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변호사
존 그리샴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수첩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불량 변호사》

 


 

얼마 전에 이민자들을 따라 미국으로 간 고대 신들과 과학 문명이 발달하면서 생겨난 현대 신들의 대결을 다룬 <아메리칸 갓>이라는 미국 드라마를 보았는데, 흑인을 나무에 매다는 것을 표현한 장면이 “Strange Fruit”이라는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와 극심한 인종차별로 고통을 받던 흑인들의 역사와 연결이 되면서 예전에 읽었던 <속죄나무>가 새삼 떠올랐었다. 그래서 그런지 ‘존 그리샴’의 신작 소식에 놀라우면서도 몹시 반가웠다.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을 찾아보니 2014년 <속죄나무> 이후 3년 만이다.

 

생각해 보면 <속죄나무>에서도 일명 불량 변호사가 등장했는데, 그 때의 변호사는 인종차별이 횡횡하던 시대에 흑인의 변호를 맡았기 때문에 불량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지만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변호사는 진짜 불량변호사가 아닌가 하는 정도의 불량이다. 주인공인 변호사가 수임하는 사건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사건이나 돈이 많이 떨어질 것 같은 사건, 그 누구도 맡지 않으려는 누가 봐도 나쁜 놈인 사람의 사건 등이다. 그러다 보니 늘 목숨의 위협에 시달린다. 양쪽에서.

 

범죄자들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거나 생각보다 형이 많이 나오면 변호사를 위협한다. 그 반대로 경찰을 비롯한 법조인들은 범죄자를 변호하는 특히 동료 경찰이나 판사, 변호사를 살해한 자의 변호를 맡는 주인공은 범죄자 보다 더 싫어해서 늘 린치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위협 속에 살아간다. 그래서 그는 폭발 위협에 당하지 않으려고 사무실도 내지 않으며 밴 한 대를 개조해서 총을 지니고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며 일하는 게 일상이다. 한 사건에서 인연이 된 덩치 좋고 건장하며 과묵하기 까지 한 비서 겸 법무사 파트너의 비호를 받으며.

 

소설은 억울한 누명을 쓴 한 남성을 변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소설은 언 듯 단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몇 가지 사건이 나중에 하나로 이어지게 되는데 그 중 첫 번째 사건은 이 소설의 주제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초동 수사만 제대로 해도 바로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좁고 패쇠된 지역의 사람들과 경찰은 그냥 범인이면 좋겠다는 사람을 찍어 거짓말과 광기로 살인자로 몰아간다. 거짓 증거와 증인을 만들다가 결국엔 주인공에게 한방 먹는 검사와 판사의 모습을 보면 과연 누가 법을 모독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어지는 에피소드들도 미국 법조계를 통렬히 비판하고 비리와 부조리를 아주 세련되게 풍자하고 있다. 사형수가 대기하는 ‘붐붐룸’에 판사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집행을 앞 둔 범죄자가 대기하고 있다. 그런데 그에게 사형을 언도한 판사와 검사의 사무실에 폭발사고가 이어지고 심지어 교도소에 폭동이 일어난다. 그리고 사형수는 펑! 하고 사라진다.

 

가장 재미있고 답답하고 가슴 아픈 에피소드는 바로 3부 ‘전투경찰’이다. 파트너가 주인공에게 “우리 장난감 병사들이 또 가택 침입을 해 난장판을 만들어놓은 것 같습니다, 사상자도 있고요.”(167p)하는 장면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형사 2명이 조용히 현관을 두드리면 될 걸 완전무장한 경찰 특공대가 탱크까지 끌고 한 밤중에 한 가정에 침투하고 총을 난사해 개와 아내를 죽였다. 그러나 경찰을 범죄자로 오인해 총을 쏜 남편이 오히려 범죄자가 된다. 미국은 어떤 이유에서건 경찰을 쏘면 유죄가 되는 모양이다. 결말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주인공이 어떤 식으로든 연관된 사건들이 이어진다. 자신이 투자하고 뒤를 봐주고 있는 이종 격투기 선수의 심판 폭행 사건, 경찰 간부의 딸 실종에 사건에 관계된 남성의 사건, 이로 인해 그에게 닥친 일생일대의 위기, 연쇄 살인 혹은 납치범과의 두되 싸움, 아들의 양육에 관련된 변호사인 전 아내와의 다툼 등이 엮이기도 하고 꼬이기도 하며 아주 흥미롭게 이어진다.

 

이 소설은 굉장히 코믹하고 흥미롭고 적절한 긴장감까지 유지하고 있다. 아마 이런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왜 그런 인간쓰레기들의 변호를 할 수 있느냐?’ 고. 아마 이런 질문을 한번 정도는 해보지 않았을까? 누가 들어도 아는 로펌에서 온 국민의 지탄을 받는 사람을 변호하고 결국 집행유예나 무혐의로 풀려나게 해 줄 때.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말한다.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 누구나 변호를 받을 권리는 있으니까.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은, 주인공의 조력자들, 일명 내부 고발 자들은 그 조직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인데 그 이유는 누구보다 능력이 있고 공정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변호사는 ‘불량’ 변호사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이는 너무나 부당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을 정의를 원하지만 정의란 ‘그때그때 우리가 정의로 여기는 것’이다. (p15). ‘진실’ 따위가 아니라.

 

소설을 읽다보면 대체 누가, 무엇이 불량인지 헛갈린다. 돈만 밝히고 형량 거래나 하는 주인공이 불량인지, 광기에 사로잡혀 언론에 놀아나는 사람들이 불량인지, 자신의 영달만 챙기는 정치인들이 불량인지, 시민을 대리해서 뽑아 놓은 사람들이 만드는 법 조항이 불량인지, 약자를 찾아 괴롭히는 이 사회가 불량인지. 무거운 주제를 너무나 경쾌하게 그려낸 작가의 능력에 새삼 놀랐다. 시대가 필요로 하는 소설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재미있기까지 하니까. 역시 존 그리샴이다. 무조건 읽으시길. 정말 후회 없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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