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뼈
송시우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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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뼈》

 


여행 짐 안에 책을 챙겼다. 10층 1인실 밖 풍경이 꽤나 괜찮았다. 아버지 수술 간호의 이유로 함께 오긴 했으나 병이 심각하지 않은 때문인지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아이러니 하게도 엄마처럼 나도 강제로 휴식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입원실에서의 2박3일. 이 일이 아니라면 나에게 절대 2박3일의 여유는 생기지 않을 테니까.

 

보호자 소파에 앉아 책을 펼쳤다. 이 책은 순전히 강렬한 제목과 소개된 책 구절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이다. 나는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좋아하지만 단편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과거에 읽었던 단편들이 대부분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조금 황당한 결말을 맺은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달랐다. 

 

"그래요 가서 전해주세요, 변호사님. 내가 돈을 주겠다고요."

...

"내 아이의 시신을 , 내가 돈을 주고 사겠다고요." _p 019

 

나는 정말로 궁금했다. 범인은 잡혔지만 아이의 시신은 못 찾은 것이고, 시신없는 살인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지어질지. 돈은 주었는지, 아이의 시신은 찾았는지, 과연 그 범인이 진짜 범이 맞는 건지. 아님 정말로 살인사건이긴 한건지. 작가는 겨우 30여 페이지 분량에 내가 가진 궁금증에 천천히 그리고 담담하게 답을 해주며 심심하지 않은 결말까지 만들어냈다. 그랬다. 나는 '아이의 뼈' 한편으로 '송시우' 작가를 그냥 믿어버리게 되었다.

 

책에 실린 단편들에는 참 다양한 직업군과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누구나 한번 쯤 TV뉴스나 신문을 통해 들어본 적이 있거나 내가 겪은 일이기도 하다. 텔레마케터를 비롯한 서비스 직업군의 정신적인 고통, 외로워서 키우는 반려견의 분리불안증과 우울증, 그러다 필요 없어지면 내다 버려 문제가 되는 유기견 들, 직장 내 성희롱과 부조리한 인사문화, 가정폭력에 서서히 죽어가는 여성들, 사회와 벽을 쌓고 스스로의 존재를 지우는 히키코모리, 묻지 마 범죄로 인한 희생자들, 청소년 범죄, 불륜, 연예계의 어두운 실상 등.

 

총 9편의 단편들 속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주변인물로, 사건을 해결하는 강력한 열쇠로 혹은 아픔을 지닌 주인공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서로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들은 진정한 악인 거대한 사회의 부조리에는 저항하지도 못한 체 서로를 죽이거나, 자신의 잘못을 망각하고 이로 인해 받을 타인의 고통을 외면한다. 강자에겐 약하면서 약자에겐 더 잔인한 사람이 되어 짓밟고 조롱하기도 한다.

 

본격 (정통)추리소설과는 거리가 있지만 각 단편마다 살인사건이 있고 반전과 추리를 통해 미스터리의 즐거움을 느낄 수가 있다. 각각의 작품마다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나름의 이유가 있고 현실감이 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읽히지는 않는다. 문장은 간결하고 심리묘사도 치밀하다.

 

아무리 여유 있는 시간이더라도 긴 시간 집중하기에는 힘든 병실에서 끊어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이었지 않나 한다. '송시우' 작가는 처음이지만 난 이미 작가에게 믿음이 생겼다. '아이의 뼈'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작품들도 훌륭했다. 작가의 장편을 읽어보고 싶다. 긴 시간 호흡을 함께 하고 싶은 멋진 작가를 알게 되어 정말 기쁘다. "5층 여자"와 "원주행"의 임기숙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캐릭터를 잘 살려 시리즈로 나온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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