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야행》

 


 

‘내가 보는 것이 사물의 진정한 모습인가‘ 는 아주 오래된 질문이다.’언어‘ 라는 장벽을 없애야만 ’실체‘를 알 수가(볼 수가) 있다는 말일 수도 있는 이런 의문은 내가 보고, 느끼고, 진실이라고 생각하거나 믿는 모든 것들이 실은 허상일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주기도 한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 사진에 찍힌 내 모습을 실제의 나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정말로 우리는 나 자신을 내 눈으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이런 건 어떨까? 꿈속의 내가 나인지, 내가 낮의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다른 우주 혹은 다른 시간 속에 다른 삶을 살아가는 내가 있지 않을지, 여러 영화나 소설에서 만난 적 있을 법한 이야기인데 생각하면 너무나 무서워서 모양을 바꾸며 끊임없이 소설로 영화로 되풀이 되는 이야기들.

 

어느 날 옆에 있던 사람이 사라졌다. 그냥 연기처럼, 애초에 그런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그로부터 10년 후 사라진 사람을 기억하는 5명의 사람들이 모여 기묘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딱히 그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며 모이자고 한 장소 근처에서 우연히 보게 된 동판화가의 작품을 본 각각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 작가는 48편의 ‘야행’ 연작을 남기고 몇 년 전에 사망했고, 전설처럼 ‘야행’에 대칭되는 ‘서광’이라는 작품을 남겼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총 다섯 명의 이야기가 이어지며 동판화가의 이야기도 조금씩 드러난다. 각각의 이야기는 모두 그들이 여행을 갔던 곳과 연관이 있지만 작가는 그 어느 곳도 여행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묘하게도 결론이 나지 않은 채로 끝이 났고 그 이야기 안에 사라진 사람과의 기억이 숨어있다.

 

묘하게 변한 아내를 찾아 과거에 왔었던 언덕위의 집을 찾아갔지만 아내와 꼭 닮은 여자가 사는 그 곳엔 사람이 살지 않다고 말하는 이상한 호텔 종업원을 만난 남자, 선배와 선배의 여자 친구와 그녀의 여동행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사상을 보는 할머니를 만나 이상한 체험을 한 남자, 남편과 남편의 후배와 함께 기차 여행을 떠났다가 과거의 오랜 친구와 그녀의 불탄 집을 다시 보게 된 여자, ‘기시다 살롱’ 이라 불리던 ‘야행’ ‘작가의 집에 드나들며 겪었던 밤의 이야기를 하는 남자, 그리고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겪게 된 ’야행‘의 비밀까지.

 

뭔가 이상한 풍경으로 이어지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들이 결국 적당한 모양으로 형체를 갖추어갈 때 소설은 내가 서 있는 이곳이 과연 어디인지 의심하게 했고 내가 보는 세상이 진실로 그것인가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생각할수록 섬뜩한 이야기가 아닌가. 밤을 이토록 섬세하게 표현한 작가는 처음이다. 어쩌면 별것 아닌 꿈에서 본 것 같은 것들로 이처럼 멋진 이야기를 지어내다니. 여름에 딱 어울릴 만한 소설이다. 밤에는 읽지 말기를.

 

- 미시마 씨가 미래를 예언한 게 아니라 미시마 씨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남편이 죽은 게 아닐까. p 101

- “기시다. 정말 거기 있어?" “글쎄.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기시다의 목소리가 멀리에서 들려와 나를 감싼 어둠이 문득 광대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 어둠은 어디든 연결되어 있어.” 기시다는 말했다. p 209

- “밤은 어디로도 통해요.” p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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