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오행 성명학
김기승 지음 / 다산글방 / 201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마침 토마스 만Thomas Mann의 「토니오 크뢰거」를 읽다가, 주인공 토니오 크뢰거가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는 장면이 나와 옮겨 본다. 이름 때문에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아래의 토니오의 심정을 쉽게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한스가 그의 성(姓)을 부르며 말을 걸어왔기 때문에 그는 일순간 목구멍이 죄어드는 듯한 기분이었다. (……)
“나는 널 크뢰거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네 이름이 정말 이상하기 때문이야. 얘, 미안하다. 하지만 난 네 이름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토니오’―이건 도대체 이름이 아니잖아. 하지만 그것이 네 탓은 아니지. 원, 아니고말고!”
(……)
토니오의 입은 실룩거렸다. 그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래, 어리석은 이름이지. 정말이지 나도 차라리 하인리히든지, 또는 빌헬름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면 좋겠다. 이건 진심이야. (……)”
그러고 나서 그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 이따금씩 토니오는 울고 싶은 충동이 코끝으로 짜릿하게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또한, 그는 자꾸만 떨리는 턱을 억지로 고정시키려고 무진 애를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토마스 만, 『토니오 크뢰거 외』, 안삼환 옮김, 민음사, 2009, pp. 18~19.]

황죽자(黃竹子)는 나의 외할머니이다. 기억하기론, 할머니는 한 번도 스스로 자신의 진짜 이름을 말씀해보신 적이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즈음에야 나는 할머니로부터 황죽자란 이름을 비로소 들을 수 있었다. 죽음에 임박해서야 본명을 말씀해주신 우리 할머니. 얼마나 이름 때문에 속상하셨길래 영면(永眠) 직전에야 당신의 이름을 가르쳐주셨을까?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는 언어기호의 본질을 밝힌 것으로 유명한데, 그에 따르면 언어기호는 양면적 실체를 지닌다고 한다. 즉 언어는 이원적 구조-물질적인 측면을 지닌 기표(記表, signifier)와 정신적 개념인 기의(記意, signified)-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표와 기의가 자의적(恣意的)으로 결합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개[犬]라는 영상(映像)/개념, 즉 기의가 반드시 ‘개’라는 기표로 불릴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개’ 대신, 언중(言衆)들과 합의만 된다면, ‘dog`나 ’woofer`, `blongo`, `glak`, `いぬ(이누)’라는 기표로도 쓰일 수 있다.[코블리, 『기호학』, 조성택 옮김, 김성도 감수, 김영사, 2002, pp. 12~18 참조.] 소쉬르의 이 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소쉬르 이전에는 단어 자체가 실재를 표현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소쉬르의 주장이 옳다면, 우리 할머니 ‘황죽자’라는 이름/기표는 황죽자 본인 자체 혹은 본인의 삶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자의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말인데 과연 그러한가?

한 사람의 이름이라는 고유명사가 단지 그렇게 부르기로 약속한 지시대명사에 불과하다는 소쉬르의 이론을 나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이름은 몸에 대충 걸치는 망토가 아니라 몸에 꼭 맞게 입는 옷이다. 마치 피부처럼 그 사람 위에서 자라왔으며 그 사람 자체를 상처 입히지 않고서는 절대 문지르지도 잡아당기지도 못하는 옷이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시와 진실』, 크리스토퍼 해밀턴, 『중년의 철학』, 신예경 옮김, 알키, 2012, p. 60에서 재인용.]라는 괴테의 말에는 심원한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름이야 말로 그 사람의 피부요 그 사람 자체라는 괴테의 말은, 한 사람의 본질과 정체성(正體性)을 그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성격을 이름 속에 투영하며, 이 이름을 주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위대한 거장들은 그들의 작품에 걸맞은 바로 그 이름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보인다,”[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문화와 가치』, 이영철 옮김, 책세상, 2008, p. 68.]고 한 비트겐슈타인의 발언 역시, 많은 이들이 이름과 성격이 강하게 연결돼 있다고 믿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성명학(姓名學)을 공부하는 나로서는, 이름을 그저 자의나 임의로 볼 수 있다는 소쉬르의 기호학이 아무리 위대한 논리라 해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름을 그 사람의 본질이라는 측면과 거창하게 관련시키지 않더라도, 이름이 현실에서 발휘하는 힘은, 비록 관점이나 강조점은 다르지만, 심리학자나 경제학자 역시 동의한다.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은 성(姓)이 알파벳 앞쪽 문자일 경우 더 성공적인 삶을 산다며, 성의 변경조차도 법원에 신청하여 개성(改姓)하라고 은근히 권유한다. 성뿐만이 아니라 이름 또한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예를 들어 왕족과 관련이 있는 전통적인 이름은 성공적이고 지성적인 이름으로 간주된다.”[리처드 와이즈먼, 『59초』, 이충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9, p. 256.] ˝이니셜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름은 피하는 게 좋다. 그리고 C나 D로 시작하는 이름보다는 A나 B로 시작하는 이름을 선택하면, 좋은 성적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 (리처드 와이즈먼, 같은 책, p. 256.)며, 특히 이니셜의 위력을 강조하고 있다. 경제학자 스티브 레빗 역시 이름이 미치는 성공 여부에 대해 경제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이름과 성공은 밀접하다는 것이다.[스티브 레빗 외, 『괴짜 경제학 플러스』, 안지환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7, pp. 226~258 참조.] 레빗은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훌륭한 이름을 지어주지 못하면 큰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이름이 지닌 예언력이 과연 사실인지 경제학적으로 따져본다. 먼저, 가장 재미있는 대목은 전형적인 백인이름과 전형적인 흑인이름을 거짓으로 만들어 면접서류에 기재했더니 결과는 전형적인 백인이름이 더 많은 면접기회를 부여받았다는 실험이다.[“즉 이 연구에 따르면 드숀 윌리엄스와 제이크 윌리엄스가 고용주에게 똑같은 이력서를 보냈을 경우 제이크 윌리엄스에게 연락이 올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흑인으로 보이는 이름은 경제적 불이익을 받는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스티브 레빗 외, 같은 책, p. 236.) 나는 이 부분에서, 그렇다면 이름을 바꾼다면 경제적 불이익을 받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봤는데, 저자들 역시 나와 동일한 상상을 해보이면서 경제학자다운 프레임으로 해석해낸다. “그렇다면, 만일 드숀이 제이크나 코너로 이름을 ‘바꿨다면’ 어땠을까? (……) 여기서는 이런 추측이 가능하다. 경제적 성공을 위해 이름을 바꾼 사람은 (……) 적어도 아주 의욕적이다. 그리고 이름보다는 역시 의욕이 성공을 나타내는 더욱 강력한 지표일 것이다.”(같은 책, p. 239.) 이들의 이와 같은 해석은, 성명학적 해석과는 다르지만 결과론적 측면에서는 성명학적 해석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어지는 수많은 데이터 분석에서 저자들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자녀의 이름이 큰 상관관계가 있으며, 소득수준뿐만이 아니라 부모의 교육수준까지도 자녀의 이름과 관계가 밀접함을 밝힌다. 물론 고소득 고학력 부모들이 짓는 이름 역시 유행이 있다. 그런데 이 유행이 재미있다. “어떤 이름이 고소득에 교육수준이 높은 부모 사이에서 인기를 얻으면, 사회경제적 지위라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스티브 레빗 외, 같은 책, p. 254.] 이는 마치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구별짓기Distinction가 `이름’에서도 예외가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분석을 다음과 같이 의미짓는다.

부모들이 아이에게 지어줄 이름을 생각할 때는 분명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한다. 전통적인 이름, 자유분방한 이름, 어쩌면 독특한 것을 찾거나 유행에 완벽하게 맞는 이름을 원할 수도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모든 부모가 ‘똑똑한’ 이름이나 ‘부유층’ 이름을 찾는다고 하면 과장일 것이다. 하지만 (……) 부모는 모두 자식의 이름으로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한다. (……) 데이터가 밝혀낸 바에 따르면, 대다수의 부모가 이름을 통해 자신의 자녀들이 앞으로 얼마나 성공적일지 ‘그들 자신의 기대’를 표현한다. 이름 자체는 아주 미미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하지만 부모들로서는 적어도 시작부터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스티브 레빗 외, 같은 책, p. 258.]

저자들의 결론은 다소 혼란스럽지만,[나로서는 이 책에 나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부모들은 ‘의식적’으로 아이의 이름을 짓고, 아이와 부모는 그 이름 때문에 소득과 교육수준에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해석된다.]결국 자녀의 이름을 정성스럽게 짓는 부모들이 자녀를 더욱 성공시킨다고 보면 되겠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 할머니 황죽자는 황죽자라는 이름 때문에, 뜻이야 뭐가 됐든, 황죽자라는 못된 기표로 말미암아 평생을 이름-콤플렉스에 시달리며 곤고한 삶을 살다 돌아가셨다.[할머니의 사주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주어진 정보만을 토대로 풀어본다면, 한글발음오행으로 황죽자는, 초성만 본다면, 土金金으로 나쁘지 않다. 土金金은 유곡회춘격(幽谷回春格)으로, “강인한 의지와 굳건한 정신력으로 하는 일마다 성공을 이룬다.”다고 한다. (춘광 김기승, 『자원오행성명학』, 다산글방, 2014, p. 193 참조. 이하 『성명학』으로 약칭함.) 하지만 자(子)라는 글자는 일제의 잔재이기도 하지만 성명학에서는 불길문자에 속하고(춘광 김기승, 『성명학』, p. 111.), 81수리의 원형이정(元亨利貞)에도 완벽하게 맞지는 않다. 황(黃)은 12획으로 자원오행은 토(土)이고, 죽(竹)은 6획 목(木), 자(子)는 3획 수(水)이다. 즉, 元은 9 ,亨은 18, 利는 15, 貞은 21로, 元 9획은 궁박격(窮迫格)으로 대재무용지상(大才無用之象), 즉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는 불길한 수리다.” 亨 18획은, 발전격(發展格)으로 진취발전지상”에 해당한다. 利는 15획으로 통솔격(統率格)이고 貞은 21로 두령격(頭領運)이다. (춘광 김기승, 『성명학』, pp205~233 참조.) 그러나 무엇보다도 “놀림감과 이미지를 고려”(춘광 김기승, 『성명학』, p. 144.)하지 않은 점이 가장 아쉽다 하겠다.]‘죽자’고 고생만 하시고, ‘죽자’고 놀림만 받으시고, ‘죽자’고 억울함을 참아내신 우리 할머니 황죽자. 하지만 이제라도 명리학도인 손자가 그 억울함을 밝혔으므로 내세에서만이라도 좋은 이름으로 성공적인 삶을 사시리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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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funeral 2024-10-23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짝 대언장어하시는 대목이 없지 않으나 강한 설득력이 있음은 분명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