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프트 - 고통을 옮기는 자
조예은 지음 / 마카롱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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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트》

 


 

사람의 절박함을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용서해선 안 된다. 근데 사기, 공갈, 협박을 이용해서 무언가 해보려는 자들은 꼭 그 사람의 ‘절박함’을 이용한다. 당연하다. 그래야 잘 속고, 사기인지 알면서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매달리게 되니까. 이를 가장 많이, 제대로 이용하는 게 슬프게도 사이비 종교 혹은 이단이 아니겠는가.

 

얼마 전에《휴거1992》라는 소설을 읽었던 터라 이 소설은 더 궁금했다. 차이가 있다면 휴거의 목사는 ‘선지자’라는 가짜 소년을 앞세워 기적을 ‘연출’했다면《시프트》는 ‘기적’을 일으키는 소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진짜든 아니든 ‘눈 먼 자가 눈을 뜨고, 앉은 자가 가 일어서는’ 기적을 연출하는 것이 신도를 모으는 가장 훌륭한 방법 아니겠는가.

 

《시프트》에선 실제로 기적을 일으키는 존재가 있다. 단지 그 존재가 교회를 일으킨 목사가 아니며 그는 이 소년을 이용해서 절박한 사람들의 전 재산을 갈취한다는 것이 문제지만. 그 소년은 신기하게도 상처나 병을 옮기는 능력을 갖고 있다. 좀 슬픈 것은 아예 없애지는 못한 다는 것. 그저 자신이 다리가 되어 고통을 다른 이에게 옮길 수만 있을 뿐.

 

자, 이런 조건을 가정하면 온갖 상상이 가능하다. 이 아이는 그런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왜 목사의 행동을 저지하지 못하는 가, 혹은 도망칠 수 없는가. 병을 옮길 수만 있다는데 그럼 그 병을 받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기적을 일으키는 교회가 있다면 돈 많고 권력이 있는 자들의 먹잇감이 되지 않겠는가. 등등

 

소설 속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모두 들어있고 그 답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데 병원에선 방법이 없다고 한다. 헌데 이런 기적을 일으키는 교회가 있다면 무엇이든 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몰랐다. 진정 기적인 줄 알았지 사랑하는 사람의 병을 누군가가 대신 받는다는 것을. 자신을 대신해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을. 자신에게 그렇듯 그 사람도 누군가의 사랑하는 사람일 텐데.

 

소설 속 주인공인 형사는 유일하게 남은 혈육인 조카가 이름 모를 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볼 수 없어 절박한 심정으로 기적을 내리는 사람을 찾아다니다 묘한 살인사건을 맡게 된다. 그저 바닷가 폭력배들의 칼부림 인줄 알았던 사건이 과거 아동 실종과 연관되어 끔찍한 연쇄 살인으로 이어진 정황을 발견한 것. 소설에선 사건 수사를 중심으로 그리진 않고 사건의 용의자이자 기적을 내리는 ‘란’을 찾아 조카를 구하려는 형사와 능력 때문에 위험에 빠진 ‘란’이 복수와 기적 모두를 이루려는 과정이 숨 막히게 그려진다.

 

소설 속엔 다양한 사람이 등장한다. 누구는 속죄를 위해 복수를 계획하고 누구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 한다. 돈과 권력에 눈이 먼 자들은 자신의 조그만 아픔은 견디지 못하면서 다른 이의 목숨은 너무나 하찮게 여겼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그 모든 끔찍한 일들을 자신의 욕망을 위해 너무나도 쉽게 저질렀다. 인 두껍을 쓴 악마들이 만든 그 지하 소굴의 끔찍한 모습은 상상만 해도 숨이 막혔다. 슬프고 화가 났다. 과연 현실인들 그보다 못하랴 싶어서.

 

소설은 한번 펼치면 금방 다 읽을 만큼 가독성이 좋았고,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본 듯 생생한 묘사가 압권이었다. 절박한 형사와 완벽하지 않은 기적을 가진 남자. 그들 앞에 선 거대한 악 앞에서 형사는 원하는 기적을 얻고 ‘란’은 복수를 통해 속죄에 이를 수 있을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전개,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절묘한 교집합이 만들어내는 집중력 있는 이야기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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