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비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정미경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큰비》



 

이미 결말을 아는 이야기의 과정을 듣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예전 TV에서 방영 되던 어떤 사극이 인기를 얻을 때 한 네티즌이 ‘역사가 이러하므로 주인공은 어찌 된다’는 글을 올렸더니 왜 스포일러 뿌리냐고 뭇매를 맞은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참으로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역사에 얼마나 관심이 없으면 그런 상식 밖의 소리를 할 수 있는지 정말 알 수 없었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무녀들의 역모라니. 나는 당연히 그런 역사를 본 기억이 없기에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인가 했는데 실제로 일어난 역사였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그 역모는 성공하지 못했기에 후대 사람에게 제대로 알려지지도 못했다. 나도 잘못하면 그 상식 없는 사람이 될 뻔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심지어 그 역모의 중심에 있던 만신 ‘원향’의 이야기는 주변 인물이었던 남성들과 다르게 추국 장에서의 발언조차 기록되지 못했다. 무리들 중 유일하게 여성으로 도성에 입성했으며 ‘대우경탕’을 일으키는 불가사의한 힘을 지닌 용녀부인으로 추대된 거사의 중심인물임에도. 나는 그리하여 민중 반란의 실패와 여성의 실패 아니 유교 질서 속에서의 처절한 신분의 한계를 체험하고 말았다.

 

조선 숙종시절에 양반네들은 유교의 틀을 더 공고히 하기위해 도성에서 만신들을 몰아내고 핍박했다. 그녀들은 반상이 엄격히 나뉘던 신분제에서도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속에서도 가장 밑바닥의 삶을 살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고통을 당하던 사람들을 보듬어 주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들은 그런 세상을 뒤엎어 버리려 했다. 용이 되어 승천하는 용녀부인이 큰 비를 내려 도성을 물바다로 만들어 버린 뒤 세 세상을 열려했던 것이다.

 

소설 중에 만신 ‘원향’은 그렇게 죽어간 수많은 여성의 넋을 달래는 ‘오귀 굿’을 해 주었다. 아들을 낳지 못해 목매달아 죽고, 남편이 죽은 후 시아버지에게 능욕당해 강에 몸을 던져 죽고, 홀로 팔삭둥이를 낳다 죽고, 주인에게 능욕당한 다음 날 안주인에게 매 맞아 죽은 그 여인들의 깊은 한을 원향이 풀어준다. 그리고 그러한 원혼들의 절망과 희망을, 미래불인 미륵불의 힘을 받아 거사를 일으킨다.

 

그러나 그녀들의 계획에 어둠이 깃든다. 모두 세상을 뒤집어 보겠다고 힘을 모으긴 했으나 그녀의 의견과 다른 사람, 다른 욕망을 가진 무리들이 있었던 것. 몸도 마음도 정신도 깨끗하여 한 점 티끌 없이 오로지 신령의 힘이라야만 성공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원향과는 달리 ‘고깃국’을 즐기고 ‘칼’의 힘을 믿는 자들, 그 힘이 있어야만 세 하늘을 열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의 움직임이 원향의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그래, 그럴 수밖에 없겠지. 이 세상은 언제나 그래왔으니까. 후천 세상을 열 미륵을 힘을 믿는 자들과 현재의 힘인 석가의 힘을 믿는 자들. 여성과 남성, 가진 자들과 가난한 자, 신분이 고귀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역사는 슬프게도 아직도 석가의 시절에 머물러 있고 ‘남성성’의 세계에선 전쟁과 기아가 끊이지 않으며, 그 속에서 핍박받고 멸시 받는 건 결국 여성성과 아이들, 기득권에서 밀려난 정상이 아니라 여겨지는 사람들 뿐.

 

그 안타까운 여정을 나는 ‘원향’과 함께 했고 ‘목매달고 배불뚝이이며, 퉁퉁 불어 시퍼렇게 변한, 매 맞아 철철 피 흘리는’ 여인들과 함께했다.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서 상처받고 고통 받은 이들을 자애로운 손길로 보듬어 주던 성인, 만신들과 함께 했다. 그저 신 내림만 받으면 만신이 되는 줄 알았던 그녀들의 고된 훈련과 정진을 함께 했다. 그래서 그녀들을 그리고 욕심과 목적에 눈이 멀어 중요한 걸 놓치고야 말았던 너무나 약하고 안타까운 사람들을 저 변방의 역사에서 중심의 역사로 생생히 돌려놓은 작가의 노고에 너무나 고맙다. 우리의 역사에 언제야 큰비가 내려줄까. 언제야 큰비를 내릴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