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의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를 읽다가 '모럴리스트'를 설명해놓은 대목에서 눈이 멈췄다.

 사상사나 철학사에 몽테뉴는 등장하지 않는다. 문학사에서는 그를 ‘에세’라 불리는 수필의 시조로 다루지만, 몽테뉴를 수필가라 부르는 사람도 없다. 그에 대한 가장 흔한 호칭은 모럴리스트다. 모럴리스트를 뭐라 번역할까? 도덕주의자? 천만의 말씀이다.
일반적으로 모럴리스트란 그리스 로마의 전통적 휴머니스트, 특히 회의론의 영향을 받은 17세기나 18세기의 철학적 작가들을 뜻한다. 몽테뉴 같은 반합리주의자. 반체계주의자, 반형이상학주의자가 이에 속한다. 그 공통의 관심은 인간을 특히 감정이나 정서의 측면에서 자기인식에 이르도록 이끄는 것이다. 따라서 지성은 약화된다. 아니 과도한 지성이나 정신을 경계한다. 어쩌면 모럴리스트는 차라리 감정주의자라 번역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설명으로는 불충분하다. 무엇보다도 모럴리스트의 특징은 그 웃음에 있다. 그런 점에서 ‘웃는 모럴리스트’란 동어반복이다. 그러나 웃지 않는 모럴리스트도 종종 있으므로 꼭 그렇게 볼 수는 없다. 예컨대 파스칼이나 알랭과 같은 좀 고리타분한 도덕 선생 스타일의 모럴리스트도 있다. (중략)
우리에게는 이런 모럴리스트가 없다. 굳이 찾는다면 김형석, 안병욱, 이어령, 김동길, 이태규 등을 꼽을 수 있겠지만, 그들에겐 웃음이 없다. 최근의 박노자나 강준만에게도 웃음은 없다. 그들 역시 도덕 선생이다.
(18~19p) 

 

 검색에 들어가보니, 국어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으며  

모럴리스트 [moralist]
[명사]<문학>16세기부터 18세기에 프랑스에서 인간성과 인간이 살아가는 법을 탐구하여 이것을 수필이나 단편적인 글로 표현한 문필가를 이르는 말. 몽테뉴, 파스칼, 라로슈푸코, 라브뤼예르 등이 이에 속한다.

 

 백과 사전에는 '모랄리스트'라고 등재되어 있다.


모랄리스트 [moralist]

인간성에 대한 성찰을 주로 에세이·격언집·단장(斷章) 등의 형식으로 남긴 일련의 프랑스 작가들. 원어명 moraliste

‘도덕가’라는 뜻도 있다. 16세기에 《수상록》을 쓴 몽테뉴를 필두로 모랄리스트 문학이 절정을 이룬 것은 17세기의 고전주의 문학시대로, 《잠언과 성찰》의 라 로슈푸코, 《팡세》의 파스칼, 《사람은 가지가지》의 라브뤼예르 등이 나왔는데 18세기 후의 보브나르그, 샹포르, 쥐베르 등도 이 계보에 속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있는 그대로의 인간 모습을 허심탄회하게 규명하고, 살아 있는 현실과의 접촉을 한시라도 잃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일상생활의 경험을 단편적으로 기술하고 이에 대한 처세훈(處世訓)을 기록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보편적인 인간상을 그리려 하였다. 몽테뉴의 “사람은 누구나 자기 속에 인간조건의 완전한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라는 말이 모랄리스트들이 보편성을 지향하는 근거이다.
프랑스 정신의 다른 산물(産物)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독일식 관념론과 영국식 경험론과의 중용(中庸)을 찾아볼 수 있다. 모랄리스트들이 인간을 반성함에 있어서 개념적 사유에 따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있을 수 있는 것으로서의 인간을 그리려고 한 것은 그들이 개념에 대한 인간의 우위성에 확고부동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확신으로 그들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인간상을 즐겨 그렸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모랄리스트 전성기에서의 인간상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오네트 옴(honnête homme)이다.
프랑스 문학은 쿠르티우스가 말한 바와 같이 ‘인간에 관한 연속강연이며 인간학의 교정(敎程)’이므로, 모랄리스트라는 칭호는 소설가 ·극작가 ·사상가 ·종교가에게까지도 확대하여 쓰이는 경우가 많다. 몽테뉴의 친구 라보에시, 경건한 종교가 상 프랑수아 드 살, 철학자 데카르트, 우화시인 라퐁텐, 극작가 몰리에르, 가깝게는 아미엘, 베르그송, 알랭, 지드, 발레리, 보나르 등에서도 모랄리스트의 요소가 뚜렷하다.
프랑스 문학을 구성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모랄리스트적 요소이며 수많은 모랄리스트를 가지고 있는 것이 프랑스 문학의 근본적 특질이기도 하다. 한때 플랑드르 지방에서 장세니스트를 모랄리스트라 부른 시대도 있었다.

백과사전의 설명 중에서 '도덕가라는 뜻도 있다'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모럴리스트/모랄리스트를 '인간성을 탐구한 일련의 문필가들'로 보는 것이 보다 일반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럴리스트/모랄리스트를 '도덕가'라는 뜻으로 더 많이 쓰고 있는 듯하다.

모럴리스트/모랄리스트를 검색하다보니 <씨네21>에서 이동진& 김혜리 기자가 나눈 '메신저토크'의 한 대목이 눈에 뜨이고, 또 눈에 거슬린다. 

낮은: 좀전에 <밤과 낮>이 가진 중량감을 잠깐 이야기했잖아요. 에릭 로메르가 리얼리스트이자 모럴리스트로 불리는 반면 홍상수 감독은 리얼리스트지만 모럴리스트는 아니라고 생각해왔는데, <밤과 낮>에서 성남이 죄 짓고 지옥 가느니 죄를 범한 한눈을 뽑고 천국 가는 게 낫다고 설교할 때… ‘앗 이제 모럴리스트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

에릭 로메르는 리얼리스트이자 (인간성 탐구가로서) 모럴리스트이며, 홍상수 감독 역시 그러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김혜리 기자의 생각을 덧붙이자면 <낮과 밤>에서는 (도덕가로서의) 모럴리스트의 면모도 보였다, 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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