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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탐정 정약용
김재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유랑탐정 정약용》

정조와 정약용, 이토록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인물이 있을까. 개혁가, 학자, 거대한 꿈을 품었지만 끝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 비운의 인물 등, 김재희의 신작《유랑탐정 정약용》 속의 주인공 정약용은 탐정으로 분한다. 물론 그는 진짜 탐정이 되는 것은 아니고 의도하지 않게 관직을 전전하다가 머무는 고을에서 혹은 암행어사가 되어 자연스럽게 전국을 누비며 백성들의 풀리지 않는 강력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역사엔 ‘만약’이 없다지만 ‘이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조선 역사 속 가장 안타까운 인물인 정조나 정약용이 등장하면 반사반응처럼 바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소설은 역시 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책 제목이나 표지 아트웍을 보면서 떠올린 첫 느낌은 곧 3편을 개봉하는 ‘조선명탐정’ 시리즈처럼 조금은 가볍고, 유머러스하며 좀 더 사건에 집중하는 ‘탐정’이 등장하는 소설이 아닐까 했는데 내 예상과는 다소 다른 면이 있었다.
영화 속의 명탐정인(역시 정약용을 모델로 삼지 않았을까) 김민과 파트너 서필 처럼 소설에도 정약용과 김가환 이라는 나이 많은 친구가 등장하지만 영화처럼 찰떡궁합을 자랑하기 보단 정약용의 사상과 생각을 정리하게 해주는 지기로써의 역할에 준한다. 또한 영화처럼 묘한 여인이 등장하지만 소설 초반부에 이미 그 여인의 역할을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탐정 소설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악의 축’이 등장한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늙지 않는 남자, 그 깊이와 한계를 상상할 수 없는 학식과 경험, 신묘한 의술로 사람들을 모으고 사상을 설파하는 의문의 남자. 소설 속 탐정 정약용은 어쩌면 일생 동안 이 남자의 영향아래서 혹은 첫 만남의 황홀하지만 끔찍한 경험의 비밀을 풀기위해 그를 동경하고 이해하면서도 결국 대립하여야 하는 운명 속에 갇힌다.
어사또가 된 정약용은 한 고을의 가렴주구를 일삼는 수령을 응징하려 준비하는데 그 과정 속에 배 속의 장기가 모두 사라진 사람의 살인 사건을 만난다. 다른 마을에서도 그 비슷한 일이 여러 건 일어나는데 이 일을 이상하게 여긴 정약용은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건을 파헤친다. 그러다 그 일의 정점이 한 남자에게로 향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데 그 남자는 정약용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끔찍한 일의 주인공임을 알게 된다.
그 남자의 비밀이 바로 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견인차다. 정약용을 조선의 CSI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CSI 로써의 활약보다는 정약용이 조선에서 이루어 내려고 했던 원대한 꿈의 실현을 점진적 개혁을 통해서냐 혁명이냐를 두고 고민하는 정약용의 모습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다른 사건들은 모두 이를 위한 포석이었다고나 할까. 결국 악의 축으로 상정된 남자의 고민과 정약용의 고민이 다르지 않음을 우린 모두 알고 있으니까.
소설의 내용이나 전개, 등장인물과 그 역할들을 보자면 성인만을 위한 소설이라 하기엔 그 강도가 다소 약하다. 요즘 발표되는 미스터리 소설들과 비교해 보자면 말이다. 아마 김재희는 이 소설을 좀 더 다양한 연령층에서 읽어 주었으면 하고 바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가족이 함께 읽고 토론해 본다면 더욱 좋을 것 같고, 크게 무겁지 않는 미스터리, 탐정, 스릴러 소설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추천을 하면 좋을 소설이다. 복잡하고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이 아니라서 즐거운 마음을 가볍게 읽기 좋을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