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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 루이 알튀세르 자서전
루이 알튀세르 지음, 권은미 옮김 / 이매진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존재를 문득 깨닫는 시점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움직이는 것이 어떤 성질과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다행히도 우리를 움직이는 그것이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과 암울한 과거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밖에 있는 것을, 비록 명확히 알수없고, 말할수 없는 것이라도...본다면 우리는 삶을 힘들지만 영위해 나간다
<당신은 어떻게 살아왔습니까>라는 질문을 듣는다면 많은 이야기도 필요하고 삶의 신념에 대해서도 말하지만, 또한 사람이라는 것은 단순히 몇마디와 이야기로 규정지을수 없음을 잘 알지만 이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라는 책에서 얻는 한가지 생각은 복잡한 인간임에도 모든것을 무력화시키거나 그것을 압도하는 <코어>가 사람의 특성중 하나임에 성찰 할수 있다는 것이겠다.
예를 들면 이런식으로...각자의 <코어>의 파생되고 숙명지어진 파생논리와 변이, 증폭이 삶의 장면을 만난 반응의 역사라고 할까..인생이라는 것은...
이 책을 읽어보면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죽인후 시간들을 회고할때 끔직하다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 한다. 그가 말한 것이 전부사실이라면...예컨대 어머니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자신밖에 없고 자신은 온전한 한 사람으로써 존재할수 없다는 불안과 절망으로...늘 자신을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자로써 이미 운명지어진 것이고 다른 희망은 없었던 것인가...하는 의문을 가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책 중간중간에서 말하는 고백은 이런 끔찍한 삶의 모습에서 묘한 감동으로 다가오는데..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지금 나는 지출과 위험이 없는, 즉 돌발 사건이 없는 삶이란 없다는 사실, 그리고 돌발 사건과 지출(매매되는 것이 아니라, 무상의 지출, 그것은 공산주의에 대해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정의다)은 삶 전체의 일부분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삶의 궁극적 진리에서, 그리고 하이데거가 정말 잘 표현했듯이 삶이라는 그 사건에서, 즉 삶의 출현과 그 귀결에서 삶 그자체라는 사실을 이제는 확실한 근거를 갖고 깨닫게 된 것 같다.>
몸싸움을 하지도 않았던 저자는 왜 그렇게 길게 어머니의 면모를 나열했겠는가..그는 자신에게 이제 다른 모습을 원했던 것이다. 돌발사건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 포로생활에서 탈출을 할수 있음에도 탈출을 하지 않았던 자신에게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을 소개할때 많이 소개된 부분 <따라서 삶이란 그 모든 비극에도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 나는 지금 예순일곱 살이다.그러나 나는 마침내 지금, 나 자신으로서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청춘이 없었던 나로서는 그 어느때보다도 지금, 곧 인생이 끝나게 되겠지만, 젊게 느껴진다. 그렇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의 앞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 뒤 나는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생각한다. 즉 그것은 자신을 부풀리고 '과장'하는 주도권을 쥐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상대방의 욕망과 리듬을 존중하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 그러나 받아들이는 것을, 하나하나의 선물을 인생의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배울 줄 아는 것, 그리고 전혀 자만하지 않고 전혀 강요하지 않은채 똑같은 선물을, 똑같은 기쁨을 상대방에게 줄 줄 아는 것이다. 요컨대 단순한 자유다>
그가 고백했듯이 변태적 사랑의 모습과 삶의 두려움의 부분들은 실은 단순한 자유를 구가하는 자연스런 자신이 아닌 자신이 발현하는 빗나간 분출이었고 치료이었고 傷이고 喪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숙명의 코어안에서는 어쩌면 미래가 없다는 것을 그는 나중에 깨닫지 않았을까... 결점많고 자기파괴의 욕망이 부글거리는 그가 늘 불안하게 했던 자신의 무존재감을 주도권으로 해결하력 했던 것을 위에서 말한 것 처럼 단순한 자유와 선물로 대응함으로 그는 자신을 사랑하게 될 예감과 청춘의 도래를 예순일곱살에, 사랑하는 여인을 죽인후 깨닫게 된 것이 아닐까...
그의 사상과 연관되어 고백했던 것을 보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고 그의 개성과 상황과의 만남을 생각해보는 것도 많은 관점을 제공하리라 본다.
나를 포함해 자신에 대한, 근원적인 불만을 가진 자들... 지난 시간이 그것을 만들었고 아무리 그것을 회상해서 현재에서 발버둥치더라도...해결은 어쩌면 <이곳>이 아니라 이미 <선물과 자유>에서 발견되는 <단순한 기쁨>의 영역에서 자신을 이동시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미래가 오래지속되는 이유는 삶이 얼마 안 남아도 자신이 온전히 존재하고 이어서 삶이 매순간을 선물로 받아 들임으로 시간은 절대적인 유일성의 안정또는 평안과 똑바로 눈을 마주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