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을 쓰고자 함은 아님)

 

 

 

 

 

 

 

 

제목에서 알려주듯 이 책은 1900년 아르누보에서 시작해서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마치는
대장정을 다루고 있다. 연대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언뜻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보이지만  그러나
잰슨의 '서양미술사',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라든가 웬디 수녀의 책, 미술사학자라고 하는 모씨의
책처럼 일반인들이 교양을 위해서 접근하기에는 다소 힘겨워 보인다.

  투명성에 대한 브라크의 헌신은 그가 시각예술의 가시성에 충실했다는 것, 다시 말해 
  다이어페인으로서의 회화 전통에 충실했음을 나타낸다 

라든가 

   이런 사진의 가능성으로 인해 원작의 미학적 통일성은 해부되며 새롭고 충격적인 
  이식이 이루어진다.... 고전적인 미학은 부분에서 전체로 나아가지만 우리 시대의 
  미학은 전체에서 부분으로 나아가며, 이런  측면에서 사진 복제는 중요한 수단으로 
  부각된다


와 같은 서술들은 이 책을 박물관 여행에 앞서 사전 지식을 쌓으려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텍스트임을 보여준다. 상태좋고 다양한 도판으로 해설을 돕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서술의
방식이 작품의 도상이나 연원을 자세히 설명해준다는가하는 부분은 극히 적기 때문에 제목만으로
20세기 미술사를 개괄할 목적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다지 적합한 책은 아니다.  704페이지에 달하는
분량과 9만 5천원(!!)이라는 가격까지도. 

 미술사학계의 올스타 멤버들이라고 할 수 있는 할 포스터, 로잘린드 크라우스, 이브 알랭 브아, 벤자민
부클로 등 저자들이 대학원 미술사 세미나에서도 가볍지않게 다루는 수준의 텍스트를 썼던 사람들이기
도 하지만 원체 근-현대 미술 내외부에 걸려있는 담론들이 작품 자체보다 더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론에 익숙치 않다면 텍스트를 따라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로쟈'님 역시 "공부하는 학생은 물론, 심도 있는 논의를 원하는 연구자 및 미술가들"이 아닌 경우에는 그냥 장서용으로 꽂아둠 직하다. 그런 게 '교양'이므로.." 라고 할 정도. ^^;

'미술史'에서 가장 필요없는 것이 '미술'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기는 한데 현대 미술사에 관한 개괄
을 마쳤거나 인문학적으로 다양한 방법론을 이용해서 작품과 그 배경을 분석해나가는 스타일에 관심
이 있는 이들에게는 매력적인 텍스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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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이 글은 쓰는 것은 통상적인 리뷰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책이 친구들에
의해 번역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친구라고 했지만 걔 중에는 대놓고 친하다고 할 사람들, 충분히 알고
지내는 사람들, 친구라고 하기엔 얼굴만 알고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편집자의 노고가 돋보이는 대목은 이 책이 원서와 같은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것, 원서의 페이지수뿐
아니라 각 챕터별로 구성은 물론 분량까지도 거의 동일하게 맞추고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결벽에 가
까운 이 주문을 맞추기 위해 친구들이 기울였을 노력은 충분히 이 책의 출판을 자랑스럽게 만든다. 

문득 드는 생각은, 내가 만일 조금만 더 학교에 남아 있었더라면, 그래서 이 친구들과 조금 더 같이
있었더라면 내 이름도 이 책에 오를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다. 성격이 한 우물을 파지 못하고
여러 우물을 조금만 파다 지쳐버리는 타입이라 딱히 그럴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내가 아쉬운
만큼 친구들의 노고가 가상하기도 하다. 

올 봄 이 친구들을 만날 때 금해야할 인사말은 '번역 잘 되가냐'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표정에서 읽히는
지지부진한 작업의 진전도가 너무 뻔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홍대에서, 광화문에서 같이 했던
몇 번의 술자리와 밤새워 쳤던 고스톱이 그들의 작업에 심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까하는 망상
(행여나 그랬을까싶지만) 으로 위로를 삼는다.
  
- 이거 참, 돈 주고 산 단행본 중에서는 젤 비싼 책인 듯, 어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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