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이따금 생각이 나서 다시 봤다. 막상 다시 볼려니 마음을 다잡아야 볼수있었다. 예전에 봤던 시(詩)나 영화를 다시 보게되면 처음에 강렬한 느낌과 감동은 찾을수 없다. 예를 들어 <토토의 천국>에서 늙은 토토가 옛여인을 만나는 장면이 있는데 처음봤을때 사람들 사이로 눈길이 맞주치는 장면이 길게 느껴졌는데 다시 보니 시간상으론 같은 프레임이었다. 강렬한 느낌은 물론 시간차이로 달랐던 것이다.
<흐르는 강물처럼>을 처음봤을때 느꼈던 것은 우선 삶이 빨리가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제시도 죽었다....>라는 독백과 강물의 배경은 적잖이 충격이었다. 목사의 설교도 내내 가슴에 남긴 남았다. <완전하게 이해할수는 없지만 완전하게 사랑할수는 있다..>두번째 봤을때도 그말은 사뭇쳤다. 대신 그말앞부분이 깊게 공명을 했다. <가까운 사람조차 도움이 필요할때 도움을 주지못했다.>..
사람들은 목사의 마지막 설교부분을 말하지만 폴<브래드 피트분>이 죽고 나서 노먼이 부모에게 전하는 장면도 인상깊었다. 목사는 아픔에도 계속 묻는다.
<나에게 할말이 더 없느냐..> <어느손인가..>그는 자신의 상처가 더 벌어짐을 아랑곳하지 않고 감당할수 없는 자식의 죽음조차 한부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처음봤을때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목사가정의 어머니에 대해 눈길이 갔다. 너무나 순수하고 여리고 자식의 사랑이 넘치는 상은 마치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을것 같은 사람이었다.
막상 두번째로 보니 원작자의 회상도 상상하게 된다. 칠순이 넘겨 처녀작을 내놓은 <흐르는 강물처럼>은 자전적 소설인데 저자의 지난 추억이 강하게 느껴지게 됐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몬타나를 배경으로 한 웅장하고 수려한 자연의 찬미도 포함되지만 동생에 대한 사랑이 저자 즉 노먼은 아버지 못지않게 강하게 나타나있다.
노먼의 부인이 되는 <제시>의 오빠가 잠시 머물고 떠나는 장면은 노먼의 동생 <폴>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제시는 오빠가 내년에 온다고 말했지만 다시는 오지 않을거라 우는 장면이다. 그리고 노먼에게 묻는다 <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도움을 안받는지 알아요?> 노먼은 모른다고 한다.
이 대답은 노먼이 아버지의 마지막설교부분에서 눈시울 적시는 부분과 연결된다고 본다. 노먼은 동생폴의 죽음이 아버지삶은 물론 자신의 여생에서도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나 하는 아련함이 짙게 내포되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어느 영화평론가는 고도의 윤리의식을 보여줬다고 하는데..난 이 영화가 자연을 배경으로 고도의 윤리의식을 당연히 사람이 가져야 할 자연스런 삶이라고 말했다는게 마음에 든다.
새삼 몬타나의 웅장한 산림과 삶의 빠름이 가슴에 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