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 짓기
정재민 지음 / 마음서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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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 짓기》

 


 

소설을 읽을 땐 머릿속으로 한 편의 영화를 상상하곤 한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에 맞는 배우를 설정 혹은 캐스팅하고 소설의 내용에 따라 영화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확실한 경우나 이야기의 진행이 매끄러울 경우는 기승전결과 반전, 결말이 확실하고 속도가 빠른 블록버스터 같은 영화가 되고 개연성이 부족하거나 캐릭터가 확실하지 않을 땐 조금의 각색이나 이야기를 연결해 주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기도 하다.

 

이런 틀로 작품을 본다면《거미집 짓기》는 어떤 장르의 영화가 될까? 소설은 1963년부터 시작된 탄광촌의 이야기와 2012년에 시작된 현재 화자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되고 어느 순간 이 두 이야기가 만나게 되며 결말에 이르러 긴장감은 최고조에 다다른다. 모두가 가난했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갑갑한 현실 속에 누군가의 희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던, 그래서 사회에 만연하던 폭력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그 시절의 이야기. 석탄가루 때문에 검은 강이 흐르던 탄광촌의 암울한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현재의 시간이 만들어 내는 묘한 긴장감.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아마 두 시간이 어떤 식으로 교차될지 막연히 짐작은 하겠지만 ‘어떤 방식’으로 이어질지가 무척이나 궁금할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엔 그 의문점을 가지고 책장을 넘겼지만 그 교차점 보다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이야기’에 더 관심이 생겼다. 현재의 시간 속 화상으로 얼굴 반이 일그러진 대다 묘한 폭력성을 가지고 있는 남자가 나와 동갑이고, 과거의 시간 속 탄광촌에서 자라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난 여자가 우리 엄마 또래라서, 그리고 그 여자의 엄마, 남편의 폭력에 무기력하게 말라가던 그 엄마의 답답한 삶에 감정이입이 되어 나도 모르게 푹 빠져든 것 같다.

 

그리고 현재 시간 속 화자이자 주인공인 소설가. 그는 첫 작품 이후에 이렇다 할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는 상태로, 캐릭터에 현실감이 없다는 혹평을 이겨내 보고자 호기심이 생기는 사람들을 인터뷰를 하다 사연이 많을 것 같은 ‘남자’를 만난다. 화상으로 얼굴이 반이나 망가졌으니 그 과정에 사연이 많을 것이라는 얄팍한 추측을 하며. 그리고 그를 인터뷰하다 어떤 부분에서 심기를 건드렸는지 그에게 구타를 당하고 이후 집착과 강박증에 사로잡혀 그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그 남자도 소설가의 행동을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소설가가 그 남자를 향한 행동엔 사실 큰 개연성이 없다. 그래서 상상의 영화 속에선 소설가의 집착과 강박증을 부각하고 작품 활동이 잘 되지 않는 것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것을 그 이유로 삼는다. 알 듯 말 듯 소설가를 도발하는 남자의 행위, 제스처, 뉘앙스도 중요하게 부각시킨다. 그리고 남자와 관련이 있을 과거 탄광촌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도 폭력성과 암울함을 극대화 시킨다. 그렇게 서스펜스를 유지하다 결말에선 남자 둘의 강박증과 폭력성을 극적으로 충돌시켜 관객을 충격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반전!

 

아마도 이 영화는 ‘서스펜스 심리 스릴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인간 내면에 억압된 분노와 욕망, 폭력성이 어떤 식으로 표출 되는지가 관람의 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온갖 인간군상 들을 만난다. 그들의 행동은 오로지 그들의 생존을 위해한 것, 살기위해 자신이 받은 고통을 분출할 약자를 찾으며 이에는 피를 나눈 가족조차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 속에서 고통 받는 건 늘 아이들과 여성들이며 그 아이들이 커서 새로운 폭력을 생산하는 주체가 되는 아이러니.

 

결말에 대한 의견은 분분할 것 같다. 어쩌면 개연성에 관한 부분이라든지 이런 저런 의문점을 한 번에 해소할 수 있을 만한 결말이긴 하다. 나는 과거 시간의 여인이 살아온 이야기 자체에 푹 빠졌었는데 이것만으론 이야기를 끌어갈 힘이 없다. 그래서 연결 고리로 현재의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본다면 작가의 의도는 적절해 보인다. 과거와 현재의 느슨한 연결고리, 소설가의 강박, 결말의 충격. 이 세 가지가 이 소설을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수식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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