듯하다. 분노로 가득 차 있는데도 스스로 그걸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않으려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매일 밤 잠 못 들면서, 매일 사람들과의 관계에 상처받으면서도 그녀는 서럽게 울지도 모르고 어쩌면 한번 더 자세를 틀며 진짜 이유 같은 건 없어라고 중얼거릴지 모른다.”[111] 이런 증상이 심해지면 정신질환을 앓을 수도 있다고 한다.

 

또한 신과의 사람은 성질temper'이 나쁜데 자신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해서 성격character’이 나쁜 것이[얼굴여행, 30. 강조와 영단어는 인용자. 이 책의 저자는 성격은 인격적인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것이고 성질은 인간적인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라고 한다.]라고 한다. 여주인공인공 스스로 고백한다. “불면의 가장 큰 이유가 자신의 성격일 때문일 것이라[90].

 

이런 타입은 불() 기운이 강한데, ()의 성질은 단단하게 굳힐 줄만 알고 부드럽게 굽힐 줄은 모르기 때문에 매사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똑똑 끊어지듯 날카롭게 행동한다.

 

아닌 게 아니라 여주인공은 아버지가 매일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견디다 못해 아버지가 화장실에 간 사이 가위로 텔레비전 유선을 싹둑 잘라버렸다.”[102] 그러고는 잠시 후에 자신이 실수를 한 것 같[103]고 후회를 한다.

 

여하간 신과는 불()이 많다. ()기인 불이 너무 많으면 음()기인 물이 부족해진다. 그 결과로 양기는 상체로 몰리고 음기는 하체로 몰려 하체가 약해져 다리의 병이 잘 생긴다. “옛날 남자친구가 자신의 다리가 발목만 얇다 하여 닭다리라고 놀렸던[108].일이 있었다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유독 발목이 얇은 것이다. 여주인공의 다리가 닭다리인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유장상법에는 족경무육足脛無肉 이라 하여 종아리 쪽에 살이 없는 상을 남녀모두 천()한 상으로 보고 있다. 여자의 경우, 특히 살림을 못한다고 나와 있다.

 

여주인공은 다행히 발목만 얇다. 상학(相學)에서 손목이나 발목이 가녀린 경우는 귀격(貴格)에 속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신과는 머리가 좋고 총명하며 매사에 꼼꼼하고 분명하게 행동한다는 큰 장점 또한 가지고 있다. (경험상, 아마도 편인태과나 정편인혼잡격들이 신과일 확률이 높다)

 

신과는 백 가지 보약이 편한 마음 한 가지만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얼굴여행, 26.] 뭔가를 억지로 하거나 서둘러서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신과에게는 걷기와 명상이 가장 좋은 요법(療法)이라고 한다.

 

---심심해서 상학을 중심으로 풀어봤는 데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 나 자신도 깜짝 놀랐다. 오 역술의 그럴듯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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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탐 2014-12-21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네요. 잘 읽고 갑니다.
 
모비 딕 아셰트클래식 4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모리스 포미에 그림 / 작가정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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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 아내와 딸만 장례식장에 왔다는 위대한 작가 허먼 멜빌의 쓸쓸한 삶을 생각할 때면 전율이 인다. 운명에 맞선 고독한 투사가 우리들의 애도를 바랐겠는가마는......

 

 

퀴퀘그는 철학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을 테지만, 우리들 인간이 참된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철학적으로 살거나 그렇게 살려고 애쓰는 것을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어느 누구가 철학자를 자처한다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은 소화불량에 걸린 노파처럼 위장을 망가뜨린 게 분명하다고 결론짓는다.”(96)

 

위 인용문처럼 허먼 멜빌은 발딱발딱 뛰는 구체적 세계의 현장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고래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고래잡이배에 대한 세세한 지식 때문에 전체 서사 구조를 간혹 놓치기도 하지만 섬세함과 웅장함이 바다 위에서 우렁차게 포효하고 있는 명저이다.

 

챕터9<설교>를 잘 읽어보아야 운명의 불가해함과 이유 없는 고통에 맞서 싸우는 바다위의 파우스트, 에이해브 선장 선장의 목숨을 건 고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음미될 듯하다.

 

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의 죄는 하느님의 명령에 고의로 복종하지 않은 데 있었습니다. 그 명령이 어떤 것이고 어떻게 전달되었는지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어쨌든 요나는 그것을 가혹한 명령으로 생각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하느님이 우리에게 시키고자 하는 일은 모두 우리가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 점을 명심해두셔야 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은 우리를 설득하려고 애쓰기보다 우리에게 명령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에게 복종하려면 우리 자신을 거역해야 합니다. 하느님에게 복종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바로 우리 자신을 거역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84)

 

뱀의 대가리를 찢어 삼켜버린 차라투스트라의 기개로 에이해브 선장은 ‘~해라’-신의 명령에 작살을 꽂고 만다. ‘그렇게 해야한다는 이슈메일과 그렇게 하지 않겠다의 에이해브선장. 둘다 삶의 끝없는 파탄에 지쳐버린 이들이지만 ‘~해라’-신에 대응하는 건 극적으로 다르다. 살아 남는 건, 이야기를 전해야 하는 이슈메일이다.

 

, 운명, 신 혹은 대타자와의 우주적 대 격돌은 장엄하게 바다의 심연으로 침몰한다. 아래의 마지막 말을 남기고 모비딕과 함께.

 

오오, 고독한 삶의 고독한 죽음! 오오, 내 최고의 위대함은 내 최고의 슬픔 속에 있다는 것을 지금 나는 느낀다. 허허, 지나간 내 생애의 거센 파도여, 저 먼 바다 끝에서 밀려 들어와 내 죽음의 높은 물결을 뛰어넘어라!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나는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겠다. 지옥 한복판에서 너를 찔러 죽이고, 증오를 위해 내 마지막 입김을 너에게 뱉어주마.”(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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