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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18
플라톤 지음, 강철웅 옮김 / 이제이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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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항변하는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 은 대화 편의 제목이 변명이 아닌 항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어에서 변명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부정적인 의미 때문이다. 나도 그 점에 동감한다.


2. 가장 지혜로운 사람

 신탁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알지 못하는가? 그것은 내가 학문을 탐구하는 이유이다. 앞의 의문에 답을 내리려면 무엇을 아는 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공자가 자로에게 말한대로 안다는 건 안다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3. 소크라테스와 스티브 잡스

 소크라테스는 아마 당시 누구보다 이성적인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테네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에 실패했다. 그렇다면 현대에 가장 설득력 있는 말을 하는 인물 중 하나인 스티브 잡스는 어떠한가? 스티브 잡스는 감성을 자극하는 화술과 쇼멘십으로 청중이 지루할만한 신제품 설명회를 흥미로운 이벤트로 만들었다. 애플 제품을 줄 서서 사는 것을 보면 그의 전략이 적어도 부정적인 인식을 주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4. 이성과 감성의 틀에서 벗어나 너 자신을 알라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감성적인 말을 해야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사실을 몰랐던 걸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는 인간을 오직 이성적인 동물이라는 틀에서 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인간은 이성적이어야만 하는 동물이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인간은 자신과 관련 없는 타지의 난민을 보며 슬퍼할 수 있다. 인간의 뇌는 파충류의 뇌인 뇌간, 포유류의 뇌인 변연계 그리고 영장류의 뇌인 전두엽을 모두 포함한다. 다시 말해, 인간을 이성과 감성을 함께 가진 존재이다. 때로는 조금 더 이성적일 수도 있고 감성적일 수도 있을 따름이다. 너 자신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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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아이테토스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16
플라톤 지음, 정준영 옮김 / 이제이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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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승의 역사

 인간을 역사적인 존재라고 말할 때, 인간을 그렇게 만드는 데에는 상상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언어 그리고 그것을 쌓아올리는 기억이 필요하다. 이러한 체계는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다. 그것은 그냥 공적으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이 흘러 새로운 정보가 나타남에 따라 그 체계가 다른 체계로 대체될 수 있다. 예컨대, 새롭게 발견되는 사료는 역사의 정설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료 발견 이후의 정설이 사료 이전의 정설보다 더 진보했다고 표현할 수 없다.


2. 인식론: 지식 체계를 점검하다

 역사는 기본적으로 현재로부터 과거를 요청하는 상상이다. 따라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 역사 기술을 절대적인 가치 기준으로 두지 않는다. 문제는 모든 지식 체계가 이런 특징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특히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실증적 지식인 과학 지식 체계에서 대두된다. 물론 이런 실증적인 체계는 언제나 경험이라는 법정에서 재판에 처해질 것이다. (콰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 지식체계를 현실에 적용하기 전에 스스로를 완전히 파괴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이 체계의 오류를 최소화하고 싶어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철학은 메타 학문으로써 더 명확한 지식 체계를 추구하고 이해하는 인식론이 된다.


3. JTB: 정당화된 참인 믿음

 테아이테토스에서는 지식 체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설명을 동반한 참인 판단'이라고 말한다. 현재 이것은 게티어의 반례에도 불구하고 '정당화된 참인 믿음'으로 아직까지 나름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이유로 플라톤의 이 저서는 악명높은 난해함에도 중요한 대화편 중 하나로 여겨진다.


4. 감성 독단의 시대에서

 많은 수의 포스트 모더니즘 철학자들은 철학을 개념의 창출이라 칭하고 통일된 개념 표기조차 꺼린다. 이들의 이런 주장은 2000년 이상 인간을 이성의 틀에 가두고 자행되어온 폭력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유효하다. 그러나 그들이 무비판적인 상상만을 강조하고 기존에 수행해오던 철학의 가치를 부정한다면 인간을 감성의 틀에 가두는 꼴일 것이다. 현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철학의 태도는 상상과 반성을 적절하게 이끄는 것이지 어떤 이론의 틀을 만들고 거기에다 강제 집행하는 형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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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레보스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19
플라톤 지음, 이기백 옮김 / 이제이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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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좋은 것은 즐거움이다

 좋은 것은 무엇인가? 먼저 어떤 가용성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실용주의의 관점이 있다. 한 마디로 나에게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것이 바로 좋은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의 경제 가치로 환산하는 자본주의와 유사하다.

                  

2. 좋은 것은 분별이다

 다음으로 분별을 중시하는 논리주의의 시선이 있다. 말하자면 인간의 불행이 그릇된 인식을 통한 실천으로 인해 발생하므로 이를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발상은 논리학으로 철학의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였던 분석 철학 운동과 흡사하다. 물론 사물의 이데아를 기하학적으로 규정하고자 하였던 플라톤과 사실의 언어를 논리학적으로 정리하려고 했던 분석 철학자들은 같은 문제를 두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풀고자 하였다.

 

3. 적도(to metrion): 분별은 즐거움에 선행하는가

 플라톤은 좋은 것이 한정되지 않은 무엇을 한정을 짓는 자가 개입할 때 적도를 이룬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는 분별되지 않는 상태를 적절한 분별로 대처하였을 때 즐겁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4. 실용주의의 관점에서의 적도(to metrion): 즐거움과 분별의 지평융합

 그렇지만 사실 실용주의자의 시각에서 즐거움과 분별은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 분별 없이 즐거움만을 추구할 경우, 인간은 즐거움을 지속할 수 없다. , 인간은 유한한 자원을 통해 최선의 즐거움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경제학적 분별이 필요하다. 또한 즐거움 없이 분별만을 추구할 경우, 인간은 박제된 현실에 갇혀 살게 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분별 없이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는 강박증인 철학자의 병에 앓게 된다. 이 상태로 철학적 문제들을 연구하다 보면 그것의 알맞은 결과를 위해 논리적이랍시고 현실에 전혀 반영될 수 없는 해결책을 내놓게 된다. 결국 좋은 삶을 위한 적도란 즐거움과 분별을 해석자를 통해 서로를 동일 선상에서 해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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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논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7
플라톤 지음, 이상인 옮김 / 이제이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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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탁월함은 가르칠 수 있는가

 학생이 성장하는 데에 있어서 스승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2000년도 전에 언급되었을 메논에도 이러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스승은 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가? 메논은 그것을 탁월함이라고 보는데 그것이 가능한 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2. 탁월함이란 무엇인가

 플라톤의 저서 메논에 나오는 탁월함은 과거에 덕이라는 용어로 번역되었다. 한자 세대가 아닌 나에게 덕보다야 탁월함이라는 단어가 좀 더 거부감 없이 다가오지만 여전히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플라톤이 말하는 탁월함이란 인식이라고 한다. 또한 탁월함은 가르칠 수 있지만 그것을 가르쳐줄 교사가 없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플라톤이 말하고자 한 탁월함은 단순히 인식 능력(=오성) 자체와는 무관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인간은 스스로 선한 본성을 바로 세울 때 선한 존재가 된다고 말한 맹자의 그것과 가깝다. 다시 말해, 이것은 실천으로 완성되는 영역이다.

 

3. 실천은 가르칠 수 없다

 인간은 아무리 훌륭한 지식 체계를 가지고 있더라도 현실에서 그것의 사용에 의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발적 실천은 가르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스승이 학생에게 할 수 있는 건 실천을 이끌어내기 위한 깨달음을 주고자 함이다. 그래서 제자백가의 성인들이나 불교의 선승, 프리드리히 니체 같은 사람들은 단박에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을 쓰기도 한다. 때때로 그것은 이해를 한층 더 멀어지도록 만들지만 제대로 먹히기만 한다면 인간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기도 한다. 세상의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은 최종적으로 자신의 실천을 스스로의 의지로 만들어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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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현상학자의 일기
엔조 파치 지음, 이찬웅 옮김 / 이후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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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상학에 대한 이해의 어려움

 현상학을 이해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니체의 신의 죽음 선언 이후 실재하는 하나의 보편자를 찾으려는 시도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그런 시대적 배경 안에서 등장한 철학들 중 하나가 바로 현상학이다. 현상학에서는 먼저 특정 대상을 의식적으로 지향하면서 그것에 대한 판단 중지를 통해 그 대상을 그것 자체로서 환원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서로에 대한 상호주관성에 대한 이해와 의식의 흐름 그 자체인 시간 이해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아무리 현상학 이론을 정확하게 기술해도 이러한 설명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이것은 대개 현상학의 독특한 발상 자체가 원인이다.

 

2. 현상학의 체험

 그런 시선에서 이탈리아의 현상학자 엔조 파치가 현상학의 체험에 대한 암시를 남기는 그의 일기를 읽는 것은 꽤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그가 직접 경험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현상학의 관점에서 서술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일기를 읽는 것은 현상학적 체험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이것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그의 일기를 읽다 보면 의식의 흐름기법을 사용하는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헤르만 브로흐, 로베르트 무질, 이상과 같은 작가들의 글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현상학에서의 시간 이해가 이런 작가들의 서술 아이디어와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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