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Mr. Know 세계문학 24
제임스 A. 미치너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이 전해주는 소설의 참맛은 ‘시간을 견딘 힘’에서 나온다.

“기다리세요. 인생에서 좋은 일들은 아기를 낳는 것과 똑같은 과정을 거쳐야 해요. 90퍼센트는 기다리는 일이죠.”(480p) 라는 <소설> 속 대목이 알려주듯. 그러니 온전히 시간을 들여 <소설>을 읽을 때에라만 <소설>은 (자기) 텍스트의 재미뿐 아니라, ‘소설’ 장르의 재미 또한 전해준다.

그런 점에서, 문학의 열병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마저 끊어버린 <소설>속 ‘래트너 베노’라는 인물을 떠올리게 된다. 베노가 조금만 더 견딜 수 있었더라면 그렇게 속절없이 죽어버리지는 않았을 텐데. 베노는 펜으로 시간을 새기는 대신, 칼로 시간을 베어버렸다. 

열병만으로는 분명 소설을 쓸 수 없다면, 무엇이 더 필요할까. 소설을 쓰려는 작가는 얼굴만 두꺼워야 할 것이 아니라, 엉덩이 근육도 단단해야 한다. 평생에 걸쳐 한 주제로 8부작을 탄생시킨 루카스 요더처럼 꾸준히 앉아서 쓰고 또 써야 하는 것이다. 문학에의 열병으로 달아오른 심장을 가라앉혀 호흡을 한 일자(一)로 가다듬기란, 도 닦는 지난한 과정과 다름 아닐 것이다. 흔히 무능한 작가들이 한 장 쓰고, 찢고, 두 장 쓰고, 담배 피고, 세 장 쓰고, 머리를 쥐어뜯는 식으로 묘사되는 것도, ‘견디기’의 어려움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 테다.

이렇게 열망을 끈기로 승화시킨 후에도 작가는 여전히 참을성 많은 철면피가 되어야 한다. 가족과 친구 등 비전문적 독자에서부터 문우, 편집자, 비평가 등의 전문적 독자에 이르기까지 출판 전 검토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이때 일일이 얼굴 붉혔다간 출판하기 어렵다.

또다시 인내를 요구하는 기나긴 수정 작업을 거쳐 출판이 되었다 하더라도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출판기념회, 인터뷰, 팬 사인회 등등 판매 부수를 올리기 위한 모든 노력을 아까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서점 및 언론사와 연계하여 홍보하는 일도 집필 작업의 연장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드디어 서점에 꽂히게 된 소설 한 권! 새삼 감동적이지 않은가.

“지금껏 내가 책을 사랑해 왔다고는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책이란 신비스러운 존재였었다. 마치 그것들이 저절로 마력에 의해 솟아나듯이 도서관 책장에 꽂혀 있는 완성된 물건으로만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가 사무실로 전화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책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게 되었다.” (456p) 라는 제인 갈런드의 깨달음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헌신적으로 요더를 뒷바라지한 아내 ‘엠마’, 믿음직한 조언자 ‘허먼 졸리코퍼’, 열정적인 편집자 ‘이본 마멜’, 줏대 있는 평론가 ‘칼 스트라이버그’, 진지한 독자 ‘제인 갈런드’……. <소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설을 살찌운 사람들을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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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7-12-26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오! 일일이 얼굴 붉히지 않는 일 중요한 것 같슴다~
비단 소설가에게 뿐만 아니라, 사회에 발을 담은 누구에게나~

자일리 2007-12-31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이에요. 이카루 님 u.u

2008-01-02 1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