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스천 나이트의 진짜 인생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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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 멋대로 하라?

 오래된 관용 표현 중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라는 표현이 있다. 앞의 표현을 좀 더 명확하게 나타내면 '튼튼하다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일테다. 인간은 왜 도끼가 튼튼하다고 믿었는가. 그것은 그 사물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맥락과는 다르다. 그것은 서로 간의 신뢰가 깊어졌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가진 공감 능력으로부터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것을 신뢰하는 기억을 만드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그 도끼가 튼튼하든 말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중요한 건 우리의 믿음이었다. 그래서 인간은 '한때 튼튼했던 도끼에 발등 찍혔다'고 좀처럼 표현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바라보면 제멋대로 믿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거 과연 괜찮은 걸까?

 

2. 서배스천 나이트에 대한 의심과 믿음

 v에 의하면, 서배스천 나이트는 러시아에서 영국으로 이민 간 유명한 작가이자 자신으로부터 서로 떨어져 지내던 이복 형이다. v는 그의 전기를 쓴다. 웃기는 점은 실은 그에 대해서 쓴 글은 원래 있단다. 비서가 쓴 글이다. v는 이 글이 자신의 형에 대해 완전히 잘못 서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건 비서가 쓴 글이 자신이 생각하는 서배스천 나이트에 대한 믿음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v는 자신이 서배스천 나이트를 믿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틀렸다. v는 그저 스스로 규정하는 서배스천 나이트의 이미지를 믿고싶은 것 뿐이다.

 

3. v에 대한 믿음과 의심

 v는 진짜 서배스천 나이트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마치 v의 정체성은 서배스천의 그것과 동일해 보인다. v는 진지하다. 그렇지만 나보코프는 v의 이런 시각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이 책의 결말부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v는 죽었다고 알려지던 서배스천 나이트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래서 v는 마침내 그 놈의 '진짜' 서배스천 나이트를 만난다. 그리고 잠깐 잠이 들었다 일어난 v는 병상에 누워있던 그가 사실은 서배스천 나이트가 아니며 진짜 서배스천은 몇 시간 전에 병원 내부의 다른 병실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4. 가짜 전기와 진짜 인생

 그러나 v의 서배스천 나이트에 대한 생각이 거짓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v가 쓰고자 했던 전기는 진짜이다. v는 정말 서배스천 나이트를 안다. 다만 그의 생각이 비서가 생각하는 서배스찬 나이트보다 우위에 있다고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v는 오직 자신의 고유한 시선으로 서배스찬 나이트를 안다. v는 서배스천 나이트를 알 수 없다. 그러나 v가 서배스천 나이트를 결코 알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을 때, v는 서배스천 나이트의 전기가 아닌 온전한 삶을 믿을 수 있다. 나는 나보코프보다 낙관적이다. 인간은 서로를 결코 완전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존대하여야 하며 동시에 그로부터 믿음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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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탐구 대우고전총서 41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음, 이승종 옮김 / 아카넷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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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열함의 산물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적 탐구는 극한의 시적 표현을 지닌 논리 철학 논고과는 상이한 난해함을 보여준다. 이 저작을 보면서 한 문단마다 그의 치열한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3, 못해도 2명이 나눠서 기술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기분열적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하나의 우주를 보는 듯한 완전무결함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 저서는 사후 출간된 미완성작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살아 생전에 철학적 탐구를 완성할 수 없다고 직감했다고 한다. 그의 치열함은 범인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경지에 이른듯 하다.

 

2. 필연성의 세계, 유아론의 세계

 논고를 완성한 이후 그는 모든 철학을 완성하였다고 선언한다. 10년 간 떠난 그는 홀연히 돌아와 철학적 탐구를 재개한다. 그는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한걸까? 그의 정확한 생각은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아마 러셀을 비롯한 그의 철학을 잘못 이해한 동료 철학자들 그리고 논고가 내포하고 있는 유아론 때문이라고 본다. 여타의 철학자들과는 달리 그는 철학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완전히 지워버리려는 데에 목표를 둔다. 그의 전기 철학 역시 같은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의 철학자 동료들은 언어의 무의미함을 모두 지우고 언어의 표상으로서의 세계만이 유일한 세계라고 단정짓는 논리실증주의자의 길을 걷는다. 그의 전기 철학이 철학하는 사람 개인의 세계만을 정당화하는 유아론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우연함의 긍정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전기 철학을 비판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철학적 탐구를 재개하였다. 그의 후기 철학의 가장 큰 변화는 기존의 그림 이론을 실천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 철학하는 자의 사실의 총체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언어 게임을 통해 확정된다. 결국 그의 철학은 일말의 확실성 마저 폐기하고 일상의 우연함을 긍정하라고 말한다.

 

4. 이상한 철학 나라의 엘리스

 이러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마치 하트 여왕을 보고 이건 카드에 불과하다고 외쳐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흡사하다. 언어의 일종인 수학 역시 트럼프 카드와 마찬가지이다. 수학은 그것을 사용하는 우리의 게임에 따라서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그는 이미 전기 철학에서 수학은 모두 항등식이므로 사이비 명제에 불과하다고 말하였다. 의미의 등가어떤 플라톤의 이데아적 실재가 존재해서가 아니다그것은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약속으로만 가능하다.

 

5. 지혜의 열매

 비트겐슈타인은 죽기 전 자신이 멋진 삶을 살았다고 사람들에게 전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런 그의 말은 젊은 날 남겼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와 같은 말과 비교했을 때 지극히 평범하다. 멋진 삶이란 무엇인가? 그는 소중한 일상을 위하여 치열하게 상상하고 반성하는 삶이라고 보여주는듯 하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단지 보여질 수 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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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알고 있다.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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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거나 그가 받은 형이란 암흑 속에서 1000() 킬로미터를(우리 세계에서도 요즘은 미터법을 쓴다네.) 걸어가라는 것이었는데, 1000조 킬로미터를 다 걸으면 그때는 그를 향해 천국의 문이 열리고 모든 걸 용서받을 거라는 거였지······.“

 “너희들의 저세상에는 1000조 킬로미터 말고 또 어떤 고문법이 있지?” 이반이 어쩐지 이상하게 활기를 띠면서 말을 가로 막았다.

 “어떤 고문법이 있냐고? 아이고, 그런 건 묻지도 말게. 옛날에는 별의별 고문법이 다 있었지만, 요즘은 도덕적인 것들이 점점 더 많이 생겨나선 양심의 가책과 같은 헛소리들뿐이라네. 이것도 자네들 때문에. ‘자네들의 풍습의 완화때문에 생겨난 것들이라네. 뭐 그래 봤자 누가 득을 봤나, 득을 본 건 오로지 양심 없는 자들뿐이지. 원래 양심이란 게 없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낄 턱이 없었나 말일세. 그 대신 아직 양심과 명예를 간직하고 있는 점잖은 사람들만 고생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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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의 서구, 朝鮮의 열대 - 근대 학문과 예술은 어떻게 열대를 은폐했는가 서강학술총서 91
이종찬 지음 / 서강대학교출판부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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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랄한 여우스러움

 이종찬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설명하면서 여우와 고슴도치의 비유를 든다. 그는 연구 스타일에 따라 여러 분야를 포괄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여우형 인간과 한 분야에서 깊은 정통함을 드러내는 고슴도치형 인간으로 분류한다. 그는 두 형태의 인간이 서로 협동하여 융합적 연구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아마 그는 발랄한 여우형 인간에 속할 것이다.

 

2. 열대학이란 무엇인가요?

 사실 카테고리를 필수적으로 나누어야 하는 블로그의 현 특성상 역사로 분류했지만, 사실 이종찬은 이런 분류법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은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을 모두 망라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는 서양이 지금까지 몇 번의 과학혁명이나 많은 문화 발전을 이륙하는 데에 숨겨진 배경으로 열대 지역을 꼽고 있다. 이러한 테마를 바탕으로 그는 진화생물학, 양자역학과 같은 추상적인 현대 과학을 접하는 우리의 시선으로는 도무지 과학처럼 느껴지지 않는 식물분류학이나 자연사학, 고고학, 근대 의학을 탐구한다. 동시에 그는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열대라는 시선 역시 견지한다. 심지어 열대 지역을 해양 무역의 관점에서도 바라보기도 한다. 특히 조선과 열대라는 전혀 무관하게 보이는 두 단어를 사이에 두고 어떻게 우리는 열대를 망각하게 되는 지를 파헤칠 때에는 쾌감마저 느껴졌다. 사실 이렇게 많은 주제를 다루다보면 어느 한 분야는 배척하거나 소홀이 여기기 마련인데 그는 이런 단점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아마 이 저서는 그가 추구하는 분류로부터의 해방에서 열대만큼 강렬한 생명력을 얻는 듯하다. 모두 다 열대학이다!

 

3. 외올실의 필요성

 근자에 들어 통섭의 사고가 한국 학계 기준으로 2000년대에 살짝 유행하였다가 다시 침체하는 분위기이다. 그것의 원인을 파헤치는 일은 필자의 수준에서는 지극히 단편적인 해명에 그칠 가능성이 높고, 설사 제대로 조망하더라도 그것이 큰 의미를 가질 지는 의문이다. 더욱이 이런 훌륭한 사례를 발견하였을 때는 말이다. 오히려 이것을 가지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상상하며 반성할 것인지를 돌이켜 보는 것이 좀 더 유효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이종찬의 이 글은 무척이나 다양한 분야를 열대라는 단 하나의 외올실을 가지고 엮어간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그가 가진 외올실은 어느 학문에서 주어 온 것이 아니라 고유한 것이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는 스스로의 학문적 고민을 스스로 직접 창조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삶의 질문은 학문 그 자체 안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다. 물론 그건 쉬운 일은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학문, 경제, , 예술 시스템이 매우 복잡하고 거대하여 우리의 정신을 손쉽게 재단한다. , 문명의 산물은 우리를 편안하게 만드는 동시에 정신의 경로의존성을 만든다. 하지만 우리가 주어진 조건들을 반성하고, 더 나은 것을 상상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지평을 여는 기회를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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