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 평전 - 천재의 의무 Meaning of Life 시리즈 8
레이 몽크 지음, 남기창 옮김 / 필로소픽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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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정 인간에 대한 성찰의 의미

 어떤 인물의 평전은 쓴다는 것은 무모한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어떤 평전이든 기껏해야 한 시선만을 오롯이 담아낼 뿐이고, 남겨진 삶의 부분은 깎여나가 버리기 마련이다. 사케를 마시면서 그것의 기원인 쌀의 향취를 더듬는 과정이랄까. 그러나 이런 점을 견지하더라도 이 평전은 일급의 작품에 속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생애를 비교적 적합하게 해석할 뿐만 아니라 그의 철학까지 함깨 연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철학자는 사상가인가

 철학자의 삶을 아는 것이 필요한 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위의 소제목에 대한 생각에 달려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비트겐슈타인의 경우, 그의 철학이 기존의 어떤 철학보다 반동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그는 왜?'라는 의문부호를 계속 달게 된다. 특히 비트겐슈타인이 살던 배경이 서양 역사상 많은 변화를 표출하던 지점 중 하나인 20세기 말의 빈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어떤 창작물을 두고 그 제작자를 환원시키려는 행위가 무의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산뜻한 의문감을 해소하기 위해 들게 되었던 이 책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3. 철학 의사(Philosophy Doctor) 비트겐슈타인

 속된 말로 '의심병'이라는 표현이 있다. 모든 철학자는 의심병 환자이다. 그것은 가끔씩 우리의 삶이 금방이라도 떨어져나갈 것 같은 경첩과도 같기 때문이다. 와닿지 않은 사람을 위해 예시를 언급하자면 '왜 사는가?'같은 식의 의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그 중에서도 심한 편에 속했던 것 같다. 그에게 논리학과 윤리학은 단순히 하면 좋은 게 아니라 의무였다.(바이닝거) 이런 관점에서 그의 철학은 치유적 행위나 다름없다. 비록 그는 자신의 병리적 의문에 대한 해소를 위해 철학을 하였지만, 그가 남긴 치열한 기록은 후대의 많은 이들을 치료하였다.


4. 사람들에게 내 삶이 참 멋있었다고 전해주시오

 평전을 통해 비트겐슈타인의 발자취를 추적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이런 유언을 들으면 마치 그가 이 한 마디를 위해 평생을 살아온 것 마냥 느껴질 정도이다. 모든 삶은 말할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은 보여져야만 한다. 삶은 실천이다. 그는 끊임없이 행동을 실천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탁월한 인간이다. 땅에서 새하얗게 솟아나 햇살에 맑은 얼굴 비추는 풀 한 포기의 인생을 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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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탐구 대우고전총서 41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음, 이승종 옮김 / 아카넷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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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열함의 산물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적 탐구는 극한의 시적 표현을 지닌 논리 철학 논고과는 상이한 난해함을 보여준다. 이 저작을 보면서 한 문단마다 그의 치열한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3, 못해도 2명이 나눠서 기술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기분열적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하나의 우주를 보는 듯한 완전무결함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 저서는 사후 출간된 미완성작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살아 생전에 철학적 탐구를 완성할 수 없다고 직감했다고 한다. 그의 치열함은 범인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경지에 이른듯 하다.

 

2. 필연성의 세계, 유아론의 세계

 논고를 완성한 이후 그는 모든 철학을 완성하였다고 선언한다. 10년 간 떠난 그는 홀연히 돌아와 철학적 탐구를 재개한다. 그는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한걸까? 그의 정확한 생각은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아마 러셀을 비롯한 그의 철학을 잘못 이해한 동료 철학자들 그리고 논고가 내포하고 있는 유아론 때문이라고 본다. 여타의 철학자들과는 달리 그는 철학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완전히 지워버리려는 데에 목표를 둔다. 그의 전기 철학 역시 같은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의 철학자 동료들은 언어의 무의미함을 모두 지우고 언어의 표상으로서의 세계만이 유일한 세계라고 단정짓는 논리실증주의자의 길을 걷는다. 그의 전기 철학이 철학하는 사람 개인의 세계만을 정당화하는 유아론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우연함의 긍정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전기 철학을 비판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철학적 탐구를 재개하였다. 그의 후기 철학의 가장 큰 변화는 기존의 그림 이론을 실천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 철학하는 자의 사실의 총체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언어 게임을 통해 확정된다. 결국 그의 철학은 일말의 확실성 마저 폐기하고 일상의 우연함을 긍정하라고 말한다.

 

4. 이상한 철학 나라의 엘리스

 이러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마치 하트 여왕을 보고 이건 카드에 불과하다고 외쳐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흡사하다. 언어의 일종인 수학 역시 트럼프 카드와 마찬가지이다. 수학은 그것을 사용하는 우리의 게임에 따라서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그는 이미 전기 철학에서 수학은 모두 항등식이므로 사이비 명제에 불과하다고 말하였다. 의미의 등가어떤 플라톤의 이데아적 실재가 존재해서가 아니다그것은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약속으로만 가능하다.

 

5. 지혜의 열매

 비트겐슈타인은 죽기 전 자신이 멋진 삶을 살았다고 사람들에게 전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런 그의 말은 젊은 날 남겼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와 같은 말과 비교했을 때 지극히 평범하다. 멋진 삶이란 무엇인가? 그는 소중한 일상을 위하여 치열하게 상상하고 반성하는 삶이라고 보여주는듯 하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단지 보여질 수 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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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 논고 해제 - 비트겐슈타인 세계로의 초대
조중걸 지음 / 북핀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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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새로운 지평

 비트겐슈타인은 TIME지가 선정한 20세기의 인물 중 유일한 철학자이다. 왜 하필 그인가? 그것은 그가 19세기까지의 서양철학의 진리를 가장 유효하게 비판하였기 때문이다. 그 진리는 바로 로고스(Logos)이다. 그리스어인 로고스는 언어, 진리라는 뜻이다. 플라톤 이래 모든 철학자는 바로 로고스를 사용하여 자신의 철학을 확립하고 비판한다. 그런데 이들은 로고스 자체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다. 청년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철학의 문제들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무의미(Non-Sense)에서 기인한다고 진단한다.


2. 20세기의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언어의 표상으로서의 세계'

 플라톤은 세계를 그려내는 언어를 말한다. 인간만이 사용하는 로고스는 절대적 진리 그 자체이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인간이 언어가 그려내는 세계만을 볼 수 밖에 없다고 반박한다. 그는 자신이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 소크라테스의 후계자이다. 비트겐슈타인에게 철학은 무의미한 언어를 제거하는 학문이다. 무의미한 언어는 인과 관계에 대한 독단적인 명제이다. 이러한 명제를 토대로 둔 윤리학, 미학, 종교, 수학, 과학은 모두 무의미한 명제이며, 다만 과학은 실증적인 근거를 통해 일시적으로 정당화될 뿐이다.


3. 비윤리적인가?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은 일견 당황스럽고 한편으로는 매우 불편하다. 특히 윤리학에 대한 그의 비판은 수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비판한 것은 정확하게는 '윤리 명제'이다. 윤리는 다만 언어의 세계 너머에 있을 뿐이다. 그는 거짓된 언어가 만들어낸 모든 만능주의를 혐오한다. 그는 어떠한 미신의 지배에서도 벗어나 풀 한 포기처럼 그저 묵묵히 살아가야 할 '일상의 인간'을 구원한다.


4.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하라

 때때로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하고 너무 쉽게 믿는다. '안아키'를 신봉하는 자는 현대 과학보다 더 심한 자연주의적 오류를 발견하지 못해 애먼 아이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IS는 신앙이라고 착각하는 도덕주의적 오류를 발견하지 못해 교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모조리 살해하고 있다.  모두 헛된 인과명제의 맹신에서 나온 불행이다. 물론 그렇다고 비트겐슈타인처럼 방에 코끼리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지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의 반성적 성찰은 언어를 사용하여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가길 원하는 사람에게 어떤 시선을 견지할 필요가 있는지 밝혀준다. 너 자신을 '제대로'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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