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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여러분이 사람들에게 진리를 단지 확신시켜주는 증명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로 사태를 의심 불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증명이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여기에는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 왜냐하면 증명이 사람들에게 확신시켜준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그 형식의 추론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단순히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증명]은 그것[사태]를 더 의심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는다. 사실상 증명은 거기에 이르도록 하는 방식으로 조정되어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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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삶의 중요한 문제에 관해 깊이 사유한다는 것은 다시 그 문제에 대해 그럴싸한 말을 늘어놓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문제는 그가 그런 사유를 통해 자신을 변화시켰는지에 있다. 그 변화가 없다면 그가 늘어놓은 말은 그냥 말에 그친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을 치유의 행위로 보았다. 철학자는 영혼의 의사이고, 박사를 의미하는 약어 Ph. D.의 원래 의미도 철학 의사(doctor of philosophy)이다.


 우리 시대에도 철학자와 박사는 넘쳐난다. 그러나 자신의 병도 치유하지 못하는 그들이 남의 병은 어떻게 고치고 세상의병은 또 어떻게 고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는 직업인, 전문인일 뿐이다. 시대는 더욱 궁핍해가고 사람의 마음은 중병으로 고사 직전인데 그에 비례해 그럴싸한 말은 더욱 세련된 형태로 범람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시대의 이러한 왜곡에 절망했다. 철학이 치유는커녕 오히려 병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병은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가?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들어보자.


 

 한 시대의 병은 사람의 삶의 양식이 변화함으로써 치료된다. 그리고 철학의 문제라는 병에 대한 치료는 한 개인이 발명한 약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유와 삶의 양식이 변화함으로써만 가능했다. 


-수학의 기초에 관한 고찰


 여기서 한 개인이 발명한 약은 학자들이 만들어낸 이론으로 새길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추구한 것은 그러한 약의 발명이 아니라 사유와 삶의 양식의 변화였다. 그리고 사유와 삶의 양식의 변화는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사유가 삶의 양식의 변화를 일으키고 삶의 양식이 사유의 변화를 일으킨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신념을 자신의 삶을 통해 실천하고 실험했다. 백만장자의 아들이었지만 상속받은 재산을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익명으로 모두 나눠주고 시골학교의 교사, 정원사, 건축가, 잡역부로 일했으며 노르웨이의 피오르 계곡 벼랑에 스스로 오두막을 짓고 칩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재벌 2세의 무한 도전쯤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는 자신의 변화와 구원에 진정 목숨을 건 사람이었다. 탈장으로 징집이 면제된 상태였지만 1차 대전에 자원해 최전선에서 가장 위험한 곳을 전전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전쟁터의 엄습하는 죽음 앞에서 그는 '논리-철학논고'라는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논리-철학논고'는 직관적 사유의 산물이다. 분석철학의 성경으로 꼽히고 있지만 정작 어떠한 분석철학적 논증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범람하는 말들의 질서와 한계를 확정하고 이를 통해 보이지는 세계를 아주 명징하고도 함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책의 말미에는 이 책의 말들도 무의미하며 사다리일 뿐이므로 사다리를 오른 사람은 이를 차버리라고 권고한다. 어떻게 무의미한 말이 사다리의 용도로 기능할 수 있는가?


 의미 있는 말들은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돈 버는 노하우를 알려주기도 하며 이를 매뉴얼 삼아 쓸모 있는 무언가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이 보기에 철학은 혹은 인문학은 그런 말들이 아니다. 그것은 영혼의 각성과 비약을 위한 가혹한 통과 의례, 성인식, 피를 부르는 희생제 같은 것이다. 자신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혼란과 파국을 체험하고 거기서 이를 극복할 자신만의 길을 새로 열어 가면서 사람은 철이 드는 것이다. 철학은 얼을 버리는 담금질이요 혼이 거듭나는 굿판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불안정한 성격으로 괴로워하는 불완전한 사람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삶을 살아간 선구자이다. 그 치열성의 정체는 그의 내면에서 솟구쳐 나오는 삶에 대한 부단한 탐구 정신과 강렬한 도덕의식이다. 그의 도덕의식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윤동주의 도덕 의식과 닮아 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그의 삶과 작품은 윤동주의 '참회록'을 닮았다.


 비트겐슈타인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라고 보았다(문화와 가치). 그는 자살이라는 방식으로 그 무게를 벗어 던지려 했다. 비트겐슈타인의 청년 시절, 그의 일기와 편지를 뒤덮고 있는 자살이라는 화두에 거기에 배어 있는 번뇌의 무게는 그의 반성이 얼마나 처절했는지를 가슴 시리게 증언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작품들은 현대 철학의 텍스트이기 전에 그 자신에 대한 '참회록'으로 읽힌다.


 비트겐슈타인의 삶과 철학의 특징은 청빈주의로 요약될 수 있다. '논리-철학논고' 한 권으로 일찍이 세계적 철학자로 발돋움했지만, 그는 그것이 가져올 모든 세속의 며예와 권력을 거절했다. 그는 철학자들이 빠져들기 쉬운 난삽한 용어 사용과 사변의 유희를 거부했다. 대표작 '철학적 탐구'에 어떤 현란한 형이상학이나 이렇다 할 세련된 테제가 없다는 사실도 그가 지켜온 청빈주의 정신에서 연유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제도권의 글쓰기인 학술적 저서나 논문을 남기지 않았다. 그의 작품들은 그가 평생을 써 내려간 일기와 노트에서 편집된 것이다. 그것은 자신과의 투쟁의 기록이다. 마지막 일기는 암으로 임종을 맞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그가 놀라운 정신력으로 견고한 사색과 탐구를 실천하고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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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보면 계속 이렇게 살 것이냐 아니면 방향을 틀 것이냐를 망설일 때처럼 인생이 눈에 띄게 느리게 흘러갈 때가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이때 우리 인간들은 불행에 빠지기 쉬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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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확고한 별이 되는 것을 꿈꾼다. 하지만 우리는 물결에 맡겨진 부평초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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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박한 바보는 당신에게 말하겠지요. 용감해져야 한다고. 하지만 내가 도움을 주거나 위로를 한답시고 당신에게 할 법한 말은 어떤 것이든 밀크푸딩 같은 말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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