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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우울 -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 우울의 모든 것
앤드류 솔로몬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같이 공부를 하던 한 아주머니가 자신의 다섯 살 아들에 대해 고민을 털어놨다.
"차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아들이 차에서 내리고 싶대요. 그래서 왜 그러니 라고 물어봤더니 내려서 차에 치어 죽어싶다는 거예요."
다섯 살 꼬마 아이가 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는 짐짓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내 자신이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읽게 된 이 책에서 이 꼬마와 똑같은 사례를 보게되었다.
이유를 미리 말하자면, 부모 중 누구 하나의 우울증이 미친 영향이란다.
이 책은 문학전공자답게 탁월한 문장력을 겸비했다. 의학적 지식이 많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빼어난 문체를 자랑한다.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고통이 존재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비밀로 간직한 채 보이지 않는 휠체어를 타고, 보이지 않는 깁스를 하고 힘겹게 살아간다."(242)
내가 겪은 고통을 통해서 타인의 고통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것도 사실이고, 이러한 사실에 감사하는 것도 부정하진 않겠지만, 실제 고통을 겪을 때는 미치도록 환장할 콜레라로 죽어나가는 것 같다.
"... 가벼운 우울증은 강한 자기 성찰을 일으켜 그 성찰을 토대로 자신의 성격에 더 잘 맞도록 삶을 바꾸는 현명한 결정들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603)
동의한다. 하지만 가벼운 우울증의 경우이고, 실존주의적 성향있는 이들이 내보이는 우울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한다.
실제로 강한 우울증이 기습하는 경우 성찰 자체가 사라진다. 정서가 해체되고 재편성되는데, 그것은 거의 복수와 분노의 여신이 만들어 놓은 감옥의 정서가 설립된다.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나마 살아갈 수 있는 게 우울증을 겪을 수 있는 힘 때문이라는 게 인용된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주장이다. "우리를 압도하고 마비시키는 슬픔은 광기에 대한 방패 노릇을 한다."(640)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세상에 존재하는 가난의 저 말단과 고통의 저 끝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간혹 독서토론을 하거나 진지한 대화를 나누다가 상대방의 진의를 의심케 하거나 수준을 불신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데 그것은 세상의 고통을 전혀 모르는 사람일 경우가 태반이다.
이 책은 고통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예컨대 아버지가 딸을 강간하거나 양부모가 의붓자식을 살해하는 많은 불행을 넘어선 경악조차 사치인 그런 불행과 고통이 무섭게 활자로 박혀 있다.
역술가인 내가 내담자들이 겪는 고통의 강도와 밀도를 모른다면 어찌할 뻔 했나 하는 아찔한 반성을 이 책을 통해서 하게 되었다는 점을 고백한다.
불후의 명저이다.
읽은 지 몇년이 지났지만 내게는 베스트 텐에 여전히 등재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