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는 혼
황희 지음 / 해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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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는 혼》

 

 


우리가 죽음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오로지 ‘삶’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게 될지, 죽지 않고 영원을 살고 싶은지, 죽음 너머에 그 무엇이 있는지 따위의 모든 질문들의 종착역은 결국 ‘삶’이다. 누구는 쉽게도 생을 접는데 누구는 생에 집착한다. 단 하루의 일상과 삶이 너무나 절실한 사람들에게 쉽게 생을 저버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일까?

 

황희 작가의 《부유하는 혼》에선 이렇게 생을 저버리는 사람의 몸을 차지하는 ‘혼’들이 등장한다. 일반적으론 자신과 영적 파동이 같은 사람의 몸이 비는 순간에 치고 들어가 몸을 차지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 어디 거기서 끝날 것인가. 인위적으로 몸을 비게 한 다음 차지하는 사람들도 생기는 것이지.

 

이런 이야기가 가능하려면 신체와 영혼이 분리가 돼야 한다. 또 누군가는 이런 사실을 알아야만 하겠지. 소설 속에는 이런 비밀을 아는 능력자가 등장하고, 잠을 자는 동안 영혼들은 살짝 신체를 빠져나와 밤마실을 가기도 한다. 영혼끼리 신체를 두고 어떤 합의를 하기도 하면서.

 

치매 걸린 어머니, 그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여자, 그 여자에게 빌붙어 사는 폭력적인 남자, 어머니가 꿈에서 찾아가는 일본의 작가 지망생, 무슨 이유에선지 신분을 숨기고 도망치듯 숨어 다니는 자매, 예전 애인을 찾는 약사 등은 영혼을 차지하는 ‘유착’ 이라는 비밀을 중심에 두고 얽히고설킨 인연을 이어간다. 그들의 과거, 현재,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죽어서도 ‘혼’이 되어 우리 주위를 떠돈다. 생각해 보라. 그런 혼들이 어쩌면 내 몸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내 주위의 사람들이 이런 혼들에게 몸을 뺏겼을지도 모른다. 온갖 상상이 가능하다. 아니다. 어쩌면 희망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육신을 벗어나 다른 육신을 입는다. 끔찍한 삶을 벗어나 다른 멋져 보이는 사람의 육신을 입고 다시 태어난다면?

 

소설 속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 않고 그들은 어떤 질긴 인연의 끈으로 묶여있다. 누군가를 좇고, 누군가를 죽이려하고, 누군가를 차지하기위해 지옥 같은 삶을 견딘다. 그러나 이런 건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억지로 순리를 거스르려 한다면 어떻게든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게 또 자연의 이치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결말은 꽤나 영화 같긴 했지만 타당한 듯 여겨졌다.

 

읽을 때보다 읽고 나서 더욱 섬뜩해지는 이야기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이 죽어서도 내 주위에 머물러 있다는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의 육신, 누구의 삶을 빼앗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합리화 할 수 없는 폭력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은 다시 ‘삶’으로 돌아온다. 죽음을 너무나 바라는 건 어쩜 그 누구보다 삶을 열망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더더욱 꼭 붙들고 있어야 한다. 이런 끔찍하고도 대담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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