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4-네팔 트레킹 편>을 읽다가, '비박하다'라는 단어에 눈이 멈추었다.    

 "어머, 남희야. 저 별빛 좀 봐."
사흘간의 흐린 날씨 끝에 쏟아져 나온 별들이 창가로 바싹 고개를 들이밀고 있다. 
"꼭 비박하는 기분이다. 눈 쌓인 산과 별빛이 다 보이고....."
"침낭 속에 누워 있지. 침낭 바깥 공기는 싸늘하지.... 정말 비박할 때랑 비슷하네."
(96~97p) 
     

 난생 처음 보는 단어, 비박. 문맥상으로는 '야영'을 뜻하는 것 같은데, 국어사전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다. 검색 결과, 정확한 표기 형태는 비바크(Biwak,독). 동아새국어사전에 따르면, "등산에서, 천막을 치지 않고 바위 밑이나 나무 그늘, 눈구덩이 따위를 이용한 간단한 야영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당연히 한자어일 줄 알았는데, 독일어였다니, 깜짝 놀랐다.  

두산 백과사전에 따르면,     

등산 용어로서, 텐트를 사용하지 않고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하룻밤을 지새는 일을 뜻하는 독일어이다. 군대가 야영할 때 경비병이 밤을 지새는 'bi(주변) + wache(감시하다)'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주로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짐을 간소화하고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비바크를 할 때는 침낭, 침낭 커버, 매트리스, 가림막, 해먹 등을 주로 사용하며 동굴, 큰 나무나 바위 아래, 낙엽이 쌓인 곳 등 습기가 없고 건조한 장소가 적합하다. 프랑스어로는 비브왁(bivorac)이라고 한다.  
   

  그렇다면...남은 문제는 '비박하다'라는 표기가 과연 바르냐는 것. 입말로는 '비박하다'라고 줄여 쓸 수 있겠지만, 표기를 할 때는 어원을 살려 '비바크(를) 하다'라고 쓰는 게 합당하지 않을까 싶다. 독일어를 한자어로 엉뚱하게 오해하지 않기 위해서도 말이다. 검색을 해보았더니 각종 신문 단행본 할 것 없이 '비박하다'를 일반적으로 많이 쓰고 있다. '비바크를 하다'라고 쓴 경우가, 빈도상 오히려 적다. 때로 이렇게 입말이 글말을 압도해버리기도 하는데... 혹시 또 모를 일이다. 잘못 쓴 말이 굳어져 '비박하다'가 사전에 새롭게 등재되는 날이 있을지. 그러지 않는 한, '비바크(를) 하다'로 쓰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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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perty

1 재산, 자산;소유물(possessions)

2.【법】 소유권(ownership);소유;소유 본능, 물욕
3 부동산, 소유지, 토지(estate)
4 자유롭게 처분 가능한 것
5 (어떤 물건 고유의) 특성, 특질;【논리】 고유성, 속성

 

   
 

 라틴어 데코룸이 번역되어 생겨난 소유권, 사유재산, 적절함, 고유성(property) 같은 용어들이 서구의 논리학 그리고 수사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갈 만한 사실이다. 키케로의 <의무론>과 <웅변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제들Topics>에서 우리는 수사학의 토포스(topos), 즉 '장소들의 장소(place of places)'로서의 토픽(topic) 개념을 본다. '장소'를 뜻하는 '토포스'는 정체성의 확정이고, 어떤 것에 있어 고유한 것, 즉 본질을 말하며 토지 등기의 근거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명제에 있어서의 적절함과 한시적이자 상대적인 '속성'의 문제를 대조한다. 고유함, 적절함, 적합함, 사유지, 소유권이란 하나의 명제에서 서술되어 내포된 것이 주제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결정적인 것이며 따라서 '적합한 것(proprietas)'이고 '자국의 것'이다. 부적절한 것은 자국의 것이 아닌 것, 형상언어, 국경 외부 야만인들의 그것과 같은, '알 수 없는 지저귐'이다. 고유함, 적합함, 사유재산은 개인 정체성의 핵심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따라서 소유물과 고유성으로 정의되는 개인 정체성이란 번역되어 실재에 등록된 것이고 가시적이며 사물적 성격을 지닌다.

<트릭스터, 영원한 방랑자> 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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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를 읽다가 '모럴리스트'를 설명해놓은 대목에서 눈이 멈췄다.

 사상사나 철학사에 몽테뉴는 등장하지 않는다. 문학사에서는 그를 ‘에세’라 불리는 수필의 시조로 다루지만, 몽테뉴를 수필가라 부르는 사람도 없다. 그에 대한 가장 흔한 호칭은 모럴리스트다. 모럴리스트를 뭐라 번역할까? 도덕주의자? 천만의 말씀이다.
일반적으로 모럴리스트란 그리스 로마의 전통적 휴머니스트, 특히 회의론의 영향을 받은 17세기나 18세기의 철학적 작가들을 뜻한다. 몽테뉴 같은 반합리주의자. 반체계주의자, 반형이상학주의자가 이에 속한다. 그 공통의 관심은 인간을 특히 감정이나 정서의 측면에서 자기인식에 이르도록 이끄는 것이다. 따라서 지성은 약화된다. 아니 과도한 지성이나 정신을 경계한다. 어쩌면 모럴리스트는 차라리 감정주의자라 번역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설명으로는 불충분하다. 무엇보다도 모럴리스트의 특징은 그 웃음에 있다. 그런 점에서 ‘웃는 모럴리스트’란 동어반복이다. 그러나 웃지 않는 모럴리스트도 종종 있으므로 꼭 그렇게 볼 수는 없다. 예컨대 파스칼이나 알랭과 같은 좀 고리타분한 도덕 선생 스타일의 모럴리스트도 있다. (중략)
우리에게는 이런 모럴리스트가 없다. 굳이 찾는다면 김형석, 안병욱, 이어령, 김동길, 이태규 등을 꼽을 수 있겠지만, 그들에겐 웃음이 없다. 최근의 박노자나 강준만에게도 웃음은 없다. 그들 역시 도덕 선생이다.
(18~19p) 

 

 검색에 들어가보니, 국어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으며  

모럴리스트 [moralist]
[명사]<문학>16세기부터 18세기에 프랑스에서 인간성과 인간이 살아가는 법을 탐구하여 이것을 수필이나 단편적인 글로 표현한 문필가를 이르는 말. 몽테뉴, 파스칼, 라로슈푸코, 라브뤼예르 등이 이에 속한다.

 

 백과 사전에는 '모랄리스트'라고 등재되어 있다.


모랄리스트 [moralist]

인간성에 대한 성찰을 주로 에세이·격언집·단장(斷章) 등의 형식으로 남긴 일련의 프랑스 작가들. 원어명 moraliste

‘도덕가’라는 뜻도 있다. 16세기에 《수상록》을 쓴 몽테뉴를 필두로 모랄리스트 문학이 절정을 이룬 것은 17세기의 고전주의 문학시대로, 《잠언과 성찰》의 라 로슈푸코, 《팡세》의 파스칼, 《사람은 가지가지》의 라브뤼예르 등이 나왔는데 18세기 후의 보브나르그, 샹포르, 쥐베르 등도 이 계보에 속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있는 그대로의 인간 모습을 허심탄회하게 규명하고, 살아 있는 현실과의 접촉을 한시라도 잃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일상생활의 경험을 단편적으로 기술하고 이에 대한 처세훈(處世訓)을 기록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보편적인 인간상을 그리려 하였다. 몽테뉴의 “사람은 누구나 자기 속에 인간조건의 완전한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라는 말이 모랄리스트들이 보편성을 지향하는 근거이다.
프랑스 정신의 다른 산물(産物)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독일식 관념론과 영국식 경험론과의 중용(中庸)을 찾아볼 수 있다. 모랄리스트들이 인간을 반성함에 있어서 개념적 사유에 따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있을 수 있는 것으로서의 인간을 그리려고 한 것은 그들이 개념에 대한 인간의 우위성에 확고부동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확신으로 그들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인간상을 즐겨 그렸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모랄리스트 전성기에서의 인간상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오네트 옴(honnête homme)이다.
프랑스 문학은 쿠르티우스가 말한 바와 같이 ‘인간에 관한 연속강연이며 인간학의 교정(敎程)’이므로, 모랄리스트라는 칭호는 소설가 ·극작가 ·사상가 ·종교가에게까지도 확대하여 쓰이는 경우가 많다. 몽테뉴의 친구 라보에시, 경건한 종교가 상 프랑수아 드 살, 철학자 데카르트, 우화시인 라퐁텐, 극작가 몰리에르, 가깝게는 아미엘, 베르그송, 알랭, 지드, 발레리, 보나르 등에서도 모랄리스트의 요소가 뚜렷하다.
프랑스 문학을 구성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모랄리스트적 요소이며 수많은 모랄리스트를 가지고 있는 것이 프랑스 문학의 근본적 특질이기도 하다. 한때 플랑드르 지방에서 장세니스트를 모랄리스트라 부른 시대도 있었다.

백과사전의 설명 중에서 '도덕가라는 뜻도 있다'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모럴리스트/모랄리스트를 '인간성을 탐구한 일련의 문필가들'로 보는 것이 보다 일반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럴리스트/모랄리스트를 '도덕가'라는 뜻으로 더 많이 쓰고 있는 듯하다.

모럴리스트/모랄리스트를 검색하다보니 <씨네21>에서 이동진& 김혜리 기자가 나눈 '메신저토크'의 한 대목이 눈에 뜨이고, 또 눈에 거슬린다. 

낮은: 좀전에 <밤과 낮>이 가진 중량감을 잠깐 이야기했잖아요. 에릭 로메르가 리얼리스트이자 모럴리스트로 불리는 반면 홍상수 감독은 리얼리스트지만 모럴리스트는 아니라고 생각해왔는데, <밤과 낮>에서 성남이 죄 짓고 지옥 가느니 죄를 범한 한눈을 뽑고 천국 가는 게 낫다고 설교할 때… ‘앗 이제 모럴리스트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

에릭 로메르는 리얼리스트이자 (인간성 탐구가로서) 모럴리스트이며, 홍상수 감독 역시 그러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김혜리 기자의 생각을 덧붙이자면 <낮과 밤>에서는 (도덕가로서의) 모럴리스트의 면모도 보였다, 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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