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의 역습, 그리드락
마이클 헬러 지음, 윤미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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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드락의 사전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다.

교차점에서 발생하는 교통정체, 즉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지나치게 많은 소유권이 경제활동을 오히려 방해하고 새로운 부의 창출을 가로막는 현상을 의미한다.

아무리 의미를 곱씹어 봐도 많이 어렵다.

저자 마이클 헬러는 이야기의 시작을 이집트 운하에서 시작한다. 운하에는 각 지역마다 요금 징수소가 산적해 있다. 지금처럼 입구에서 입장권을 한 번 받으면 끝인 데, 운하를 지나갈 때 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요금을 달라고 하는 꼴이다. 그러면 결국 우리는 이런 말을 하게 된다. “더러워서 내가 안 쓰고 말지”

이렇게 쓰면 아주 효과적인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소유권을 주장해서 결국 소비자들이 짜증나서 사용을 포기하게 만드는 현상을 그리드락으로 나는 쉽게 이해하기로 했다.

미국 작가들은 서부 개척시대를 가진 문화적 특성인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단어를 만들고 그것을 브랜드화하는 데 모든 책의 페이지를 활용한다.

귀납법의 대가들이라고 할까? 그리드락도 마찬가지의 구성이다.

1. 경제계에서 그리드락이라는 것을 내가 발견했다. 나는 이를 소유의 역습 – 그리드락이라고 명명하겠다.
2. 내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 수 많은 책들과 사례들을 끄집어 낸다. – 이것들을 봐. 내 말이 사실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잖아.
3. 내 말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 이렇게 하면 나처럼 성공할 수 있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 웰 보엔의 불평없이 살아보기, 샘 고슬링의 스눕, 데니엘 코일의 탤런트코드 모두 동일한 구성이었다.

그래서 미국 작가들의 책은 제목과 책 뒤 표지에 나와있는 광고 카피만 봐도 책의 반을 본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들었다.

반면 동양 문화의 책들은 마음을 적시는 이야기를 실컷 하고 마지막에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
합리성으로 본다면 서양식 구성이 효과적이다. 책의 제목과 맨 뒤의 카피 문구로 이 책을 읽어야 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논리적인 글이기에 가슴속에서 불끈 불끈 끌어오르는 감정은 느끼지 못한다. 마치 잘 구성된 논문을 대하는 기분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소유의 역습이라는 문구를 보고 뭔가 무소유의 정신 또는 최소한 나의 충동구매를 제어할 수 있는 뭔가를 기대하고 였다.
하지만 이 책은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공유재화하는 것이 좋은가? 사유화하는 것이 좋은가? 라는 거시적인 정책에 관한 이야기였으며,
작가는 공유재에서 나타나는 남용이라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사유화를 진행하는 데 그에 대한 또다른 부작용으로 소유권이 쪼개겨서 결국 그것을 통합하는 비용이 엄청나게 발생하여
자원의 활용을 아예 포기해 버리는 미활용이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라고 역설하고 있었다.
그러한 예로는 특허권으로 인해 개발을 포기하는 신약, IT기술과 쪼개진 소유권이 너무 복잡해서 이를 통합할 수 없는 통신 스펙트럼, 러시아의 상가 등이 있겠다.

그런데 이러한 예는 모두 나의 실생활과 관련이 크지 않아, 마음에 딱 와닿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러한 이론을 실제로 활용하기 위해 나는 형이하학적인 예를 찾아 대입하기로 했다.
그리드락이란? 소유권자가 너무 많아서 자원이 방치되는 현상
그리드락의 사례
1) 경매 아파트 – 세입자와 담보를 잡고 있는 채권자, 그리고 만약 이 집주인이 조직깡패의 사채까지 빌렸다면, 이 물건은 경매에 붙여져도 아주 낮은 가격에 붙여질 것이고, 이해 관계자가 더 많다라는 소문이 돌면 왠만한 사람이라면 구입을 포기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파트는 제 값도 하지 못하고 돈으로 환산도 되지 못해 여러 사람이 그냥 권리만 주장하는 상태가 될 뿐 아파트라는 자원이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게 된다.
2) 아이디어 – 회사에서 일개 사원이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행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윗 상사를 설득시켜야 하고 이것이 만약 다른 부서의 지원 (재무팀의 자금, 기술팀의 기술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하면, 각 부서를 설득시켜야 한다. 하지만 같은 월급을 받고 일하면서 누가 나서서 이런 생고생을 하겠는가? 잘 되면 어차피 상사가 가로챌 것이고, 잘못되면 다 내책임이 될 것이 자명한데.. 그리고 다른 부서의 업무 권한을 침범이라도 하는 날이면 각 팀에서 또 들고 일어설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랫 것들은 새로운 일은 추진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위에서 시키는 것만 하려고 한다. 이는 아랫 사람들의 싱싱한 아이디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그리드락이다.
3) 가정에서 – 잔인한 이야기라고 손가락질 할 지도 모르지만, 아이의 이야기에 대입해보자. 먼저 아이를 엄마 아빠가 공유재로 생각한다면, 엄마 아빠는 자기의 일을 더 시키는 데 주력할 것이다. 엄마라면 가정일을 도우라고 할 테고, 아빠라면 자기의 구두를 닦거나,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데 주력할 것이다. 아니면 밖에 나가서 어린 나이부터 돈을 벌어 오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나라에서는 돈을 버는 아이들이 많다. 그들은 아이들을 남용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엄마 아빠가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고, 아이가 아주 예쁘거나, 머리가 명석해서 후에 자신의 삶에서 많은 도움이 되게 싶다면 아이를 자기가 데려가기 위해서 필사의 노력을 경주한다. 상대방 보다 값비싼 장난감을 사주겠노라고, 최고의 교육을 시키겠다고, 각자 아이에게 상대방보다 더욱 높은 조건을 제시할 것이다. 이것이 사유화의 문제점인 비용의 상승이다. 그런데, 아이가 문제아의 소질이 다분하고, 밥 값만 축내게 생겼다. 그러면 엄마, 아빠는 서로의 책임으로 떠넘기기 시작한다.
이것이 반공유재화 되는 것이고 이것의 부자용은 아이의 재능을 사장시키는 미사용이다. 우리는 아이라는 미래의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그리드락이라는 책을 끝까지 읽는 것에는 많은 인내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새로운 시각 하나를 알게 되었다.
마치 새로운 눈을 하나 더 얻었다고 할까?
매일 매일 나는 하나의 사물을 보면서 그리드락이 존재하는 지 살펴보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수동적으로 읽고 지나친다면 재미없는 책이 될것이고 조금이라도 실생활에 응용한다면 흥미로운 책이 될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빵빵 터지는 책은 절대 아님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나는 솔직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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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눕 - 상대를 꿰뚫어보는 힘
샘 고슬링 지음, 김선아 옮김, 황상민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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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눕

스눕(snoop)의 뜻을 영어 사전에서 찾으면 기웃거리다, 염탐한다는 뜻이다. 샘고슬링은 타인의 침실, 타인의 소지품, 타인의 모습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서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정리하여 스눕이라는 말을 붙였고 그러한 행동을 스누핑이라고 이름 붙였다.
예를 들어 책상 위가 깨끗하다. 그러면 그는 정리를 잘하는 사람이고 성격은 깔끔하고 계획적이고, 치밀한 사람이라고 유추하는 것이다.
친구 집에 놀러가 책장을 기웃거린다. 책의 정리 상태는 양호하나 크기별로 정리했다던지, 한글 순서, 영어 순서로 정리했다던지, 장르별로 정리했다던지 하는 일련의 법칙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는 자유 분방한 성격이며, 책의 종류가 다양하다면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다라고 유추하는 것이다.
프로파일링 기법처럼 사물을 통해 사람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샘고슬링이 주장한 스눕이다 .
하지만, 난 이 책을 읽으며 샘고슬링이라는 사람이 그리고 미국이라는 사회가 참 멋진 사회라고 엉뚱한 생각을 했다. 샘고슬링의 이론은 전반적으로 우리가 평소 느꼈던 새로울 것 없는 것들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깔끔한 양복을 입은 사람이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사람보다는 보수적일 것이며, 계획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스케쥴러를 꺼내 약속 시간을 확인한다면 우리의 생각은 더욱 확실해지게 된다. 그런데 샘고슬링은 현명하게도 스누핑 이론에서 발 하나는 살짝 뺀다. 예외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 양복을 입은 사람이 원래는 자유 분방한 사람인데 그날 면접이 있어서 그 날만 그렇게 입은 것이었다. 라는 .. 그래서 샘고슬링은 스누핑을 할 때 주의할 사항으로 그 사물이 그 사람을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하며, 그 사물이 다른 사람의 부탁으로 잠시 보관하고 있었을 가능성 등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명심하라고 한다.
그럼 뭐지? 나는 강한 실망감을 느낀다. 그것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점쟁이랑 다른 게 무엇일까?
근심 어린 얼굴로 점쟁이 앞에 앉은 중년의 남자를 보며 점쟁이는 말한다. <사업이 잘 안돼?> 아니 좀 더 노련한 점쟁이라면 <먹고 사는 게 힘들구나!> 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점쟁이는 좀 더 용기를 내 말할 것이다. <올해는 계속 어려울 것이야. 그런데 조그만 버티면 내년에는 빛이 들어오는 구나!>

최근 읽은 책 중에 말콤 글래드웰이 지은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가 떠오른다. 말콤 글래드웰은 파일링 기법에 의구심을 드러내며 그들은 다의적이고 포괄적인 말을 주로 사용하며, 항상 변명할 구석을 만들기 위해 예외사항을 둔다고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오늘 아침 뺑소니 사고를 저지른 범죄자는 아주 어리거나 아주 늙었거나 아니면 예외적으로 일반적인 성인일 수 있다. 남성일 가능성이 크지만 다소 다혈질인 여성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것을 스눕에 적용해 보면 이런 식이다.
경차를 타는 저 사람은 검소하거나 실용적인 성격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차를 빌려서 타고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부자일 수도 있다.

자기의 속도 모르는 데 다른 사람을 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더군다나 그것을 그 사람이 가진 사물로 알아간다는 것은 더욱더 불가능한 일이다.
샘고슬링의 이론은 오랜 세월 누적된 데이터를 가지고 일반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스눕이라는 이론을 전혀 쓸모없는 것이라고 매도할 의도는 없다.
단지, 스누핑을 통해 사람을 다 알 수 있다는 식의 착각에 주의하자는 것이다.

<나에게>
책에는 두 가지의 분류가 있다. 하나는 읽으면 읽을수록 기대가 생기는 책, 다른 하나는 읽으면 읽을수록 기대가 떨어지는 책.
나에게 이 책은 후자에 가까웠다. 거대 유력 기관의 추천도서로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면 사람들이 지닌 소지품을 보고 그 사람의 심리 상태를 알 수 있는 능력자가 될 것 같았던 착각은 책의 전반부에서 급속히 식어갔다. 스눕은 단지 우리가 그냥 사소하게 지나쳐 가는 주위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었다.
하지만 소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역발상으로 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스눕을 당하는 존재로서 이 책을 활용하기로 했다.
내 방을 둘러 보았다. 우선 순서 없이 꽂혀져 있는 책들과, 들어갈 곳이 없어 방바닥에 높게 탑을 이루고 있는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샘고슬링에 의하면 이러한 사람들은 계획적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책장들의 책들을 크기에 맞게 정리한다. 그럼 나는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책상 위를 본다. 책상에는 아내와 유빈이와 같이 찍은 사진이 있고, 행운의 2달러가 있으며, 집안 화목을 강조하는 한자 성어가 적힌 액자가 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이 내가 무척 가정적인 사람으로 판단할 것이며, 행운의 2달러를 소중히 여기는 로맨티스트라고 생각하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조금 답답한 기분이 든다. 내 자신을 무장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내 방까지도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꾸며야 한다는 것과 내 물건들로 내가 판단되어 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당분간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

<유빈에게>
유빈이도 커서는 자기만의 판단 사고를 가지게 되겠지. 그것은 말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행동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집안 배경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샘고슬링 박사님처럼 소유물에 의한 것일 수도 있어.
그런데, 소크라테스 할아버지라면 이러한 말을 했을 거 같아. <남을 판단하기 전에, 너 자신을 먼저 알라고>
난, 남에 대해서는 잘 판단하려고 하면서,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돼.
그들은 모든 잘못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아. 너의 고집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라던가 너의 성급함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라고 하지. 자신의 잘못은 전혀 없는 거야. 그리고 남의 일은 쉽게 보이지. 자기가 하는 일만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느끼지.
스눕이라는 책을 통해서 내가 느낀 것은 사소한 소유물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그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라는 것과 타인의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라는 것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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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 없이 살아보기 - 삶의 기적을 이루는 21일간의 도전
윌 보웬 지음, 김민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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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없이 살아보기>

사람들은 가끔 불평을 하기 시작해서 종종 불평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항상 불평을 한다.
작가는 이런한 불평쟁이들에게 이제는 그만!! 이라고 강하게 소리친다. 그리고 불평을 그만 두는 방법으로 보라색 불평 금지 밴드를 제안한다. 원리는 간단하다.
한 손에 보라색 밴드를 차고 생활한다. 그러다 자기가 불평한 사실을 자신이 깨닫거나, 타인이 지적해 주면 보라색 밴드를 다른 손으로 옮겨 찬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 목표는? 불평없이 살아가기 21일이다.
작가도 원래는 불평없이 살아가는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한다. 아니 오히려 불평쟁이 쪽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불평이 불평을 낳는 다는 것과 불평을 하면 생각이 부정적으로 되고 생각이 부정적이 되면 삶의 자세가 부정적으로 된다는 것을 꺠닫고 불평을 멈추는 21일 작전에 들어간다.
그리고 얻어 낸 결론은 다음과 같다.
불평은 자기에 대한 변명일 뿐이다. 불평의 원인은 "바로 나"임을 알아야 한다.

■ 나에게
나는 불평이 많은 사람일까? 적은 사람일까? 솔직히 차마 불평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는 못하겠다. 그것은 뻔한 거짓말이니까.
그런데 심각하게 반성해야 겠다고 느낀 점은 나이를 먹어가면 갈 수록 불평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10대일때는 부모님의 고정관념을 불평했었고, 공부하는 기계를 만드는 한국 사회를 원망했었고, 맘껏 놀지 못하게 하는 엄마의 잔소리가 싫었고, 최신형 컴퓨터를 사주지 못하는 아버지의 넉넉하지 못함이 싫었다. 그러다 20대가 되어서는 젊음을 군대에서 보내야하는 한국의 특수성이 싫었고,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과 점점 좁아지는 취업문이 짜증스러웠다. 그리고 빽없고 부유하지 못한 가문이 아쉬웠다. 30대가 되서는 시킬 줄만 알지 할 줄 아는 거는 하나도 없어보이는 직장 상사의 뻔뻔함이 싫고, 책임을 떠넘기는 아랫직원이 얄밉고, 학교 졸업 후 연락이 없다가 자기 결혼하다고 전화하는 친구가 얄밉고, 명절에 막히는 고속도로에 답답하고, 돈 많이 벌어오라는 아내의 잔소리에 움찔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날이 늘어나는 불평들, 곰곰히 생각해보면 불평은 나의 책임 회피 수단이고, 천재 지변에 의한 사고처럼 나에게 주어지는 면죄부 같은 것이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되는 데, 주위 환경이 이래서 못한거야>라는 식의 자존심 지키기, <나는 다 잘했는 데 다른 팀원이 못해서 그런거야>라는 식의 우월감 표시하기, <왜 나한테만 자꾸 시켜요. 같은 월급 받는 데>라는 식의 억울함 표시하기였다. 그렇게 해서 남는 것은? 물론 없다. 잠시 마음이 편안해 지기는 하지만, 발전적인 모습은 전혀 없다. 마치 담배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이 책을 통해 나 역시 불평없이 살아보기에 동참해보기로 한다. 집을 나서자 마자 불평거리 투성이다.
왜 문 앞에 지저분하게 광고물을 붙이는 거야!! --> 그냥 손으로 광고물을 뗘서 버린다.
차는 왜 이렇게 막혀!! --> 원래 지금 시간은 막히는 거야, 아님 조금 더 일찍 집을 나서시던가요..
현황 파악해서 보고서 내일까지 만들 겄이라는 부장 지시에 자기가 좀 해보던가요. 자기는 항상 놀다가 정리 보고서에 빨간펜만 할 줄 알면서 --> 저 사람도 불쌍한 사람이야. 승진하고 싶어서 그렇게 노력하는 데 인정 못 받잖아. 집산다고 대출 받은 것은 얼마고! 저 사람도 밥 먹고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니 이해하자. (이것도 불평인지는 잘 모르겟다.)
(와이프) 월급 인상 없어? --> 저도 많이 받고 싶어요.
위의 이야기는 빙산의 일각, 나는 사사건건 불평을 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긍정적인 말로 바꾸고, 모든 원인을 나에게서 찾고, 변명 보다는 자기 반성을 하는 것으로 불평을 줄이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지만, 아직 난 하루에도 수십번 보라색 밴드를 옮겨 차고 있다. 나약한 인간인지라..


■ 유빈에게
아직은 말을 못하는 너이기에 불평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물론 머리 속으로 엄마는 젖을 왜 안줘? 기저귀는 왜 빨리 빨리 안 갈아줘, 더워 죽겠네.. 라는 불평을 하고 잇는 지는 모르지만, 작가가 마음 속으로 하는 불평은 괜찮다고 했으니 너는 성공적으로 불평없이 살아가고 있는 거라 할 수 있겠지.
그래서 너의 모습이 그렇게 밝은 지, 그 밝음이 주위 사람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곤 해.
하지만, 너도 말을 배우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인간 관계, 조직 사회에 놓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불평을 쏟아 내겠지. 그 중에는 아빠에 대한 불평도 어느 순간 부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겠지.
하지만 유빈아. 불평은 자기 자신에 대한 면죄부고 책임 회피고 비겁한 행동이라는 사실은 기억해 주길 바래.
불평을 하기 전에 먼저 자기의 잘못은 없었는 지 자기 반성을 해보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불평하기 시작하면 이 세상은 모든 것이 불평 덩어리란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뀌는 것은 무엇인데?
아빠에 대해 뒤에서 불평한다고 난 변하지 않아. 나한테 직접 이야기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아. 오히려 짜증만 내는 너를 아빠는 나무랄지도 몰라. 그러니 불평을 하기전에 당사자에게 논리적으로 이런 거는 바뀌었으면 해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논리를 먼저 가졌으면 해.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불평 불만을 안 가지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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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 참을 수 없이 궁금한 마음의 미스터리
말콤 글래드웰 지음, 김태훈 옮김 / 김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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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말콤글래드웰은 우리가 생각 못하고 넘어가는 사실, 그냥 그렇겠지.. 하고 넘어가는 사실에 대해서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으로 분석하고 풀어내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이 책은 총 4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는 데 말콤글래드웰의 구상이 아니라 편집자가 그 동안의 말콤글래드웰이 그 동안 쓴 글들을 분류에 맞게 편집한 책이다.

1부 외골수, 선구자, 그리고 다른 마이너 천재들은 한 분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노력하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개를 사로 잡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인간의 눈으로 개를 판단하지 말고 개의 눈으로 개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너무 자신의 일에 빠져버려 가족을 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
말콤글래드웰은 한 가지 분야에서 선구자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 평생을 이 길이라고 생각하며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왔는 데, 그 길이 막힌 길이라면 이제 더 나갈 수 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고추냉이 속에 사는 벌레에게 세상은 고추냉이가 전부다. 그러니 여러 세상을 바라보는 열린 자세가 중요하다.

2부의 테마는 이론과 예측 그리고 진단으로 사회 문제에 대한 원인과 결과 분석에 대한 말콤글래드웰의
생각이다.
너무 빨리 변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빨대를 통해 보면서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으로 좁은 시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엔론 파산 피해에 대한 책임은 물론 엔론 사장의 비도덕성이 가장 크지만 그렇다고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100% 선량하게 당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엔론 파산 전에 엔론의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좀 더 깊숙이 분석했다면 엔론의 이익이 실제적인 이익이 아니라 조작된 이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정보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정보가 너무 많았고 복잡했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노숙자의 문제에 대해서는 전체 노숙자에서 소수가 반복적이고 치명적으로 사회의 예산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소수의 노숙자에게 집중한다면 예산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난 소수의 노숙자에게 집중하게 되면 다른 노숙자들도 소수의 노숙자가 되어 혜택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부정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이미지 판독의 허점 유방조영술, 항공사진, 그리고 시각의 한계에서는 우리가 완벽할 것이라고 믿었던 유방조영술, 항공 사진 판독이 사실은 엄청나게 사진을 보는 사람의 주관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보는 사람에 따라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사진이라는 객관적인 자료가 있다는 것에 현혹되어 그것을 판독하는 사람의 주관이 결과에 미치는 비중은 미비하다고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보아온 뉴스들도 전부 사실은 아닐 것이며, 우리가 보아온 진실들이 사실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위축과 당황의 차이는 위축은 묵시적 학습이 아직 남아 있는 단계여서 몸에 밴 행동을 하게 되는 데 압박감에 의해 그 행동이 완벽하지 않지만, 당황하게 되면 묵시적 학습이 없어져 버려 머리에 의해 행동하게 되는 명시적 학습에 의한 행동을 하게 되고 이것은 곧 원초적인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당황하게 되면 더욱 위험한 것이다. 우리는 매일 위축과 당황 사이를 오가고 있다. 취업 면접관 앞에서는 긴장해서 준비해온 말을 더듬고 마음먹은 데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위축이고 당황은 합격할 줄 알았는 데 E-mail로 귀하는 우수한 인재이나 당사의 사정상 자리를 준비할 수 없었다는 글을 보았을 때 한동안 말을 잃는 것이다.

챌린저호 폭발 사고의 또 다른 진실에서는 비극적이지만 현대의 고도로 발달한 문명에서는 발생한 결과에 대해 명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과학의 결정체인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의 경우 어이없게도 폭발의 원인은 값비싼 엔진도 복잡한 전자 장치도 아닌 단순한 오링의 문제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링, 볼트, 너트 등과 같은 사소한 것에도 엔진 검사처럼 철저한 검사를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일의 진행은 너무 더뎌서 다음 세대에서나 우주 왕복선을 완성하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모든 문제를 오링이라는 것으로 귀결할 수도 없다. 우리가 미쳐 알지 못하는 부분에서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 그 사소한 원인이 불러 일으키는 문제도 다른 문제들과 조합에 조합을 거쳐 그 경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고도 문명하에서는 언제든지 이러한 문제가 일어날 것이고 그럴 때마다 조사기관에서는 결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한 가지 원인을 찾을 것이지만, 그것이 정답이라는 보장은 없고, 또다시 그러한 문제는 발생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이론은 나의 생활에도 적용된다. 아내가 잔소리하는 이유를 내가 집에 늦게 와서라고 생각했는 데, 집에 일찍 와도 텔레비전만 보고 있다고 잔소리하고, 텔레비전을 안보고 누워있으면 할 것이 없느냐고 잔소리하고, 그래서 아내랑 같이 외식이라도 할려고 하면, 돈 쓸 생각만 한다고 하고, 그래서 외식하자라는 이야기 안 하면, 좀팽이, 무드 없는 사람이라고 하고, 뭐 먹을 건데?라고 물으면 남자가 우유부단하다고 하고, 고기 먹자! 라고 하면 자기의 의견은 묻지 않는 나쁜 남자라 하고 이처럼 고도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어떤 일에 대해서 문제의 원인을 하나로 정할 수는 없으며, 그 원인을 해결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맑은 하늘처럼 깨끗이 해결되리라는 순진한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

3부 인격, 성격, 그리고 지성은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일이, 그리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위대한 시인이 되는 조건으로 젊었을 때 두각을 나타내고 애늙은이처럼 젊었을 때 삶과 죽음의 오묘한 진리와 인생의 가치라는 심오한 진리를 탐구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중년의 나이에 등단해 이름을 날린 시인들도 많으며, 젊었을 때 성공한 시인은 우리가 생각한 것만큼 많지 않았다.

우리는 범인의 심리와 주위환경을 파악해 수사망을 압축해 나가는 프로파일러에 대해 너무 환상을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왜냐면 우리는 프로파일 기법에 의해 성공한 사건에 대해서만 뉴스에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콤글래드웰은 프로파일링에 의해 해결된 사건이 전체 사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미비하다는 것을 안다면 프로파일링에 대한 환상이 깨질 것이다.
프로파일러들이 이야기하는 방법은 무당들이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중반의 남성이거나 아니면 아주 젊은 청년일 가능성이 크다.
범죄자는 이른 아침 혹은 아주 늦은 시간의 비행기를 탔을 가능성이 높고 이례적으로 낮시간의 비행기를 탔을 가능성도 있다.
다중적인 의미 혹은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 말을 하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세상에 범죄 스릴러에서 본 완벽한 프로파일러는 환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하긴 우리 주위에서도 프로파일러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
업무 지시를 할 때, 비용은 최소한으로 하면서 고급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제품을 구매하라!
심플하면서도 상세한 내용을 포함하는 보고서를 만들어라! 와 같은 어려운 말들을 하는 직장 상사들.
이것은 우리 팀의 업무이지만 나의 책임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팀장을 보면서 프로파일러도 사람인 데, 우리가 너무 많은 기대를 한 것은 아닌가 오히려 반문하게 되었다.

인재경영, 젝웰치의 GE를 시작으로 국내 삼성, LG등 대기업이 앞다투어 내걸었던 슬로건이다. 그리고 그 대단원은 <한 명의 천재가 만명을 먹여 살린다>라는 말로 연결되었다.
말콤글래드웰은 엔론의 사례를 통해 인재 경영이 마법의 열쇠가 아님을 경고하고 나섰다. 인재는 중요하지만 조직의 성격을 헤치는 인재는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조직을 송두리째 와해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재경영을 좋아한다면 부작용으로 <한 명의 천재가 만 명을 실직자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는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첫인상이 90% 이상을 좌우한다라는 말을 자주 듣곤 했는 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첫인상이 배경이 되어 그 후로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첫인상이 좋았다면, 그 후에 그 사람이 파렴치한적인 행동을 하거나, 아주 얄미운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최소한 그 다음의 행동들이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첫인상이 나빴다면, 아주 플러스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점수는 계속해서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선순환과 악순환이라고 할까?
그래서 어른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잘하라고 했던가 보다.
컴퓨터는 초기화라는 기능이라도 있어 첫인상을 지울 수라도 있을 텐데, 사람의 기억은 지워지지도 않으니, 차라리 상대방이 나에게 받은 첫인상이 어땠는지 알아봐서 나에 대한 첫인상이 나빴다면 연락을 끊고 살아야 하나? 라는 슬픈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흔히 범하는 오류는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 가 아닐까?
이 책에서는 핏볼이라는 개가 사람을 습격했다는 이유로 핏볼이라는 개를 사육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핏볼이라는 품종이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핏볼뿐만 아니라 그 전에 다른 품종들도 종종 사람들을 습격한 사례가 있기에, 핏볼이라는 품종을 일반화하여 금지시킨다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이것은 동양인의 범죄가 날로 늘어나기 때문에 중국인의 출입을 금한다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일반화의 오류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그것은 일은 간소하게 만들 수 있으며, 규격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주식시장에서 패턴을 찾아 일반화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골든크로스에는 주식을 사고, 데드크로스에는 주식을 팔면서… 하지만 그렇게 해서 돈을 번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사람에 대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으로 사람의 행동이나 주위만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해버리는 것이다.
저 사람은 영어를 잘하네. 능력 있는 사람인가 봐!.
저 사람은 부자인가 봐. 저 차는 꽤 비싼 차란 말이지.
저 사람은 공짜를 좋아하나 봐. 머리 숱이 별로 없어.
저 사람은 눈물이 많은가 봐. 눈 밑에 점이 있네.
저 사람은 욕심이 많을 꺼야. 저 덕지덕지 붙은 살들을 봐.
저 사람은 머리에 든 것이 많은 가봐. 저 커다란 머리를 보면 말이야.
우리는 너무 쉽게 저 사람에 대해서 결정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 나에게
나는 과연 합리적인 인간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해서 떠오르는 나에 대한 자문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뉴스와 신문, 책 등을 통해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의심 없이 믿었던 것들이 사실이 아니라면….끔찍한 상상이다.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이라서 시장은 수요와 공급에 의한 가격으로 이상적으로 조절된다고 믿었던 완전시장가설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못할 가설이라는 것을 지금은 이해한다.
나 역시 주식 투자를 할 때면 가끔 이성을 잃고, 내가 산 종목만을 위한 기사를 읽으며, 부정적인 기사는 외면한다. 그리고 15일에 사는 주식이 잘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일반화를 적용하고 있다.
신문, 방송, 책 등 신뢰성이 높은 매체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순한 양이 되어 모두 받아들이고 있으며, 5년에 한 번씩 대통령이 새로 바뀔 때마다 한국이 곧 서민 중심의 취업 걱정도 없고 집 걱정도 없는 행복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믿을 갖곤 했다. 대통령이 그렇게 만들어 준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람은 거짓을 진실로 만들 수 있는 위대한 존재”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80년대 광주 학생 운동도 그랬고 (나는 부끄럽게도 철저하게 광주학생운동에 대해서 배우지 못한 사람으로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광주 학생 운동은 일본 식민지 시대에 일본 학생이 한국 여학생을 희롱해 한국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이 싸움을 벌인 것인 줄 알고 있었다.) 최근의 천안함 사태도 그렇고, 오은선씨의 히말라야 14좌 등반도 그렇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이제는 헷갈리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나는 유빈에게 세상을 어떻게 이야기 해야 할까?
세상은 진실된 곳이야. 그러니 열심히 노력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너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어.. 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세상은 거짓이 많은 곳이란다. 그러니 속지 말고, 사람들 조심하고 (특히 남자들) 바보처럼 혼자만 착하게 당하지 말고, 적당히 약게 살아야 해. 라고 해야 하나..
오늘도 나는 상반 된 두 개의 대답 속에서 여전히 갈팡질팡 하고 있다.

■ 유빈에게
지금의 너의 눈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밝고, 새롭고 아름답게 보일 텐데, 그런 너의 시선을 영원히 지켜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세상은 때론 너무 어둡고 참혹하다는 것을 말해야겠네요.
너에게 지금은 엄마와 아빠가 이 세상의 전부일 테고, 배고프면 엄마가 밥을 주고, 울면 언제든지 손을 내미는 주위 사람이 있으니 걱정이 없겠지요.
그런데, 유빈씨. 커가면서 힘들다고 투정해도 울어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언젠가는 경험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너에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생겨날 거야. 당연히 그 반대일 수도 있지.
난 너에게 동화 속의 아름다운 주인공처럼 모든 것을 순수하게 바라보라고 이야기하지 않을 거야.
그 보다는 사물에 대해서 다양한 각도의 시선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알아야 해. 다양한 각도의 시선은 많은 경험과 많은 배경 지식에서 나올 수 있단다.
그러니 유빈아, 20대가 되기 전까지 너에게 중요한 것은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많이 듣는 것이라고 생각해. 기초를 형성하는 단계인 거지.
그리고 20대에는 그 때까지 유빈이 만들어온 단단한 기초를 활용해서 세상을 자기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실전 연습을 하는 거야..
그리고 30대에는 자기만의 시선을 완성하고 40대에는 자기만의 시선을 몸에 배게 하는 거야.
난 유빈이 다양한 시각으로 넓은 세상을 느껴보기를 바래요.
고추냉이 속에 사는 벌레에게 세상은 고추냉이가 전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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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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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실패한 영화 감독이자 실패한 결혼 생활로 이혼을 하고 알코올 중독에 빠진 둘째 아들 인모와 화장품 외판원 어머니와 폭력 전과자인 100kg을 자랑하는 무식하고 힘만 쌘 형 오함마, 그리고 두 번째 이혼 후 막 나가는 딸 민경을 데리고 온 미연이 어쩔 수 없이 다시 어머니 집에서 동거를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집의 평균 나이는 49세. 하지만 나이만 평균을 훌쩍 뛰어 넘었지, 모아 놓은 재산도 능력도 사회적 지위도 없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집안이다. 나 같았음 빗자루를 휘둘러 지금까지 키워줬으면 나잇값을 해야지 왜 지금 기어들어와서 난리야!! 라고 했을 텐데.. 인모의 엄마는 뭐가 그리 좋은지 매일 삼겹살을 구워 먹인다. 엄마가 되어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잘 먹이는 것뿐이라는 생각일까? 그런데 철 없는 것들은 서로 먹겠다고 나이 50이 가까워져서도 울고 불고 싸운다.

하지만 아무리 가족이라도 일정 수준의 거리를 지키는 것은 필요한 법.
어렸을 때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갔을 법한 일들이 나이를 먹고 나서는 추리와 논리로 분석하고 파고 들게 되었다. 그 결과 인모의 가족들은 서로에게 밝혀 유익할 것이 없는 일들을 하나 둘씩 밝혀내게 된다.
무책임한 아버지의 바람과 또 무책임한 어머니의 맞바람, 그렇게 생겨난 자식들, 진실을 들추니 인모네 가족은 가족이 아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벽한 가족이라고 할 수 도 없는 이상 야릇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는 항상 삼겹살 파티를 준비했던 것이다. 가족이라는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가족은 영원할 수 없는 법. 서로의 비밀을 들춰내 상처내기를 하던 가족들은 다시 서로의 길을 찾아 떠난다. 오함마는 바지사장으로 한탕을 준비하며 다시 어둠의 세계로 걸어 들어갔고, 인모는 애로 감독으로 소일거리를 하며, 미연은 술장사를 하며 재혼을 준비한다.
같이 있을 때는 서로를 못 잡아 먹어 안달이었던 그들도 타인들의 세상에서 살 때면 가족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오함마는 멋진 한탕을 하고 해외로 도주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영향으로 한국에 남은 인모에게 어둠의 그림자가 찾아온다. 하지만 인모는 절대로 오함마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못난 형이지만, 반만 피가 섞인 형이지만, 그래도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나에게
가족이란 무엇일까?
누군가는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이라고 했고(그래서 식구라고 한다.) 누군가는 같은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인모네 가족은 다른 어떤 가족보다 진한 가족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빠져 있는 하나가 있다. 혈통, 그것은 피를 나눈 사람들이라는 민족주의적 배경을 완벽하게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차피 피를 나눈 가족도 아닌데, 뭔 상관이야!>라는 악에 찬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난 인모네의 비극은 가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모가 영화가 망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한국의 명감독으로 부와 명성을 얻었다면, 가족이 같이 모여 사는 일도 없었을 테고, 서로의 치부를 들추며 아픔을 주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오함마가 어줍잖은 핫바지 건달이 아니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건달이었다면, 엄청난 포스를 가진 집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가족을 이루는 조건에 경제력이라는 항목이 중요한 것 같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가 기존의 가족을 정의하는 말이라면, 최근에는 <물보다 진한 피는 돈으로 살 수 있다.>라는 물질주의적 요소가 첨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에게 두 명의 형이 있다고 하자. 한 명은 학교 선배고, 다른 한 명은 피를 나눈 형이다. 학교 선배는 내가 일하는 벤처기업의 사장이고 친형은 결혼했다가 이혼해 지금은 내 자취방에 기거하고 있다. 나에게 참치 선물 세트가 있다. 두 명의 형들 중 누구에게 줄까?
친형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학교 선배였다. 그 만큼 가족이라는 사람들도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선권이 주어진다는 뜻일 것이다.
이제 <우린 가족 아이가!> 라고 외치는 무조건적인 가족 사랑은 없다.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고 피해를 주지 않는 배려가 있을 때 가족이라는 이름은 유지될 것이다

■유빈에게
너는 선택의 권한 없이 우리 가족이 되었고, 나는 너를 곱게 키워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래서 씁쓸하지만 가장 큰 재테크는 부자 아빠를 만나는 것이라고 했는지도 몰라. 요즘은 부자 아빠도 아니고 부자 할아버지라고 하더라…
유빈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기쁨과 동시에 밀려온 감정은 무거운 의무감이라고 할까?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라는 다짐을 했다. 자식이 가지고 싶은 것을 다 사주고, 자식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다 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것은 모든 부모의 희망일거야.
그런데, 유한법칙이라고 모든 부모가 부자가 될 수는 없다. 너도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고, 사회를 알아가면서 비교라는 것을 하게 되고, 한계라는 것을 알게 되면 아빠가 해 줄 수 있는 한계를 분명 알게 될 것이다. 그 때 두 가지 반응의 있지. 하나는 가난한 아빠를 원망하고 자기가 성공할 수 없는 이유를 아빠에게로 돌리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빠의 한계를 알고 자신이 어떻게 할 것인지 알아가는 것, 이렇게 두 가지가 있지. 난 유빈이가 두 번째의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바래.
농경 사회에서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부유하지 않았기에, 별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부모의 뒷바라지가 20%고 자신의 노력이 80%였어. 그런데 지금은 모든 일에 경제력과 시간이 따라야 해. 1년에 수백만 원하는 영어 유치원에 다니고, 1년 대학교 학비가 천 만원이 넘고, 1년에 삼 천만원이나 하는 어학연수가 필수코스인 현대 사회에서 가난한 부모를 만난 아이들이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점점 더 희박해지고 있어. 난 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거야. 회사도 열심히 다니고, 알뜰하게 살 거야. 그래서 유빈이가 하고 싶은 일을 돈 때문에 못하게 하는 가슴 아픈 일은 겪지 않으려고 해. 그리고 너에게 돈 때문에 소중한 젊은 날을 돈을 벌며 보내는 일은 겪지 않게 하려고 해. 나 역시 젊었을 때 그 소중한 시간을 아르바이트하며 보냈기에 아직도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는 걸.

하지만 유빈아. 난 하나의 선은 확실하게 긋고 싶다. 난 너에게 무조건적인 지원을 베풀 생각은 전혀 없음을 말이다.
아빠와 엄마도 노후에 너에게 손을 벌리지 않기 위해 준비해야 하고, 사회에서는 투입된 자원만큼의 성과는 얻어야 하기 때문이야.
100원을 투입해서 50원의 효과 밖에 없다면, 차라리 투입을 안 하는 편이 낳겠지.
그리고 만약 그 길의 끝이 낭떠러지라면, 그 동안의 노력과 자원은 아무 소용이 없겠지.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이것을 하니까 나도 해야지! 라는 생각보다는 이것을 정말 하고 싶다라는 것을 먼저 알았으면 좋겠어. 많이 고민하고 많이 방황하고 많이 경험해서 10대에는 자신이 무엇에 가슴 떨림을 가지고 있는 지 알았으면 한다.
난 너에게 공부를 잘하라는 소리 대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 지 아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하고 싶구나. 그래서 난 유빈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에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할 생각이야. 하지만, 다른 사람이 하니까, 라는 일에는 별로 지원할 마음이 없구나.

그리고 우리의 지원을 공짜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래.
아빠도 아침에 늦잠 자고 싶고, 유빈이 학교에 가는 것이 매일 즐겁지 않은 것처럼 규율과 책임이 따르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즐겁지 많은 않아.
그렇게 일해서 받은 것이 월급이고, 그것으로 유빈이가 먹고 공부하는 것이야. 그러니 엄마, 아빠가 유빈에게 주는 돈이 공짜라고, 쉬운 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음 해.
아빠가 너무 냉정하다고 하겠지만, 아빠는 경상대 출신이고,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야 하는 구매팀에서 일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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