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참 길들이기

- 아멜리 노통 <두려움과 떨림> & 나쓰메 소세키 <도련님>

<tv 손자병법>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이리저리 꼬이는 직장 내 인간관계를 병법의 기술과 지혜를 빌어 풀어가는 내용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한 사람 있다. 늘상 난처한 표정으로 우는 소리를 해대던 만년 과장(오현경 분). 그는 명민한 처세꾼이 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당장에 직장을 때려치우지도 못하는 이 땅의 수많은 샐러리맨들의 자화상이었다.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은 ‘밥벌이’라는 사적인 필요 외에도 능력과 처세를 갈고 닦아 시스템에 적응하겠다는 암묵적 동의를 전제한 것일 터이다. 그 속에는 ‘자기개발’이라는 건설적인 개념 외에도 사적 관계망과 위계서열에 있어서 제 나름 껏 눈치를 굴려야 하는 좀스러운 차원도 포함되어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힘 겨루기, 눈치 보기, 회유나 배척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면서 노련한 전략가가 되어가든지 또는, 누렇게 시들어가든지 할 것이다.


처음엔 누구나 풋풋하고 싱그러운 ‘신입사원’이었다.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순수한 열망에 가득 찬 시절. 하지만 자신이 발 들여놓은 곳을 서서히 파악해 나갈수록 커다란 물음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 전쟁터에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 또, 남기로 결정했다면 앞으로 어떤 전략을 취할 것인지.

<두려움과 떨림> 그리고 <도련님>은 바로 신입사원의 성장통을 다룬 소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소설의 두 주인공 모두 적응에 실패한다. 아니 적응을 거부한다. ‘통과의례’ 또는 ‘조직의 전통’이라는 명분에 가리워져 있는 길들이기의 폭력성을 직시한 까닭이다.


<두려움과 떨림>의 주인공 아멜리는 대기업의 말단 신입사원이다. 통역사로 취직했지만 차 심부름에서부터 우편물 나눠주기, 달력 정리하기, 복사하기 등등 잡일만 주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타 부서의 보고서 작성업무를 도와준 것을 계기로 직속 상사의 눈 밖에 난다. 감히 고속승진을 탐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날 이후로 험난한 가시밭길이 시작되어, 결국은 화장실 물품관리원으로까지 지위 하락한다.


<도련님>의 주인공인 ‘나’는 시골마을의 햇병아리 교사다. 시골이라고 해서 사정이 나은 것은 아니다. 작은 마을이다 보니 국수를 몇 그릇 먹었고, 경단을 몇 개 먹었는지까지 다 소문이 날 지경이다. 숙직실 침상에 메뚜기를 집어넣는 등 짓궂은 학생들의 장난은 그렇다치더라도 정의감 강한 주인공으로선 동료 교사들의 이간질과 농간을 그냥 보아 넘기기 힘들다.



결국, 두 주인공 모두 불의한 세계와 과감한 결별을 하고 나와 아멜리는 소설가로, ‘나’는 철도회사의 기수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이들에게는 ‘손자병법’의 지혜는 없었으되, 과단성 있는 용기가 있었다. 버티기의 기술이냐, 언제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냐는 각자의 선택이겠지만, 양쪽 무게 모두 만만치 않다는 것이 생활인의 숙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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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8-01-09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두려움과 떨림>을 재밌게 읽어서, 후배 사원에게 빌려줬는데,,,, 걔들은 주인공이 이상하다고 ㅎㅎㅎ

시간이 가면서.... 좀 어리버리했던 제가 조금씩 노련한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으쓱할 때도 있었어요..,,, 반면.. 소심증이 지나쳐 지는 거 같아서 비애스럽기도 했고요.

뭐, 지금은 생활인의 숙명 ㅎㅎ 이라, 1년, 2년 그렇게 이 생활을 연장해 가고 있는데 의미를 둔다는....

자일리 2008-01-10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 님, ㅎㅎ 웃음에 왠지 쓸쓸함이 밴 것 같아요...
그래도 늘 파이팅하고 계시죠?
저도 좀더 씩씩해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