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 떠돌이 철학자의 삶에 관한 에피소드 27
에릭 호퍼 지음, 방대수 옮김 / 이다미디어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여러 철학자들, 작가들, 그리고 활동가들을 보면 누구나 이런 생각이 한번은 들었을 것이다. 

저런 유형의 생각, 느낌, 활동은 어딘가에서 (자신을 포함해서...) 한번쯤은 누구에게서 느끼고 생각봤던 것이라는 거다. 저들은 마치 그  생각이나 느낌등의 순도 높은 결정체인양, 대표인양 그리고 실현해야 하는 양 존재해 있는 것이다. 

호퍼가 매력적인 것은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독식한 미디어, 지식과 철학, 사고를 인허가 내고 공식화한 카피지식인들의 수다스럽고 철저히 준비된 말들이 세뇌시키는 영혼 제조 공정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들을 얼마나 잘 들어 왔으며 실천하고 있는가 말이다. 

<잘 들어야 한다...>듣는 진리와 처신법들. 자신들 내부에서 솟는 결단과 진실과 통찰의 제공아래 분쟁도 없애는 간교한 지혜. 실은 듣는 자들은 <애매하게  가진 자들>이다. 

그전에 <목격하는 자>들이 있다.  수많은 진리와 신과 지혜가 난무하는 이곳에서 그들이 하는 짓을 목격을 한다. 목격하는 자들은 가진것 없는 <작은자>이다. 그들만이 목격을 할수 있다. 그들만이 자신도 예외없이, 수시로 가해지는 현장에서 <목격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아마 호퍼가 성경에 매력을 느낀 것도 이런 정서였을 것이다. 또한  메시아인 예수가 세상에 오는 방식도 이런 원리가 아니었을까..예수는 운명적으로 시작을 <목격의 자리>에서 작은자의 종결로 끝을 맺는다.  이랬기 때문에 인간과 세상을 정확히 알지 않았을까..그래서 인간을...사랑하지 않았을까...역설적으로  그 사회, 단체의 코어의 속성을 가장 잘 아는 자들은, 알고 싶으면.. 못잘것 없는 자가 되보는 것이 진리일 것이다. 

호퍼의 보는 법과 약자의 자기혐오에서 나오는 강렬한 적응력을 새삼 세월이 지나면서 공감이 간다..사람은 타인의 조롱과 착취에서 삶의 태도를 형성해 가니까 말이다...

다만..자기혐오에 그것에 대한 정의로운 분노가 더할때 호퍼처럼 자신을 건설적으로 만들고 한층 개선된 삶을 향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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