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아셰트클래식 4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모리스 포미에 그림 / 작가정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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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 아내와 딸만 장례식장에 왔다는 위대한 작가 허먼 멜빌의 쓸쓸한 삶을 생각할 때면 전율이 인다. 운명에 맞선 고독한 투사가 우리들의 애도를 바랐겠는가마는......

 

 

퀴퀘그는 철학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을 테지만, 우리들 인간이 참된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철학적으로 살거나 그렇게 살려고 애쓰는 것을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어느 누구가 철학자를 자처한다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은 소화불량에 걸린 노파처럼 위장을 망가뜨린 게 분명하다고 결론짓는다.”(96)

 

위 인용문처럼 허먼 멜빌은 발딱발딱 뛰는 구체적 세계의 현장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고래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고래잡이배에 대한 세세한 지식 때문에 전체 서사 구조를 간혹 놓치기도 하지만 섬세함과 웅장함이 바다 위에서 우렁차게 포효하고 있는 명저이다.

 

챕터9<설교>를 잘 읽어보아야 운명의 불가해함과 이유 없는 고통에 맞서 싸우는 바다위의 파우스트, 에이해브 선장 선장의 목숨을 건 고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음미될 듯하다.

 

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의 죄는 하느님의 명령에 고의로 복종하지 않은 데 있었습니다. 그 명령이 어떤 것이고 어떻게 전달되었는지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어쨌든 요나는 그것을 가혹한 명령으로 생각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하느님이 우리에게 시키고자 하는 일은 모두 우리가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 점을 명심해두셔야 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은 우리를 설득하려고 애쓰기보다 우리에게 명령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에게 복종하려면 우리 자신을 거역해야 합니다. 하느님에게 복종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바로 우리 자신을 거역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84)

 

뱀의 대가리를 찢어 삼켜버린 차라투스트라의 기개로 에이해브 선장은 ‘~해라’-신의 명령에 작살을 꽂고 만다. ‘그렇게 해야한다는 이슈메일과 그렇게 하지 않겠다의 에이해브선장. 둘다 삶의 끝없는 파탄에 지쳐버린 이들이지만 ‘~해라’-신에 대응하는 건 극적으로 다르다. 살아 남는 건, 이야기를 전해야 하는 이슈메일이다.

 

, 운명, 신 혹은 대타자와의 우주적 대 격돌은 장엄하게 바다의 심연으로 침몰한다. 아래의 마지막 말을 남기고 모비딕과 함께.

 

오오, 고독한 삶의 고독한 죽음! 오오, 내 최고의 위대함은 내 최고의 슬픔 속에 있다는 것을 지금 나는 느낀다. 허허, 지나간 내 생애의 거센 파도여, 저 먼 바다 끝에서 밀려 들어와 내 죽음의 높은 물결을 뛰어넘어라!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나는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겠다. 지옥 한복판에서 너를 찔러 죽이고, 증오를 위해 내 마지막 입김을 너에게 뱉어주마.”(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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