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적인 작가이지만, 왠지 나와는 궁합이 맞지 않는 듯..
하지만, 나는 그의 쿨함이 좋고 도도함이 좋다.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툭툭 뱉는 듯한 말투와 임의적으로 꾸미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고 써내려가는 그의 필체가 좋다.
자기는 전혀 의도하지 않고, 일상적인 양 툭툭 뱉어내듯한 말들이 곰곰히 생각하면 마음을 울리는 깊음이 있다. 그래서 하루키는 천재가 자기 똑똑하지 않아요라고 말하지만, 하는 짓마다 똑똑함이 철절 넘쳐서 얄미운 그런 작가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는 나랑 하루키는 안맞아 하지만, 그의 책을 또 읽는다.
<드라이브 마이카>
죽은 부인의 불륜의 남자와 대화하는 중년 어정쩡한 배우 이야기
아무리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타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건 불가능한 얘깁니다. 그런 걸 바란다면 자기만 더 괴로워질 뿐이겠죠. 하지만 나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분명하게 들여다보일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나 자신의 마음과 솔직하게 타협하는 것 아닐까요? 진정으로 타인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숙이 정면으로 응시하는 수 밖에 없어요..
<예스터데이>
도쿄 출생이면서 오사카 사투리를 죽자고 습득한 여자 친구에게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 친구에게 사귀라고 부추긴, 하지만 잘 될까봐 걱정하는 기타루 이야기. 하지만 여자 친구였던 구리야 에리카는 떠나 버렸다.
20대 미래가 불안하지만 딱히 돌파구는 없이 그저 열심히만 하루 하루 발버둥쳤던 우리의 모습이라고 할까?
시간의 속도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어긋날 수도 있어.
우리는 누구나 끝없이 길을 돌아가고 있어.
<독립기관>
능력있는 의사 도카이, 결혼은 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집착하지 않고 쿨하게 연예를 즐기던 그가 사랑에 빠져버렸다.
상사병으로 먹는 것을 포기하고 無에 근접시킨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하지만, 도카이가 그렇게 사랑한 그녀는
도카이에게 거짓을 말하고 다른 남자와 살고 있었다.
나는 대체 무엇인가.. 요즘 자주 그런 생각을 합니다.
모든 여자는 거짓말을 하기 위한 특별한 독립기관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 어떤 거짓말을 언제 어떠헥 하느냐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모든 여자는 어느 시점에 반드시, 그것도 중요한 일로 거짓말을 한다. 중요하지 않은 일로도 물론 거짓말을 하지만 그건 제쳐두고, 아무튼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때 대부분의 여자들은 얼굴빛 하나, 목소리 하나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그녀가 아니라 그녀 몸의 독립기관이 제멋대로 저지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그녀들의 아름다운 양심이 상처받거나, 그녀들의 평안한 잠이 방해받거나 하는 일은- 특수한 예외를 별도로 친다면- 일어나지 않는다.
그녀의 마음이 움직이면 내 마음도 따라서 당겨집니다. 로프로 이어진 두 척의 보트처럼. 줄을 끊으려 해도 그걸 끊어낼 칼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어요.
<셰에라자드>
학창시절 짝사랑했던 남학생의 빈집에 침입해 남학생이 사용한 사소한 물건을 훔치고, 자신의 물건을 놓고 나오는 것으로 사랑을 느꼈던 전생에 칠성장어였다던, 하바라.. 일주일에 몸이 불편한 나를 간병오는 그녀는 나에게 먹을 것을 주고 갈 뿐만 아니라 바깥 세상과의 접점이 되어 사랑도 주고 간다.
나느 외딴섬에 혼자 있는 게 아니야.. 그게 아니라 나 자신이 외딴섬이지.
셰에라자드와 그 사이에는 어떤 개인적인 규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연히 누군가에게 주어진 관계이고, 그 누군가의 기분 하나로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관계였다. 말하자면 두 사람은 가느다란 실 한 올로 가까스로 이어져 있을 뿐이다 아마도 언젠가 아니, 틀림없이 언젠가 그것은 끝을 고할 것이다. 실은 끊기리라. 늦냐 빠르냐의 차이일 뿐이다.
<기노>
평범한 샐러리 영업맨에서 부인의 불륜을 알고 쿨하게 떠나 한적한 곳에 카폐를 차린 남자.
쿨한척 했지만, 그는 마음을 숨긴 채 겉으로만 괜찮은 척했다. 아니 괜찮은 척을 하다 보니, 괜찮다라고 마음을 속이는 단게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어느 밤.. 술집에 찾아온 한 여인과 마음이 이끄는 데로 하루를 보내고.. 그는 꼭꼭 포장해온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 자기도 상처 받아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이 품는 감정 중 질투심과 자존심만큼 골치 아픈 것도 아마 없을 것이다. 그리고 기노는 왜 그런지 그 양쪽 모두에서 심심찮게 곤욕을 치러왔다.나에게는 다른 사람의 그런 어두운 부분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기노는 이따금 생각하곤 했다.
조용하고 깔끔하고 분위기도 차분하고 정말이지 당신다워...그렇지만 가슴을 떨리게 하는 것은 없어.
기노 씨는 제 스스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옳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경우도 이 세상에는 있습니다.
자신이 무엇보다 원해왔던 것이며 동시에 무엇보다 두려워해왔던 것임을 새삼 싸달았다. 양의적이라는 건 결국 양극단 중간의 공동을 떠안는 일인 것이다. 나는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않았다. 진짜 아픔을 느껴야 할 때 나는 결정적인 감각을 억눌러 버렸다. 통절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진실과 정면으로 맞서기를 회파하고 그 결과 이렇게 알맹이 없이 텅 빈 마음을 떠안게 되었다. 뱁들은 그 장소를 손에 넣고 차갑게 박동하는 그들의 심장을 거기에 감춰드려 하고 있다.
<사랑하는 잠자>
잠자는 그 불룩한 것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잘 설명은 못하겠지만, 이건 내 마음과 관계없는 일 같아요. 이건 아마도 심장의 문제일 거예요.
세계 자체가 이렇게 무너져가는 판에 고장난 자물쇠 같은 걸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그걸 또 착실히 고치러 오는 사람도 있어요. 생각해보면 참 이상야릇하다니까요. 그렇죠? 하지만 뭐. 그게 맞는 지도 모르겠어요. 의외로 그런게 정답일 수 있어요. 설령 세계가 지금 당장 무너진다고 해도, 그렇게 자잘한 일들을 꼬박꼬박 착실히 유지해가는 것으로 인간은 그럭저럭 제정신을 지켜내는지도 모르겠어요.
<여자 없는 남자들>
사랑한 한 여자를 잃는 다는것은 사랑을 잃는 것 뿐만 아니라, 그녀와 함께한 주위의 모든 것들과 시간들이 함께 휙~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후 그녀가 어딘가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녀를 데려가는 것은 간교함에 도가튼 선원들이다. 그들은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여자들을 꼬여내, 마르세유인지, 상아해안이인지 하는 곳으로 잽싸게 데려간다. 그런데 우리가 손쓸 도리는 거의 없다. 혹 그녀들은 선원들과 상관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 모른다. 그런 때도 우리는 손쓸 도리는 거의 없다. 선원들조차 손쓸 도리가 없다. 어쨌거나 당신은 그렇게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다. 그리고 한번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어버리면 그 고독의 빛은 당신 몸 깊숙이 배어든다. 그 얼룩을 지우는 건 끔찍하게 어려운 작업이다. 시간과 함께 색은 다소 바랠지 모르지만 얼룩은 아마 당신이 숨을 거둘 때까지 그곳에, 어디까지나 얼룩으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얼룩의 자격을 지녔고 때로는 얼룩으로서 공적인 발언권까지 지닐 것이다. 당신은 느리게 색이 바래가는 그 얼룩과 함께, 그 다의적인 윤곽과 함께 생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한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리고 때로 한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모든 여자를 잃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는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우리는 또한 퍼시 페이스와 프랑시스레와 101스트링스를 잃는다. 암모나이트와 실러캔스를 잃는다.
물론 그녀의 차밍한 등도 잃고 말았다. 나는 헨리 맨시니가 지휘하는 Moon River를 들으며, 그 소프트한 삼박자에 맞처 엠의 등을 손바닥으로 마냥 쓰다듬곤 했다. 하지만 그것들 모두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남겨진 것은 오래된 지우개 조각과 아득히 들려오는 선원들의 슬픈 노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