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논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7
플라톤 지음, 이상인 옮김 / 이제이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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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탁월함은 가르칠 수 있는가

 학생이 성장하는 데에 있어서 스승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2000년도 전에 언급되었을 메논에도 이러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스승은 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가? 메논은 그것을 탁월함이라고 보는데 그것이 가능한 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2. 탁월함이란 무엇인가

 플라톤의 저서 메논에 나오는 탁월함은 과거에 덕이라는 용어로 번역되었다. 한자 세대가 아닌 나에게 덕보다야 탁월함이라는 단어가 좀 더 거부감 없이 다가오지만 여전히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플라톤이 말하는 탁월함이란 인식이라고 한다. 또한 탁월함은 가르칠 수 있지만 그것을 가르쳐줄 교사가 없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플라톤이 말하고자 한 탁월함은 단순히 인식 능력(=오성) 자체와는 무관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인간은 스스로 선한 본성을 바로 세울 때 선한 존재가 된다고 말한 맹자의 그것과 가깝다. 다시 말해, 이것은 실천으로 완성되는 영역이다.

 

3. 실천은 가르칠 수 없다

 인간은 아무리 훌륭한 지식 체계를 가지고 있더라도 현실에서 그것의 사용에 의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발적 실천은 가르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스승이 학생에게 할 수 있는 건 실천을 이끌어내기 위한 깨달음을 주고자 함이다. 그래서 제자백가의 성인들이나 불교의 선승, 프리드리히 니체 같은 사람들은 단박에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을 쓰기도 한다. 때때로 그것은 이해를 한층 더 멀어지도록 만들지만 제대로 먹히기만 한다면 인간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기도 한다. 세상의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은 최종적으로 자신의 실천을 스스로의 의지로 만들어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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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여러분이 사람들에게 진리를 단지 확신시켜주는 증명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로 사태를 의심 불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증명이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여기에는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 왜냐하면 증명이 사람들에게 확신시켜준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그 형식의 추론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단순히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증명]은 그것[사태]를 더 의심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는다. 사실상 증명은 거기에 이르도록 하는 방식으로 조정되어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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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들 보르헤스 전집 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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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번 읽게 만든 책

 루이스 보르헤스는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반드시 들어볼만한 인물이다. 나 역시 그랬으며 지금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지만 그 놈의 좋아하는 것의 완전 정복에 대한 갈망때문에 처음부터 가장 유명하고 난해한 것으로 알려진 '픽션들'에 도전하였다. 그의 소설집을 처음 읽는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나의 경우에는 '두려움'이었다. 그 감정은 소설이 가지는 난해함이나 생경함이 아니라 주제가 가지고 있는 힘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당시 픽션들이 가지는 극도의 유명론적 사고관에 대해 어떤 공포심을 느꼈다. 그 때에 나는 생각에 대한 훈련이 전혀 되어있지 않았으므로 무의식적으로나마 학교에서 배운 대로의 지식을 보편타당하게 생각하였다. 이러한 나의 충격은 과거에 이 책을 도저히 완독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몇 년 후 나는 알레프를 경유하고 나서야 진정으로 보르헤스 월드의 시민이 되는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2. 허구들

 픽션들. 한편으로는 이 얼마나 건방진 제목인가. 아니 소설이 허구인지 모르고 읽는 독자들이 과연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스 보르헤스의 소설은 허구들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것은 그 이야기들이 유래 없이 현실을 기만하는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3. 허구들 속 허구들 

 메타 픽션들은 픽션들인가. 픽션들을 읽고 이 문장에 대해 고민에 빠지게 된다면 당신은 루이스 보르헤스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상자 속의 상자는 바깥 상자로만 인식될 수도 있다. 또한 상자 속의 상자는 상자 속의 상자라는 두 상자의 의미로 정의할 수도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독자가 바라보고자 하는 지평 만큼 보여지는듯 하다가 사라진다. 루이스 보르헤스의 픽션들에서는 무한 개의 상자가 주어져 있다. 하얀 종이 위에 까만 글씨로 드리워진 문자를 통해 어떻게 무한한 허구의 현상이 발생하는가? 그것은 소설에서 허구라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달려있다. 그것은 바로 소설이 전부 사이비 명제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4. 동일하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에서 사용한 소설 장치를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내가 읽는 판본의 '픽션들'과 동일한 판본들의 그것은 모두 적혀있는 문자가 일치할 것이다. 이것은 이 책들이 모두 동일한 공정을 거쳐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모두 같은 픽션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아마 보르헤스는 아니라고 지적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5. 모순에 기초한 다리는 무너지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는 서점에 있는 '픽션들'을 보고 모두 그렇게 부르며 동일한 책이라는 생각을 가지 있지 않는가? 그것은 우리가 '동일한 공정을 통해 생산되었다고 말하는 한 판본의 책은 모두 동일하다.'라는 모종의 언어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진리에 의해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언어 사용을 통해 확립되기 때문이다.


6. 픽션들과 인간들

 어릴 적 엘리베이터의 양면 거울을 보면서 저기 비치는 내 모습이 어디까지 이어질까 두려워한 적이 있다. 알고 보니 그건 실로 간단하였다. 바로 내가 보고자 하는 곳까지 볼 수 있다. 이 예시에서는 거울과 '나'만 있기 때문에 유아론적인 세계관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은 소설집으로 발표되어 이미 수많은 독자들과 작가의 언어게임으로 확장된 '픽션들'의 경우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픽션들은 그 의미를 파악할 때에는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의 해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대놓고 명시한다. 그것이 픽션들을 우아한 신전의 기둥으로 보이게 만드는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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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현상학자의 일기
엔조 파치 지음, 이찬웅 옮김 / 이후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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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상학에 대한 이해의 어려움

 현상학을 이해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니체의 신의 죽음 선언 이후 실재하는 하나의 보편자를 찾으려는 시도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그런 시대적 배경 안에서 등장한 철학들 중 하나가 바로 현상학이다. 현상학에서는 먼저 특정 대상을 의식적으로 지향하면서 그것에 대한 판단 중지를 통해 그 대상을 그것 자체로서 환원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서로에 대한 상호주관성에 대한 이해와 의식의 흐름 그 자체인 시간 이해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아무리 현상학 이론을 정확하게 기술해도 이러한 설명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이것은 대개 현상학의 독특한 발상 자체가 원인이다.

 

2. 현상학의 체험

 그런 시선에서 이탈리아의 현상학자 엔조 파치가 현상학의 체험에 대한 암시를 남기는 그의 일기를 읽는 것은 꽤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그가 직접 경험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현상학의 관점에서 서술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일기를 읽는 것은 현상학적 체험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이것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그의 일기를 읽다 보면 의식의 흐름기법을 사용하는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헤르만 브로흐, 로베르트 무질, 이상과 같은 작가들의 글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현상학에서의 시간 이해가 이런 작가들의 서술 아이디어와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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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들의 세계사 보르헤스 전집 1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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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루이스 보르헤스

 현대적인 소설가란 누구인가? 아마도 많은 지지를 받을 인물 중 하나에는 반드시 루이스 보르헤스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함께 세계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라틴 아메리카 작가로 손꼽힌다. 플로베르 이후 많은 작가들이 현실을 예술적으로 재구성하는 방식 즉, 스타일에 대해 많은 천착을 보였다. 그러나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소설만큼 불필요한 이야기 나열을 최소화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색깔을 깔끔하게 열어젖히는 이야기도 드물 것이다.

 

2. 예술적 재구성의 대상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소설집 불한당들의 세계사는 그의 소설들 중에서 가장 이른 연대상에 위치한다. 그만큼 루이스 보르헤스의 스타일이 상당히 불완전하게 구현되어 있다. 실제로 필자의 경우, 그의 전집을 다 읽고 나서 가장 손이 가지 않는 소설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소설집에서조차 자신이 꿈꾸는 유토피아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주로 사용된 그의 스타일은 예술 작품을 다시 예술적으로 재구성하는 패러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 그가 보기에 모든 문학은 다시 쓰기에 불과하다. 새로운 소재 발굴과 묘사는 시대의 지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데에 비하여 작가가 이야기로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모든 문학 작품들이 전부 고만고만해지는 결과를 암시한다. 이러한 측면은 20세기 구조주의의 발전에 따라 플롯을 분석하는 방법이 점차 극한에 달하면서 더욱 부각되었다. 그는 이러한 한계를 탈피하기 위하여 다양한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데 이 소설집에서는 그것이 패러디 기법인 것이다. 원작과 패러디를 모두 읽는 독자에게 패러디 기법은 그 특성상 한데 어우러져 다층적인 의미를 내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가가 글을 쓸 때에 스타일에 좀 더 치중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3. 불온당한 세계사와 온당한 소설의 한붓그리기

루이스 보르헤스가 세계사라고 붙인 이 책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사와 같은 부분은 사실상 없다.” 만약 독자가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루이스 보르헤스가 파놓은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모든 역사는 필자에 의해 세련되게 표현된 그러나 편향적인 기록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소설과 세계사는 하등 다를 바 없다. 혹자는 역사에 대한 이런 해석이 너무나 회의적이므로 그것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지적 무정부주의가 아니며 오히려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실용적일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역사관은 역사를 무작정 거짓이라고 회의하면서 거부하고자 함이 아니라 재구성된 현실이라는 인식 속에서 그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발상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적합하다. 또한 이 소설집은 한편으로 온당한 소설의 역할도 한다. 이것을 읽는 내내 허구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들은 때때로 그의 소설답지 않게 이야기 살짝 늘어지는 측면도 있지만, 배경 설정이나 등장 인물들의 매력으로 보완하고 있다. 사실 그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버리고 소설을 읽으면 꽤 흥미로운 작품들도 몇몇 보인다. 오히려 그의 뛰어남에 대한 선입견으로 작품을 보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원작과 패러디, 불온당한 세계사와 온당한 소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재주를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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