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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1단 - 한장의 사진 하나의 단상, 정현진 산문 사진집
정현진 지음 / 파랑새미디어 / 2017년 11월
평점 :
《1장 1단》
한 때 사진에 매력을 느낀 적이 있었다. 한참 디지털카메라, 일명 ‘디카’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는데 친구가 찍은 나무 사진 하나를 보고 나도 그런 느낌의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다. 지금은 사진을 찍는 다면 좋은 카메라에 가격도 어마어마한 렌즈들을 모으는 것을 떠올리겠지만 그 때는 그냥 손안에 쏙 들어가는 작은 디지털 카메라를 누구나 갖고 있던 시절이었다.
결국 나는 나름 하이엔드 급 카메라를 샀고 처음으로 찍은 봄 꽃봉오리 사진을 아직도 갖고 있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멋진 사진을 찍는 사람과 나의 차이를 생각해 보니 그 사람들은 사진에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고 나는 그냥 그 사람들의 사진을 흉내 내고 있을 뿐이었다. 무엇을 담고 싶은지가 뚜렷하지 않으면 사진은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멋진 구도를 잡고 절경을 담고 속도가 느껴지는 사진을 찍는 조리개 값이나 노출 정보들은 인터넷에 널려 있었지만 그 안에 담을 이야기, 주제는 오로지 카메라를 든 사람의 것이다. 때로는 색감이 어둡거나 흔들리거나 초점이 흐려지는 사진도 멋지게 보이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이야기나 느낌 때문이다. 그 후로 사진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멋지게 느껴지는 사진은 내게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킨 것이고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기술적인 시각으로 보면 ‘정현진’ 산문 사진집《1장 1단》의 사진은 특별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누가 봐도 끝내주는 절경을 담은 것도 아니고 그 어떤 사진에도 다른 작가들과는 다른 특별한 순간이나 그 무엇을 담으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을 느낄 수는 없다. 다만 그 안에 작가의 시각, 작가가 렌즈 너머로 보았던 그의 ‘세상’ 이 있을 뿐이다. 그 세상을 보고 느낀 것들이 페이지 사이사이에 글로 적혀있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사진은 그 안에 사람, 관계맺음, 시간, 세월 등이 느껴지는 사진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어떤 때는 싱그러운 나뭇잎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추운 겨울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위태롭게 매달리듯 앉아있는 까치를 통해 나타나기도 한다. 너른 풍경 속에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도 하고 클로즈 업 되어 화면을 가득 채운 노신사의 주름살로 보여 지기도 한다.
마치 밤하늘을 빛나게 하는 별처럼 보이는 겨울 얼음은 그 속으로 빨려드는 듯도 하고 하늘이 가득 찬 풍경 속 작은 두 사람은 내가 우주의 일부분임을 깨닫게 하기도 한다. 분명 저자는 나름의 해석과 이야기를 담아 놓았지만 이 글을 읽고 사진을 보는 순간 저자의 세상이 아닌 바로 나의 세상을 만나는 듯하다. 결국 이렇게 그의 세상과 나의 세상은 만나게 된다.
그의 사진집 《아타락시아Ataraxia》를 접한 지 몇 년이 지났다. 첫 작품집은 사진이 주였고 꽉 차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이번 작품집은 그 때보다 더 따뜻하고 평온한 느낌이 들었고 좀 더 비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사이 작가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마 그 때보다 좀 더 여유가 생기지 않았을까. 짧은 글귀들은 이런 부분을 극대화 시키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작품이 나는 훨씬 좋다. 아마 내게도 ‘여유’라는 것이 생긴 건지 모르겠다. 그 사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