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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여우가 잠든 숲 세트 - 전2권 ㅣ 스토리콜렉터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박종대 옮김 / 북로드 / 2017년 4월
평점 :
《여우가 잠든 숲 1,2》
참 예쁜 표지라고 생각했다. 푸른빛이 도는 숲은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슴푸레하고 안개가 끼어서 인지 다소 몽환적인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런 숲이 좋다. 근처에 호수가 있고 키 큰 나무들이 서 있어 어느 곳에도 신비한 비밀이 숨어있을 것 같은 그런 곳. 그러나 현실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대비되며 상상치도 못할 진실로 우리를 이끌기도 한다. 아름답고 평화롭게만 보이는 그 곳이 과연 진실로 그러했던 걸까?
책장을 펴자 나오는 지도, 빽빽이 소개된 등장인물들의 생소한 이름. 독일 작가의 작품이라서 그런지 이름도 지명도 눈에 익지 않아 읽는데 조금 힘들겠단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 많은 등장인물들이라니.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작품은 처음이라 조금은 긴장하며 책장을 넘겼다. 다행히 문장이 짧아 리듬이 경쾌했다.
소설은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될 1972년의 8월 31일의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짧게 들려주며 시작한다. 그리고 40여 년이 흐른 현재 2014년 사건이 시작된다. 소설의 배경이 된 ‘타우누스’ 지역 숲 속 캠핑장에서 캠핑카가 불타는 사건이 발생하자 주인공인 ‘올리버 보덴슈타인’ 반장과 동료 ‘피아’가 현장으로 출동한다. 소설 속에선 여러 명의 목격자와 용의자가 등장하는데 이 인물들이 소설의 후반부까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화재사건은 캠핑카 안에서 불에 탄 희생자가 발견됨에 따라 살인사건으로 바뀌게 되는데, 주인공 올리버의 고향인 인근 ‘루퍼츠하인’ 마을 요양원과 성당에서 연달아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올리버는 수사를 통해 이 사건이 어릴 적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이던 ‘아르투어’ 와 자신이 길들인 여우 ‘막시’가 함께 실종된 미재사건과 관련 있음을 알게 된다.
소설은 현실 속 세 건의 살인사건과 과거 아르투어의 실종사건 두 가지로 나뉘게 되고 현실의 사건은 피아가 올리버 자신은 과거 친구의 실종사건을 조사하기로 한다. 한편 올리버는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1년을 쉬겠다며 휴가 계를 낸 상태인데 피아는 그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한다. 소설은 살인사건과 올리버의 휴가 때문에 느끼는 피아의 착잡한 심정, 강력반 내부의 정치 상황 등이 비등하게 전개된다.
소설은 1권 4분의 3이 넘는 지점까지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해 등장인물들의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이해하면서 읽어야 했기 때문에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또한 강력반 내부의 인물들의 관계도 다를 바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이건 아마 내가 이 작가의 ‘타우누스’시리즈를 처음 접했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 싶다.
소설은 모든 관련 인물들이 등장하여 각각의 과거와 현재 관계들을 보여준 그 이후부터 2권 마지막까지 숨 막힐 듯이 전개된다. 봉인되고 각색된 과거의 기억이 하나둘 불려나올 때마다 주인공과 독자 모두 그 끔찍함에 놀라게 된다.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행되는 일이 누군가에겐 죽어서도 잊지 못할 아픔이 되기도 하며, 누군가는 그 비밀을 빌미로 사람들을 통제하는 권력을 갖기도 하고 심지어 또 누군가는 그런 자를 뒤에서 조종한다.
대체 악의 근원은 어디이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인간의 본성은 선인가 악인가? 부모가 자녀의 인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은 어디까지 인가? 한 마을 안에서 서로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까지 아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진정으로 서로를 위하는 공동체일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안에 어떤 비밀을 공유하는 순간 그들은 서로를 감시하고 옥죄는 제일 끔찍한 집단이 된다.
올리버를 비롯한 어린 시절 아이들은 실제로 ‘마피아’의 관계와 같았으며(비밀을 공유하고 힘의 알력이 존재하며, 이방인은 악이고 배신은 곧 죽음인) 그 관계는 그 마을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방인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배척하며 서로의 안위를 위해 각자의 범죄와 허물은 은폐한다. 비밀의 누설은 곧 사회적인 죽음과 같았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 끔찍함과 잔인함,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근원적인 ‘악’을 마주보며 경악했다. 과거의 비밀이 대체 무엇이기에 범인은 그 하나를 감추기 위해 살인을 저질러야 했던 것일까. 소설은 그 마을이 가진 비밀의 무게만큼이나 비밀을 밝혀가는 올리버와 피아의 활약도 중요하게 다룬다. 사람들을 탐문하고, 심문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현실적이고 흥미로웠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캐릭터는 생생히 살아있었으며 그 관계들의 치밀함도 대단했다.
왜 작가가 독일을 대표하는 미스터리의 여왕인지. 독일을 넘어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작가인지 충분히 납득이 될 만한 작품이다. 처음엔 자신의 작품을 직접 인쇄하여 차고에 쌓아 놓고 팔았다던 작가가 이렇게 성장할 줄 누가 알았을까.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를 배경으로 작품을 쓰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생각한다. 우리 동네를 대표하고 우리 동네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작가라면!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우리 동네 ‘도원동’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를 기다리며. 작가의 다른 작품도 꼭 읽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