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당신을 원망하는 일이 사랑이겠습니까.
 

이제 낱낱이 저에게 스미는 것들을 찾아 
 

저는 어두워질 것입니다 홀로 빛날 당신의 


중심을 위해 저는 오래 더럽혀질 것입니다.

 

                                       - 샘가에서, 이성복



늦은 해에 군대를 갔던 내가 가장 다행스러웠던 것은사령부의 행정병이었던 탓에
막사의 화장실이 여느 일반 화장실 못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작대기 하나와 둘은
어떤 개인행동도 용납되지 않던 시절, 문자는 최대의 호사였다. 그래서 나는 취침
점호가 끝나면 화장실 변기에 앉아 담배를 피며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거나, 친구
들이 보내준 시집을 필사하며 이 긴 겨울과 여름이 두 번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도 변하고 인걸은 간데 없어도 문자만은 예전의 추억과 욕망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었기에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치욕을 일깨워주는 이성복의 시들을 특히나 사랑했다.
칙칙한 군용 종이위에 거칠게 필사해둔 그의 시들을 주머니에 놓고 가당찮은 낭만을
부리는 것은 더없는 즐거움이기도 했다. 결국 육체의 옥죄임이 정신을 풍요롭게
하지 않았던가. 한획 한획 필사할때마다 드러나는 하나의 어휘들은 그 자체로 시였고
사랑이었고 자유였다. 그 공간이며 그 시간이며 그 남루한 일상들이 때로 희뿌연 안개
속에 모호해지고 어느새 문자의 아우라가 몸을 감싸주기도 했다.

세번째 봄이 오고, 전전해에 옮겨 심어둔 들꽃들이 더 이상 향기를 뿌리지 않고 잡초처럼
무성해졌을 때 나는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어쩌면 빛을 흐리게 만드는 것은 익숙함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때에도 참모부 뒷마당에는 산수유 꽃이 피어 있었다. 
 


나는 해석하는 시보다는 바라보는 시를 좋아한다. 참신한 비유나 혀를 내두르는 필력보다
때로 거칠고 유치하기까지한 언어로 찬찬히 쓰다듬어주기를 좋아한다. 신용목의 시집은
그런 응시, 바라봄, 쓰다듬어주기가 들어있는 시들로 가득 차 있다. 나는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거나 그 향기에 취하기보다는 그저 그곳에 무심히
피어있는 꽃들이 마음에 든다. 돌 사이에 피어있는 산수유처럼.

산다는 것은 산수유 꽃빛만큼 아득하다고 한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물집은 몸에 가둔 시간이라 한다. 그 또한 그럴 것이다.
오랜만에 연필을 들어 필사를 했다. 

 
 

 

 

 


 

------


   산수유꽃


         신용목


데인 자리가 아물지 않는다

시간이 저를 바람 속으로 돌려보내기 전 가끔은 돌이켜

아픈 자국 하나 남기고 가는 저 뜨거움

물집은 몸에 가둔 시간임을 안다


마당귀에 산수유꽃 피는 철도 독감이 찾아 옆구리에

화덕을 끼고 자다 나는 停年이 되어버렸다

 


노비의 뜰에나 심었을 산수유나무

면도날을 씹는 봄 햇살에 걸려 잔물집 노랗게 잡힐 적은

일없이 마루턱에 앉아 동통을 앓고 문서처럼 서러운

기억이 많다

 


한 뜨거움의 때를 유배시키기 위해 몸이 키우는 물집

그 수맥을 짚고 산수유가 익는다고 비천하여

나는 어깨의 경사로 비탈을 만들고 물 흐르는 소리를 기다리다

늙은 것이다

 


시간의 문장은 흉터다 둑 위에서 묵은 편지를 태웠던

날은 귀에 걸려 찢어진 고무신처럼 질질 끌려다녔다

날아간 연기가 남은 재보다 무거웠던가

사는 일은 산수유 꽃빛만큼 아득했으며


나는 천한만큼 흉터를 늘리며 왔고 데인 데마다

산수유 한 그루씩 자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총기강탈, 태안 기름유출, 대선, 크리스마스같은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매여있다보니
한 달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흘러가버렸다.  가야할 공연도 가지 못하고 봐야할
책들도 여전히 책장위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통탄하는 중에 몇몇
매체와 사이트에서는 여전히 '올해의 책'을 발표했다.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책들은
물론 출간 자체가 의미있었던 여러 분야의 다양한 책들이 실려있는 것을 보니 그간
참 책을 읽지 않았구나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메이저 신문사에서 선정한 리스트들은 그다지 개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그저 그런
무난한 것인데 비해 시사IN에서 발표한 송년 특집 '올해의 책'은 두껍지 않은 분량 중
에서도 15페이지에 걸쳐 하나의 책만 아니라 각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작품들을 여러
출판사의 편집자와 해당 전공자 및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아 충실하게 싣고 있어 마음에
든다. 지난 호수를 구하려다 실패했는데 마침 정기 구독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 도움을
구했더니 흔쾌히 빌려준 동기 조제행 'PD'에게 감사를.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704
- 하단의 관련 기사 란을 보면 각 분야에 대한 자세한 서평과 수상 이유들을 꼼꼼히 적어놓았다.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_m.aspx?pn=071226_media
-  알라딘은 주요 신문과 협회에서 뽑은 올해의 책을 잘 정리해두었다.

 

 

 

 

 

 

 

 


실린 책중 에서는 스스로 광팬이라 자부하는 김연수의 책과,  최장집 선생의 책만을 구입해서 읽었을
뿐 부끄럽게도 나머지는 제목마저 생소하다. 다른 매체를 보면 김훈의 '남한 산성' ,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  루트버스타인의 '생각의 탄생',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우석훈 교수의
'88만원 세대' 황석영의 '바리데기', 등이 고루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오늘 교보에 들러 '세계만물그림
사전'을 보니 편집자의 노력이 한 눈에 보이는 역작이었다. 사람 인체의 세부에서부터 주위의 공구들,
기계들, 거의 모든 생물-무생물체를 그림과 함께 한-영-불-독-서 5개국어로 인덱스를 달고 있어 11만
원이라는 거금이 아깝지 않다. 

 

 

 

 

 

 

 

 

자기만의 2007 올해의 책 리스트를 만들라하면 파스칼 키냐르의 새 소설집 '섹스와 공포',  고종석의
'바리에테', '1900년 이후의 미술사', 문혜진의 '검은 표범 여인', 마루야마 마사오의 '문명론의 개략을읽는다', 재출간된 박홍규 교수의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 강독',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
열차' 경향신문 출판부의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 진태원씨의 번역으로 다시 나온 자크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 윤대녕의 '제비를 기르다' 정도를 추가하고 싶다.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예전의 포스팅을 기억하는 독자분이나 지인들은 눈치채셨겠지만 '1900년 이후의 미술사'는 친구
들의 노작이라는 이유로도 (물론 그 질 또한 보장할 수 있지만), 그리고 올해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문혜진 시인의 시집은 친구의 와이프라는 정말 개인적인 이유도 들어가 있다. ^^

 수습 시절에는 뇌가 굳을까봐 기를 쓰고라도 책을 보고 영화를 돌렸었는데 이제 몇 년 흘렀다고
조금 나태해진 것은 아닌가하는 반성을 하게된다.  내년 이맘때쯤에는 지금의 부끄럼이 조금은
줄어들기를 바라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집에 갑자기 휴즈가 나가서 가뜩이나 채광도 안좋은 방이 달빛마저 없으니 칠흑빛이
되어 버렸다.  구석을 뒤져 촛불을 꺼내 밝혀두고 있으니 초라함이 없지 않으나 은근한
풍취가 오는 듯하여 과히 나쁘지 않다. 벽 한켠을 비워두고 어릴때 했던 그림자 놀이
장난도 하면서 독수리며, 개며, 꽃봉오리들이 이리저리 흩어지는 모습들을 보며 홀로
청승을 떨고 있는 것도 즐겁지 않다할 순 없겠다.

플라톤 같은 이들이 봤으면 사물들이 모두 이데아의 한심한 그림자일테고 또 그 사물의
그림자를 가지고 여흥을 즐기려하니 그야말로 그림자의 그림자에 혹한 우둔한 짓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
 
나는 다산을 잘 모른다. 
주입식 교육의 탓에 그가 '목민심서'의 저자이며, 수원성 건축때 거중기를 이용했으며
서학에 적극적이었고 머나먼 전남 강진으로 유배되어 초당을 지어 살았다는 얇은 정보가
내가 아는 거의 대부분이다. 그의 대표적 저작인 '목민심서'는 전공자가 아닌 나로서는
그 현대적 의의를 논하기에는 과문하고, 제목만 들어 알고 있는 흠흠신서니 경세유표니
하는 저서들은 구하려는 시도조차도 해본 적이 없다. 다만 그가 오규 소라이를 알고 있었다
는 것과 시대에 열린 인물이었으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으면서도 각각의 깊이가 얇지
않았음은 어렴풋이 느낄 정도이다. 




 
얼마전 분황을 보기 위해 경주행 기차를 올라타면서 유마경 강의록과 다산의 문집 한 권을
챙겨간 적이 있었다. '뜬 세상의 아름다움'이라는 낭만적인 제목을 단 이 책은 다산이 저술
한 '여유당 전서' 가운데서 격조가 뛰어난 글들을 가려 엮은 것이다. 조선 후기 유학에 있어
선구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무게를 넘어 이 속에는 흔히 유학자들에게 가지는 선입견인
꼬장꼬장함의 인상을 단순히 넘게해 줄만큼 다양하고 인간적인 면모들이 담겨 있다. 

 




개중에는 악보를 빌려달면서 '째째하게 굴지말고 빌려주십시오' 라고 한다든가  개고기를
맛있게 요리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같이 유배를 갔던 형 약전에 대한 그리움,  기득권
세력에 대한 반감, 의미없어 보이는 세상에 대한 애착,  친한 친구들에 대한 우정이 가감없이
펼쳐진다.

나는 이 속에서 '그림자 놀이 菊影詩序'를 아껴두고 음미하는데 그 내용이 사뭇 낭만적이다.
짧지 않은 중후반부를 인용해보면,


    하루는 남고와 윤이서에게 들러 그와 이야기하다가, 
    "오늘 저녁에는 저희 집에서 주무시면서 저와 국화 구경이나 하십시다" 
    하였다. 이서는 
    "국화가 아름답기야 하지마는 무슨 밤에 구경할 거리가 된단 말인가."
     하더니 병을 핑계로 사양한다. 


    나는 
    "한 번 보시기나 하십시오"
    하고는 굳이 청하여 함께 돌아왔다. 저녁이 되자  짐짓 동자에게 촛불을
    꽃 한 송이에 바싹 갖다대게 하고는, 남고는 끌어다 보여 주며, 
     "기이하지 않습니까?"
     하였다. 남고는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상하이. 자네 말이, 나는 이것이 기이한 줄 모르겠네"
    한다. 그래 나도,
     "그렇지요"
    하였다. 

    잠시 후 다시 동자에게 원래 법식대로 하도록 시켰다. 그래서 옷걸리며 책상 등
    산만하고 울멍줄멍한 물건들을 모두 치우고, 국화의 위치를 정돈하여 벽에서 
    약간 떨어지게 한 다음, 촛불을 적당한 곳에 놓아서 국화를 비치게 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기이한 무늬, 이상한 형태가 온 벽에 가득 찬다. 
 
    그 중에 가까이 있는 것은 꽃과 잎이 서로 어우러지고 가지와 곁가지가 정연해서
    마치 묵화를 펼쳐 놓은 듯하다. 그 다음 것은 너울너울 얇은 깃털 옷을 입고 춤추듯
    나풀대는데 마치 달이 동쪽으로 고개에 뜨자 뜰의 나뭇가지가 서쪽 담장에 비치는
    것 같다. 그 가운데 멀리 있는 그람자는 구름이나 노을이 엷게 깔린 듯 흐릿하고 
    모호한가 하면, 파도가 질펀하게 일렁이듯 사라져버리기도 하고 소용돌이치기도
    해서 언뜻언뜻 비슷한 듯도 하지만 무어라 형용할 수가 없다. 

    이것을 보자 이서는 큰 소리를 지르며 기뻐 날뛰더니, 손으로 무릎을 치며 
    "기이하구나! 이상도 하구나! 천하의 절승이로구나!"
    하고 감탄한다. 

    감탄이 진정되자 술을 내오게 하였다. 술이 거나해지자 함께 시를 지으며 즐겼다.
    이때 주신과 혜보과 무구도 같이 모였다. 

                                                  
-----------




흔히 국화를 오상고절 傲霜孤節 이라 부른다. 그것은 가을의 서리를 오만하게 여길 정도의
절개를 나타내는 말이다. 세도정치와 당쟁의 먹구름이 가을 서리처럼 차갑게 세상을 덥고
있을 때에도 정약용은 경전을 가려 읽고 당대의 목민관들이 가져야할 응당한 윤리에 대해서
논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던 과학에도 눈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하기에 오상고절의 국화
는 그에게 잘 어울려 보인다.

늦가을이라 하기엔 이미 차가워져 버린 공기가 피부에 와닿은 한 밤에 그림자 놀이에 취해
있다가 문득 예전에 읽은 얇은 책을 꺼내들고 잡생각에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카가 없어서 핸드폰으로 찍어 구린 칼라가 되어 버린 왼쪽의 책은 박*연씨가 정성들여
구해준 포르투갈어본 장미의 이름 O nome da rosa 이다.  다음 컬렉션은 아마 중국어본
이나 러시아본 정도가 되지 않을까 스스로 예상하고 있었지만 전혀 생각지 못한 인연의
을 빌어 쉽게 구할 수 없을 것 같았던 포르투갈어본이 서가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쁜 일이다.  주연, 그라시아스.

포르투갈이라고 해봤자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은 기껏 부루마블을 통해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수도 리스본 (리스보아)이나 지리상의 발견을 논할 때 의례 등장하는
마젤란, 바스코 다 가마, 바르톨로뮤 디아스같은 탐험가들의 이름, 가까이는 에우제비오로
시작해 루이스 피구로 계승되어 호날두로 이어지는 축구 천재들의 계보 , 거기에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로 대표되는 전통음악 파두 정도일 것이다.
예전에 기억나는 오렌지 쥬스 CF에서 Tao Bon 따봉!! 이라는 말도 그리 낯설지는 않다.

아시다시피 포르투갈어는 대항해 시대의 제국주의 침략에 힘입어 이베리아 반도의 그리
크지 않는 나라인 포르투갈이외에도 브라질과 몇몇 포르투갈령 아프리카, 중국의 마카오,
의외로 인도의 한 지방에도 쓰이고 있다. 이것은 이 나라의 역사가 한때 그들의 입장에서는
찬란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의 차이, 본토 포르투갈어와 브라질산 포르투갈어의 차이는 예전에
잠시 언급한 적이 있으니 넘어가고, 특이한 정관사 O를 제외한다면 이름을 나타내는 명사
nome는 이탈리어어의 nome의 형태를 그대로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또한 nombre(스),
nom(불), name(독), namn(스웨던) 등과 같이 친족관계를 이루는 언어들의 분화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전치사da 역시 de la, der, della와 멀어보이지 않고 rosa는 말할 필요없이
이 낯선 언어가 옛날 로마 제국의 언어였던 라틴 속어에서 갈라저 나온 수많은 로망스 제어
중의 한 무리에 속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그러니까 초급 스페인어 정도에 익숙한 이라면, 

  Quero ver o libro da poetica de Aristoteles, aquele que todos consideran perdido,
  ou jamais escrito, e do qual tu guardaz talvez a unica copia, (엑센트는 생략) 

라는 포르투갈어 문장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책을 보고 싶습니다. 모두가 사라졌다고, 아니면 아예 쓰여지지도
   않았다고 생각하는 아마도 당신이 가진 유일한 한 권의 그 책 말입니다
." 

라는 정도의 의미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 

위의 문장에 관해서 다시 한 번 살펴보자면, 기나긴 현학과 교리 논쟁과 여러 사람의 죽음을
뚫고 마침내 음모의 정점에서 '웃음' 이라고하는 것의 실체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윌리엄의
지혜와 호르헤의 경륜이 불꽃튀며 작렬하는 순간, 독자는 공허함과 경박함의 표상으로서
반대로 공포를 극복하고 진정한 인간성에 다가설 수 있게만드는 도구로서의 웃음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인류가 형상을 인식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또는 문자로 대상을 나타내는 능력을 습득한 이래로
그들은 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을 희화화시킴으로서 그 공포를 극복해내왔다. 동굴벽화
에서부터 민화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목숨을 위협할 만한 맹수와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는 신적
존재들은 거의 대부분 예외없이 혈거인의 손에서부터 화공의 손을 빌려 우스꽝스러운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과의 투쟁의 장에서 조금씩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범부들에게는 웃음을 제어할 무기가 없기 때문에 이들을 영생으로 이끌고 배와 엉덩이와  
   먹을 것과 더러운 욕망으로부터 이들을 구하자면 마땅히 목자들은 이를 엄격한 규율 아래  
   에다 두어야 하는 것이오. - 호르헤 수사

그런 웃음을 '그리스도가 웃지 않았다'라는 하나의 명제로서 억압하고자 하는 시도는 덧없어보인다.
독실한 이의 입장에서는 경건함의 대상이 되어야할 존재가  회화화 되는 것을 나아가그 존재 또한
어떤 대상을 웃고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에코의 손을 빌려
아스토텔레스가 말하듯 

     제 1부에서 우리는 비극을 다루면서 이 비극이 연민과 공포를 야기시킴으로써 카타르시스    
     의 창출을 통해 이러한 감정을 씻어 내는 과정을 검토해 보았다. 이제 약속대로 희극을 풍자    
     광대극과 거불어 다루면서 이 희극이 어리석은 자들을 즐겁게 함으로써 비극과 같은 작용을    
     하는 과정을 검토해 보기로 하자. 

라는 문장을 통해 오래 전 문명의 총화를 누렸을 그리스인들이 어째서 비극과 동시에 희극이라는
장르를 창조해냈는지, 그리고 양 극단에 서있을 법한 희극과 비극이 실상 같은 효과를 노렸다는것을
알 수 있다. 사라진, 어쩌면 쓰여지지도 않았을 희곡으로 유추하는 것은 어려우니 비극을 통해 추론을
해보자면, 김상봉 교수는 그리스인이 비극을 만들었던 이유는 비극을 통해 슬픔을 생각하고 "슬픔의
의미와 고통의 존재 이유를 묻는 것,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 그리고 가장
깊은 슬픔과 절망 속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다시 '장미의 이름'의 대미 부분에 나오는 윌리엄의 말,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일일듯 하구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 

과 일맥상통한다. 결국,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넘어서 그리도 유치에 보이는 '인류에 대한
보편적 사랑'이 웃음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장미의 이름'이 소중한 이유는, 그리고 내가
끊임없이 이 서책을 모으려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들은 다시금 깨우쳐주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서평을 쓰고자 함은 아님)

 

 

 

 

 

 

 

 

제목에서 알려주듯 이 책은 1900년 아르누보에서 시작해서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마치는
대장정을 다루고 있다. 연대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언뜻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보이지만  그러나
잰슨의 '서양미술사',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라든가 웬디 수녀의 책, 미술사학자라고 하는 모씨의
책처럼 일반인들이 교양을 위해서 접근하기에는 다소 힘겨워 보인다.

  투명성에 대한 브라크의 헌신은 그가 시각예술의 가시성에 충실했다는 것, 다시 말해 
  다이어페인으로서의 회화 전통에 충실했음을 나타낸다 

라든가 

   이런 사진의 가능성으로 인해 원작의 미학적 통일성은 해부되며 새롭고 충격적인 
  이식이 이루어진다.... 고전적인 미학은 부분에서 전체로 나아가지만 우리 시대의 
  미학은 전체에서 부분으로 나아가며, 이런  측면에서 사진 복제는 중요한 수단으로 
  부각된다


와 같은 서술들은 이 책을 박물관 여행에 앞서 사전 지식을 쌓으려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텍스트임을 보여준다. 상태좋고 다양한 도판으로 해설을 돕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서술의
방식이 작품의 도상이나 연원을 자세히 설명해준다는가하는 부분은 극히 적기 때문에 제목만으로
20세기 미술사를 개괄할 목적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다지 적합한 책은 아니다.  704페이지에 달하는
분량과 9만 5천원(!!)이라는 가격까지도. 

 미술사학계의 올스타 멤버들이라고 할 수 있는 할 포스터, 로잘린드 크라우스, 이브 알랭 브아, 벤자민
부클로 등 저자들이 대학원 미술사 세미나에서도 가볍지않게 다루는 수준의 텍스트를 썼던 사람들이기
도 하지만 원체 근-현대 미술 내외부에 걸려있는 담론들이 작품 자체보다 더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론에 익숙치 않다면 텍스트를 따라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로쟈'님 역시 "공부하는 학생은 물론, 심도 있는 논의를 원하는 연구자 및 미술가들"이 아닌 경우에는 그냥 장서용으로 꽂아둠 직하다. 그런 게 '교양'이므로.." 라고 할 정도. ^^;

'미술史'에서 가장 필요없는 것이 '미술'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기는 한데 현대 미술사에 관한 개괄
을 마쳤거나 인문학적으로 다양한 방법론을 이용해서 작품과 그 배경을 분석해나가는 스타일에 관심
이 있는 이들에게는 매력적인 텍스트가 될 것이다.


----------------------------

글의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이 글은 쓰는 것은 통상적인 리뷰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책이 친구들에
의해 번역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친구라고 했지만 걔 중에는 대놓고 친하다고 할 사람들, 충분히 알고
지내는 사람들, 친구라고 하기엔 얼굴만 알고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편집자의 노고가 돋보이는 대목은 이 책이 원서와 같은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것, 원서의 페이지수뿐
아니라 각 챕터별로 구성은 물론 분량까지도 거의 동일하게 맞추고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결벽에 가
까운 이 주문을 맞추기 위해 친구들이 기울였을 노력은 충분히 이 책의 출판을 자랑스럽게 만든다. 

문득 드는 생각은, 내가 만일 조금만 더 학교에 남아 있었더라면, 그래서 이 친구들과 조금 더 같이
있었더라면 내 이름도 이 책에 오를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다. 성격이 한 우물을 파지 못하고
여러 우물을 조금만 파다 지쳐버리는 타입이라 딱히 그럴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내가 아쉬운
만큼 친구들의 노고가 가상하기도 하다. 

올 봄 이 친구들을 만날 때 금해야할 인사말은 '번역 잘 되가냐'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표정에서 읽히는
지지부진한 작업의 진전도가 너무 뻔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홍대에서, 광화문에서 같이 했던
몇 번의 술자리와 밤새워 쳤던 고스톱이 그들의 작업에 심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까하는 망상
(행여나 그랬을까싶지만) 으로 위로를 삼는다.
  
- 이거 참, 돈 주고 산 단행본 중에서는 젤 비싼 책인 듯, 어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