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내 룸메가 어느날 서류 합격 통보와 함께 받아온 용지에는

'사회 저명 인사의 추천서'라는 문구가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 언론사는 매일경제신문

이었다. 나는 그 이후로 매경이라는 언론사를 믿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기대에 실망하지 않게 이번 매경 칼럼은 아주 훌륭했다.  점점 더 일취월장 발전하여

한국 자본주의의 막장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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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왕국의 언론 지배, 여기까지 왔다

[경제뉴스 톺아읽기] 매경 "흠집처럼 보이더라도 합리적으로 무시하자"
 

2007년 10월 31일 (수) 07:49:22 이정환 기자 ( black@mediatoday.co.kr)
 

   
     
 
삼성 법무팀장 출신 김용철 변호사의 핵폭탄급 양심선언은 언론에 '진실게임'이나 '논란' 정도로 소개되다가 이틀 만에 아예 지면에서 사라지고 있다. 31일 전국단위 일간지 가운데 비자금 사건을 다룬 곳은 한겨레와 경향신문, 조선일보, 그리고 매일경제가 전부다.

31일 매일경제 6면에 실린 데스크칼럼 <불편한 진실, 불량한 폭로>는 그야말로 왜곡과 궤변 덩어리다. 언론의 자본 종속이 어디까지 왔는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동주 사회부장의 글이다. 좀 꼼꼼히 들여다보기로 하겠다.

비자금 기사, 한겨레 경향 조선 매경 뿐

이 부장은 "고위 공직자들이 재산등록을 회피하려 요리조리 꼼수를 쓰고 부자들이 어떻게든 가진 걸 감추려 든다 해서 나무랄 일만은 아닌 듯하다"고 글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애꿎은 테레사 수녀를 끌어들인다. "평생을 '빈자(貧者)의 어머니'로 살았던 성녀 테레사조차도 지갑 좀 보여달라 했다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대목에서는 아연실색할 정도다.


   
  ▲ 매일경제 10월31일 6면.  
 
고위 공직자들이 재산 등록을 회피하려 꼼수를 쓰는 건 그 재산이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자들이 가진 걸 감추려 드는 건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부장은 "나무랄 일만은 아닌 듯하다"고 두둔한다.

테레사 수녀에게 지갑을 보여 달라고 했으면 아마도 그는 자랑스럽게 자신의 가난을 드러냈을 것이다. 가진 것을 숨겨야 하는 사람들과 물욕을 초월했던 테레사 수녀를 비교하는 이런 억측은 그를 모욕하는 것이다.

"진실게임 때문에 난장판 됐다"

이 부장은 "요즘 우리 주변에는 진실게임이 난무하고 있다"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꼬리를 무는 폭로와 해명 속에 한국 사회는 온통 난장판이 됐다"고 적고 있다.

"'폭로의 귀재'들이 득실대는 정치권에서 상대방 대권후보의 과오를 진실게임으로 몰아가는 모습은 5년 전과 흡사하다. 국정감사는 난데없는 국회의원 향응접대 파문으로 엉뚱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검찰 수사도 만만찮다. 변양균·신정아씨 사건에 이어 국세청장 상납의혹이 불거지면서 검찰과 국세청은 피의자 진술의 신빙성을 놓고 끝장토론식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삼성에서 보통 사람은 엄두도 못낼 호사를 누리다 퇴직한 법조 출신 임원이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을 폭로하는가 하면, 대학 총장 부인이 편입학 대가성 돈을 받았다며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삼성그룹 비자금을 둘러싼 의혹을 진실게임으로 평가절하하는 것도 어처구니 없지만 이를 두고 난장판이 됐다고 개탄하는 건 도둑 잡으라고 외쳤더니 시끄럽다고 나무라는 꼴이다. 심지어 양심선언을 한 김용철 변호사를 두고 '폭로 전문가'로 매도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시기적으로 폭로의 유혹에 이끌리기 딱 좋은 철이다. 정권은 임기 말에 접어들어 휘청거리고, 대선은 코앞에 와 있고, 사회기강은 풀어질 대로 풀어져 있으니 폭로 전문가들에겐 이때다 싶을 것이다."

이 부장은 진실과 관련해 흔하게 생기는 세 가지 오류를 정리했다. 행간을 살펴보자.

"첫째, 사람들은 사실(facts)과 진실(truth)을 쉽게 혼동한다. 사실은 한 개 행위만으로 성립하지만 그것이 진실로 받아들여지려면 많은 사람이 공감할 만한 반복과 누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어느 하룻밤에 달이 뜨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달이 사라졌다고 하는 건 진실이 아니라 주장이다."

누구도 김 변호사가 제기된 의혹을 진실로 혼동하지 않는다. 진실로 받아들여지려면 반복과 누적과정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언론이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부장은 진실이 아니라 주장일 뿐이라고 깎아 내리고 있다.

"자기 침실에 CCTV 설치할 용기 없으면 떠벌리지 마라"

"둘째, 모든 진실은 공개되는 것이 옳다는 착각이다. 신정아씨 누드사진이 각계 반발을 초래한 것처럼 진실에는 공개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자기 침실과 욕실에 CCTV를 설치할 용기가 없다면 진실을 모조리 다 밝히라고 떠벌리길 삼가야 한다."

삼성 비자금 의혹은 공개할 가치가 없는 의혹인가. 국내 최대의 재벌 대기업이 수천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과 침실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나. 이게 도대체 언론이 할 소리인가. 침실에 CCTV를 설치할 용기가 없으면 입을 다물라는 말인가.

"셋째, 진실은 누구 입에서든 나올 수 있다는 오해다. 진실성이 부족한 사람에게서 제대로 된 진실이 밝혀지는 걸 본 기억이 없다. 가치 있는 진실은 김대업 사건처럼 동네방네 시끄러운 입에서 나오기보다 오히려 앨 고어의 다큐멘터리처럼 송구스럽게 다가온다."

이 부장은 김 변호사를 김대업씨와 같은 사람으로 놓고 진실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단정짓는다. 그래서 김 변호사가 제기한 의혹은 가치 없는 진실이라는 이야기다. 의혹은 이제 막 제기됐을 뿐인데 이 부장은 무슨 근거로 가치 없는 진실이라고 판단하는 것일까.

궤변은 계속 이어진다. 이 부장은 우리가 인정해야 할 불편한 진실이 "우리 모두가 관음증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주장한다. "젊은 아가씨 치맛자락을 허락 없이 들춰보는 듯한 재미에 빠져 어느 것이 가치 있는 진실이고, 어느 것이 묻어 둘 진실인지를 혼동해선 안 된다"는 해괴한 주장을 늘어놓기도 한다.

의혹을 폭로하는 것과 젊은 아가씨 치맛자락을 들춰보는 것이 같은가. 삼성의 비자금 의혹은 과연 묻어둬야 할 진실인가. 이 부장의 진의는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치맛자락 들춰보는 듯한 재미에 빠져 있다"

"때론 사회의 흠집처럼 보이더라도 불완전한 인간이 모여사는 곳엔 '합리적 무시'가 필요하다. 도무지 양보와 인내를 모르는 폭로꾼들이야말로 사회를 위협하는 '한국판 탈레반'이라고 나는 폭로한다."

매경은 진실을 가리는 데 관심이 없다. 흠집처럼 보이더라도 합리적으로 무시하자는 이야기다. 양보하고 인내하자는 이야기다. 폭로가 사회를 위협한다고 한다. 이게 대한민국 언론의 참담한 현주소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칼럼이 버젓이 전국단위 일간신문에 실린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경제지들의 반응도 놀랍다. 서울경제 등은 아예 노골적으로 삼성전자 찬가를 부르고 있다. 때가 때인만큼 화제를 돌리려는 물타기 또는 연막작전일 수도 있고 적극적인 지지 표명일 수도 있다. 삼성의 언론 지배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경제지들은 광고 매출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재벌 대기업의 의혹을 무작정 덮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언론이라는 최소한의 책임감이나 자의식조차도 없다.

비자금 의혹에는 침묵…오찬 간담회 소식으로 도배

서울경제는 1면 <삼성전자 "2012년 매출 120조">에서 언론사 증권담당 데스크와 함께 한 오찬 간담회 소식을 전하고 있다. 비자금 관련 언급은 단 한 줄도 없다. 서울경제는 1면에 이어 3면을 통째로 털어 삼성전자의 '6대 신성장 엔진 육성' 계획에 대해 다루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 너무 저평가>라는 주우식 부사장의 인터뷰를 따로 싣기도 했다. 오찬 간담회 관련 기사치고는 비중이 지나치게 큰 데다 딱히 새로운 내용도 없다.


   
  ▲ 서울경제 10월31일 3면.  
 
머니투데이도 1면과 3면에 걸쳐 삼성전자의 해외 M&A와 간담회 소식을 전하고 있다. 머니투데이는 3면 <삼성전자 "5년 뒤 매출 150조">에서 주우식 부사장이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을 만나기 위해 약속 신청을 해놓았다는 사실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고 전했다. 머니투데이도 비자금 관련 언급은 단 한 줄 없다.


   
  ▲ 머니투데이 10월31일 3면.  
 
한국경제도 1면과 17면에 걸쳐 같은 소식을 다루고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1면에 <삼성전자 500만화소 폰 글로벌 론칭> 사진을 내걸었다. 사태의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이처럼 언론이 침묵하고 있는 이상 이 사건은 영원히 미궁으로 빠져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침묵의 카르텔…검찰과 금감위도 미적미적

한겨레는 30일에 이어 31일도 1면과 3면, 4면에 걸쳐 삼성 비자금 의혹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한겨레는 4면, <"삼성, 2002년 대선자금도 비자금서 제공">에서 "지난 대선 때 삼성 계열사 사장들이 개인 명의로 정치권에 제공한 후원금은 모두 회사 비자금에서 나왔다"는 김 변호사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 한겨레 10월31일 4면.  
 
한겨레에 따르면 검찰은 "수사 의뢰가 들어오면 착수하지만 먼저 나서지는 않는다"는 입장이고 권혁세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국장도 "일정 정도 사실 관계가 드러나야 검사에 착수할지 여부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한겨레에 따르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수사 의뢰를 하는 순간 삼성의 각본대로 김용철 개인의 문제로 끝날 수 있다"며 "당분간 검찰과 삼성의 대응을 지켜보며 2, 3탄 폭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 조선일보 10월31일 사설.  
 
조선일보도 사설에서 문제제기를 했다. 당초 중립적인 입장에서 선회한 것이다. 조선은 "재무담당 임원이 회사와 관계도 없는 외부인의 재테크를 도와주기 위해 동료 임원의 이름까지 빌려 차명계좌를 만들었다"는 삼성의 주장이 석연치 않다고 지적했다. 조선은 비밀계좌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의 편의를 위해 은행으로부터 이런 협조를 받을 수 있을까"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경향신문도 사설에서 상황을 명확히 정리했다. 분명한 것은 김 변호사의 명의로 차명계좌가 개설됐고 출처가 불분명한 거금이 이 계좌로 입출금됐다는 것이다. 경향은 금융실명제 위반과 사문서 위조는 물론이고 "횡령과 조세포탈의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최초입력 : 2007-10-31 07:49:22   최종수정 : 0000-00-0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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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짐작에, 그 시절 비공식적으로  가장 인기있었던 무협지는 만화방 구석에서 파란색 표지를 
 둘렀었던 와룡강의 작품들이었겠지만 역시나 최고는 김용의 영웅문 3부작이 아니었을까. 물론
 영웅의 신화가 나중에 녹정기를 통해 부정되기는 했어도 가장 무협지다운 플롯과 개성을 지닌

 소설로서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의 3부작은 중고등학교 내내 읽고 또 읽어 책이 다
 닳아버려 또 사서는 밑줄칠 만큼 대단한 애정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영웅문을 좋아하는 친구들
 끼리 영퀴를 나누듯 '장무기가 광명정에서 멸절사태와 싸울 때 제일 먼저 구사했던 초식은 무슨
 파의 무슨 초식이었을까' 라든가 '홍칠공이 여생에게 전수해줬던 초식은 항룡십팔장 중의 제
 몇 장 무엇이었는가' 식의 영웅문 퀴즈를 서로 내곤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에어울프가 세냐
 전격 Z 작전의 키트가 세냐 식으로 김용의 작품 중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에 무림 최고의 고수 는과연 누구일까하는 것도 단골 메뉴 중의 하나였다. (아마도 독고구패)




 요즘에야 홍콩 드라마를 챙겨 볼 일이 없고 대세 또한 미드와 일드로 넘어간 지 오래이기는해도
 예전 홍콩 TVB에서 나오던 무협지 시리즈들은 중고등학교 시절 가장 흥미로운 볼거리 중의 하
 나였다. 주윤발과 유덕화의 치기 어린 시절도 포함되어 있고 지금은 영화사에 기록되어도 모자람이 없을 양조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 혹여나 중간에 누가 하나를 빌려가서 이빨이 빠져 있으면 그거 기다리는 애환이란 마치 중요한 택배 기다리는 학의 심정의 그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신필이라 불릴만한 김용의 필력이야 장대한 3부작 내내 유려하게 이어지기는 하지만 나는 수많은
 그의 문장 중에서 이막수가 읊조리던 싯구 '세상사람들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 생사를 가름
 하느뇨' 를 아직까지도 가장 사랑한다. 냉정하고 잔인한 야차의 모습을 지닌 그녀이지만 양과와 
 소용녀의 모습에서 자신을 버린 옛 연인를 떠올리고 결국 절정곡 (정을 끊어버리는 계곡일세)
 으로 몸을 던지며 내뱉던 그 싯구는 신조협려 문장 중의 가장 백미라 할 만하다.  소설 속에는 
 일부만이 인용되지만 량서우쭝이 지은 '강호를 건너 무협의 숲을 거닐다'에 보면 그 속에 얽혀
 있는 문헌사를 상세히 전하며 전문을 게재해 놓았다. 

 
         問人間                           세상사람들에게 묻노니
         情是何物  直敎生死相許  정이란 무엇이기에 끊임없이 생사를 가름하는가
   
         天南地北雙飛客             하늘과 땅을 가로지르는 저 새야,
         老翅幾回寒暑                 지친 날개로 추위와 더위를 몇 번이나 겪었던고.
         歡樂趣 離別苦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고통 속을 헤매는 
         是中更有癡兒女              어리석은 여인이 있었네.
    
         君應有語                        님께서 말이나 해주시련만
         渺萬里層雲 千山幕景       만리 첩첩이 구름 덮힌 산에 노을질 때
         隻影爲誰去                     외로운 그림자 누굴 찾아 날아갈꼬.
    
         橫汾路  寂寞當年蕭鼓      분수의 물가를 가로 날아도 그 때 피리와 북소리 적막하고
         荒煙依舊平楚                  초나라엔 거친 연기 의구하네.

         招魂楚些何磋及               초혼가를 불러도 탄식을 금하지 못하겠고
         山鬼自啼風雨                  산귀신도 비바람 속에 몰래 흐느끼는구나.
         天也妬 未信與                 하늘도 질투하는지 더불어 믿지 못할 것을
         鶯兒燕子俱黃土               꾀꼬리와 제비도 황토에 묻혔네. 
       

         千秋萬古 爲留待騷人       천추만고에 어느 시인을 기다려 머물렀다가 
         狂歌痛飮                        취하도록 마시고 미친 노래 부르며
         來訪雁丘處                     기러기 무덤이나 찾아올 것을.


   금나라 시인 원호문의 '매피당' 중의 일절인 이 구절은 기러기의 죽음에 빗댄 절절한 가사로서 
   연인을 잃어버린 한 여인의 피토하는 서정가이자 16년 또한 오직 한 사람만을 기다렸던 양과와
   소용녀의 이야기를 대변해주는 애절한 연가이도 하다.  한 가족 몰살하는 것쯤은 아무렇지않게
   여기는 비정한 살수이지만 이쁘니까 다 용서되는 이막수와 선녀의 용모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
   소용녀는 그러니까 그 시절 남중고딩들이 한번쯤 가질만한 판타지의 여인들인 것. 나는 비교적
   현실적으로 조민을 가장 좋아했다. 

 


   (조민(여미한), 장무기(양조위), 주지약(기억 안남) )

 

   내 취향으로는 사조영웅전이 장대한 스케일을 만끽하는 재미가 있었고 신조협려는 양과와 소용녀
   의 가슴아픈 사랑에 감정이입을 했었어도 읽는 재미 자체는 장무기의 의천도룡기가 으뜸이었다. 4권
   이 지나야 본격적으로 그의 활약상을 볼 수 있는 것이 분량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지만 
   (3부 1,2,3 권은 언제부터인가 책꽂이에서 보이지 않았다. ) 그만큼 또 밀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좋았고 압도하는 무공을 지니고 있었어도 그 나이때에 그럴 법한 우유부단한 성격 또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좋았다.  후에 여러 편이 다시 제작되어 몇몇 배우가 장무기의 역을 맡았어도 
   양조위가 그 역활에 가장 어울려 보였던 것도 아마 그런 면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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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영구 선배와 함께 일을 나갔다가 의천도룡기가 새로 번역되어 나왔음을 들었다. 김일강
  의 번역으로 익숙했던 것을 다시 보니 어투가 현대식으로 많이 바뀌었고 예전에 누락되었던 부분
  들이 많이 보완되어 원래 6권짜리였던 것이 8권으로 증보되었다. 전체 작품을 '백량체'의 구성으로
  40장으로 나눈 각 장마다 제목을 붙인 것도 달라진 부분이다. 주요 부분들은 큰 변화가 없었지만 
  몇몇 인물들의 이름표기가 변한 것 - 소소, 은이정 - 이라든가 여운을 많이 남겼던 마지막 부분 -
  세 번째 소원 이야기로 즐거워하던 조민과 장무기앞에  주지약이 나타나 훼방을 놓던 - 이 원작에 
  따라 약간 늘어지는 것등 의 변화는 낯설고 아쉬운 부분들도 있다.  시네마 천국처럼 차라리 몰랐
  더라면  더 좋았을 법한 감독판을 보는 기분이랄까. 헌 것이 새 것보다 나을 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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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 후에 곡성에서 <이세 모노가타리>와 <순수이성비판>을 읽었다는 이야기를 전에 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 우연히 알라딘을 검색하다보니 <아무도 모를 내 다니는 사랑길>이라는 제목으로
이세 모노가타리의 개정판이 나와 있다. 원역자인 구정호씨가 원문의 출전을 더하고 이전의
보충 설명을 충실히 보완한데다 겐지스타일의 멋진 표지까지 더해져있다.  퇴근 후 반디앤루니스
에 들러서 개정판과 함께 같은 역자의<만엽집>을 같이 구입해서 몇 시간동안 읽고 있자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바쇼, 마사오카 시키의 하이쿠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와카 특유의 부드러움 (부드럽다 못해
간드러지기까지 하는)과 함께 농축된 표현에 마음이 흔들린 경험이 있을텐데 헤이안조의 옛
무명씨들이 흩뿌려놓은 이 정결한 언어들은 150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한 주술을 가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도 모를 내 다니는 사랑길 지키는 이는 내 지나는 밤마다 잠들어버렸으면


커버 스토리를 장식하는 이 짧은 노래도 멋있지만 몇 해전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싯구는 바로 다음
단에 걸려있는 와카이다.


    저기 흰 구슬 무어냐고 그녀가 물었을 때에 이슬이라 답하고 사라져 버릴 것을.


이 구절에 대한 해설은 다음과 같다.
 

   - 옛날에 한 남자가 있었다. 도저히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 수 없었던 여자였는데 오랫동안
     사귀어 그녀의 집에 드나들다가 겨우 보쌈을 해서는 어두울 때에 도망쳤다. 아쿠타가와라는
     강가로 여자를  데리고 도망가던 중, 여자가 풀 위에 맺힌 이슬을 보고 '저게 뭐에요?'라고
     남자에게 물었다.

     갈 길은 멀고, 천둥마저 심하게 치고 비도 심하게 내렸기에, 허물어진 헛간에 여자를 밀어
     넣고 남자는 활과 전통을 매고는 문간에 서있었다. '어서 날이 샜으면'하는 마음으로 앉아
     있을 때 귀신은 그녀를 한 입에 삼켜버렸다. 여자가 '아!아!'하고 외쳤지만 천둥소리에
     남자는 들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날도 새고 해서 들여다 보니 데리고 왔던 여자도 없어졌다.
     발을 구르며 한탄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 시대를 정확히 그리고 있는 오카노 레이코의 명작 <음양사>에 세이메이와 히로마사의 대화 가운데
바로 저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낭만적인 비사로 보이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어이없음을 세이메이는
이렇게 전한다.
 





'남자 체면에 여자를 도로 뺏겼다고 할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귀신이 잡아먹었다고...'
 (히로마사의 저 벙찐 표정.)


궁중의 암내가 섞여있는 치열한 파워게임을 배경으로 깔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또 우아한 5-7조의
와카로 만들어놓은 당대의 인간들도 귀여워 보인다. '술집 여주인인줄 알았다'라는 식과는 격이
달라 보이지 않는가.

전쟁사를 연구하는 학자는 선사시대의 한 혈거인이 다른 혈거인의 머리를 돌도끼로 내려친 이래로
이 지구상에서 전쟁이 멈춘 날이 과연 몇일이나 있을까라고 자문하며 인간에 내재된 폭력성과의
해후를 지겨워하지만, 한 씨족이 다른 씨족을 멸해버리는 상황에서도 그 대척점에는 중국의 시경
이나 구약의 아가서, 그리고 헤이안 시대의 만엽집과 이세모노가타리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깃발
을 흔들던 그 손으로 동시에 사랑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러니 섣불리 성악과 성선을 말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것이 비록 격식에 사로잡힌 허울이라 할지라도.

무사시노의 숲은 아니지만 세속과 떨어진 곡성의 갈대밭에 누워서 5-7조의 와카집을 읽고 있으면
1500년전의 무명의 필자들의 속삭임이 충실하게 바람을 타고 전해진다. 천성이 이재에 밝지 못해
자기 계발서나 경영서를 읽는 것이 체벌처럼 느껴지면서도 (사실 읽어본 적도 없지만) 풍진 가득한
사회의 칼바람 속에 떨어져있는 이상 언제 다시 그런 호기를 부릴 날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 그 봄날
따뜻했던 햇살만큼이나 온기서린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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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그때도 거리는 있었고 자동차는 지나갔다. 가을에는 퇴근길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 공중에 흩어졌다. 적어도
내게 있어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이 육체에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때 알았다. 
 
 그 때 눈이 몹시 내렸다. 눈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지상은 눈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지 위에 닿을 듯하던 눈발은 바람의 세찬
거부에 떠밀려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과 지상 어느 곳에서도 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때까지 어떠한 죽음도 눈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시작詩作메모 (1988.11) 






 

 

 

 

 

 



근래에 시를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다. 문청의 시대가 저문지 오래되어서인지
다들 집값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풍부한 어휘를 구사하기도 하고 조금 교양적이라 불리는
이들은 영화와 와인에 대해서 아낌없는 헌사를 늘어놓는다. 그런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대학 시절의 겉멋듦이 멀리는 소월과 백석에서부터 가까이는 기형도와 황지우를 경전처럼
받들며 논하게 만들었지는 모르겠으나 이제는 그런 지적 허영마저도 뿌리부터 말라비틀어진
우물이 되어 버린 듯하다. 짐짓 시대착오적인 모던을 봄내어 박인환을 읊어보고 더 올라가
고대 미상의 작자가 상재했던 서정시를 필사하는 것도 되울림없는 몸부림처럼 보인다. 

고쳐 생각해보면 그 시절 막걸리와 함께 주점의 벽을 장식했던 수많은 싯구들이, 취기 올라
구토하듯 허공에 내뱉었던 싯구들이, 오래된 종이에 정서하던 싯구들이 의미없는 외침이
되어버린 것은 비단 청자의 속물됨에서 비롯된 것일까. 듣기에 지난 세기에 아버지와 같았
던 시인들은 해탈의 경지에 달한 듯 개인의 세계로 침잠했다하고 근래의 황병승이나 이민하와
같은 세련마저 넘어 '길고' '어려워진' 시인들이 쓰는 '그들의 언어'속에서는  내 '모국어의 속살'
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런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니면 내 모자람과 비겁함을 감추기 위해
시대의 이름을 빌렸다고 해야할까.

한 때 똥을 싸면서도 시를 짓는다며 서정주然 하던 내 친구는 지방의 한 동사무소에서
소리없이 서류를 넘기고 있고 소중해 보였던 이런저런 시집들이 서가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채 몇 년째 주인의 손때를 그리워하는 지금, 이미 죽어 뼈마저도 가루가 되었을 시인의
詩作메모를 들추고 있는 까닭은 가슴을 울리던 내 소중한 어휘들이, 운율들이 시체처럼
굳어버려져 삶마저도 무력감에 휩싸여져 버린 지금을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의 일종이다. 
일상이란 그렇게 소중한 것이었거늘 무엇이 좋은지 무엇이 싫은지조차 생각하기 귀찮아져
버리는 그런 괴물이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스스로의 경고를 그를 통해 일깨우고자 하는 바람
의 일종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이라고 한다. 그 '또 다른 세상'이 밤에 내린 눈이 '눈물이 되어 스'며
들어있는 그 세상이 눈을 받아주기도 이전에 눈의 존재와 죽음 자체도 떠올리지 못하는 세상이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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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일을 핑계로 제대로 책 한 권 읽지 못하는 작금의 상황을 자책하다
키보드를 두드린다. 책을 읽으려해도 난독증이 왔는지 10페이지를 넘기기 힘들고,
영화관에서는 졸음이 쏟아지고 음악을 듣다보면 주요 패시지들을 자꾸 놓치게 된다.
이대로 가다간 카프카의 '벌레'가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불안함까지 들기도 한다.

나는 인간이 인간다움을 지켜나가는데에 가장 무서운 적은 전쟁, 가난, 호환마마가
아니라 '타성'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힘에 떠밀려
쳇바퀴의 패턴을 반복하고 어떤 비판의식을 갖지 못한다면 뇌세포 또한 그 패턴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기계의 부속품이나 다를 바 없을 것 같은 그 쳇바퀴도
개인에게는 소중한 일상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에 있는다면 무엇을 해야할까. 물론 연애를 하는 것이 바람직
하겠지만 세상과의 접촉이 단절되어 있다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상황속에서 누구는 몸을 가꾸고 누구는 의미없는 수를 세기도 하고 또 누구는
책을 읽기도 한다. 그 와중에 사시나 변리사 준비를 해서 현역 시절에 합격했다라는
전설적인 이야기들도 전해진다.

내가 군생활을 보낸 강원도 양구는 5월 신록의 계절을 맞아 그 푸르름을 시인들이
예찬할 때에도 비웃듯 눈이 내리는 그야말로 양구나라 눈나라 라고 불리는 곳이다.
둘러보아 산과 계곡과 구름만이 가득한 그 곳에서 세상과의 연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신시대를 맞아 설치되어 있을 케이블 TV뿐이다.  20대의 한 때를 그 최전방의
칼바람 속에서 보내며 나는 인간이 발명한 가장 위대한 유산은 바퀴가 아니라 문자
임을 체득하고 있었다.

부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내 경우는, 내무실 계급에 따라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정해져 있었다. 예를 들어, 내무실에서 누을 수 있으려면 병장 이상,
카세트를 들으려면 상병 이상, 책을 읽으려면 일병이상이어야 했다. 그러니까 이등병
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군대에서 가장 바랬던 것은 멀어보였던
전역이 아니라 일병 진급이었다.

그러나 사람 사는 곳이라 예외도 있기 마련. 내무실에서만 아니라면, 고참이 보는
곳만 아니라면 설사 그것이 공공연히 알려진다고 해도 눈감아주는 관행이 있었기에
나는 이등병 시절에도 점호가 끝난 시간에 책을 들고 화장실 흐릿한 불빛속에서 
변기에 앉아 가지 않는 시간을 증오하고 또 감사하며 내가 사랑하는 문구에 밑줄을
긋곤 했다.

이등병 동안 읽은 세 권의 책.


 

 

 

 

 마루야마 마사오 '일본정치사상사 연구'
 박홍규 '형이상학 강의1'
 이성복 '그 여름의 끝'

고등학교 후배이면서 전역을 며칠 남겨둔 말년 병장에게 휴가 복귀길에 부탁한 것
들이다. 어차피 흐르지 않을 시간이라면 바깥세상에서도 쉬이 읽히지 않을 것들로
정독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만한 것을 골랐다. '금일 19시에
있을 야간 작계 훈련을 위해 일보 작성을 완료하여...'와 같은 건조하다 못해 황량
하기까지한 군대안의 문체 속에서, 아름답고 유려하고 탄탄한 문체로 쓰여져 있는
저 활자들은 세상에서 유리된 신선의 언어와 같아보였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 이성복, '그 여름의 끝. -

난독에 가까울만큼 머리속을 방황하는 철학과 사학과 문학의 편린들을 그토록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외고 또 외웠던 것은 저 문자들을 탐하다보면 어느 순간 시간을 흘러
있겠지하는 부질없는넋두리였을텐데 어느새 내 바램과는 상관없이 여름은 끝나고
그 다음 여름이 오고 또 그 다음 여름이 왔을 때 나는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이성복의 싯구처럼 참모부 뒷마당 공터에 옮겨 심었던 들꽃 송이들이 꽃을 피우고
잎을 떨구고 다시 치욕의 삶을 이어갈 무렵에 장난처럼 전역은 다가와있었다.

돌아보면 그 때만큼 절박하게 활자에 중독된 적은 없었을 텐데 타성만큼이나
'바쁘다'는 핑계야말로 지금의 내가 가장 경계해야할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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