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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와라 유녀와 비밀의 히데요시 - 조선탐정 박명준
허수정 지음 / 신아출판사(SINA) / 2016년 11월
평점 :
《요시와라 유녀와 비밀의 히데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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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정 작가는 소설 ‘부용화’때 처음 알게 되었다. 팔만대장경 경판 마구리에 비밀스럽게 적혀 있는 이름을 보고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초조대장경과 팔만대장경을 둘러싼 사랑과 암투, 민초들의 소망을 담아낸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작가 소개에서 ‘부용화’를 발견하고 내가 아는 그 작가가 맞는지 확인까지 했다.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와 날카로운 추리소설과는 잘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론《요시와라 유녀와 비밀의 히데요시》또한 사랑이야기 임에는 틀림없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조선탐정 박명준’ 이지만 그 살인사건의 이면에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처절하게 피어난 비극적인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원제는 ‘제국의 역습’이다. 궁금해서 이 책을 검색해 보았더니 놀랍게도 출판사 서평에 줄거리가 모두 공개되어 있었다. 추리소설은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 법인데. 나는 호기심 때문에 소설을 다 읽기도 전에 내용을 다 알아버리는 대참사를 겪게 되었다.
대참사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소설을 읽으며 겪은 대참사가 하나 더 있으니 바로 표기법 문제다. 평소 번역소설을 읽을 때 지명이나 사람이름 등을 그 나라 발음 그대로 우리말로 옮겨 놓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내가 일본어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지명, 이름, 직책 등을 일본어 발음 그대로 우리말로 옮겨 놓으니 내용도 뒤죽박죽 읽다가 메모를 하고 앞뒤를 왔다 갔다 하며 읽느라 흐름을 놓쳐 읽기가 정말 힘들었다. 심지어 이 소설은 한국소설 임에도.
소설의 배경은 1665년 오사카. 인신매매를 일삼는 사찰에 괴한들이 습격해 사람들을 도륙하고 불을 지른 일명 ‘시라스카지 참살사건’ 이 벌어진다. 그 경악한 만할 사건에 살아남은 건 가슴에 뒷장이 잘려나간 소설을 목숨처럼 품고 있는 어린 소녀 한명. 그러나 사건을 조사하던 중 사망자 중에 쇼군의 하타모토(쇼군의 직속 무사)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고 사건은 급하게 종결 된다. 사망한 하타모토는 방탕하고 부패한 관리로 낙인찍히고 마는데, 억울함을 호소하던 그 가족과 친분이 있는 인물 ‘바쇼’가 편견이나 정치적 이권 개입 없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긴 ‘박명준’을 찾아 사건을 의뢰하면서 소설은 전개 된다.
소설은 그 시대의 오사카의 정취와 현실을 정말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는데 명준과 바쇼가 콤비가 되어 사건 관련자들을 탐문 수사하는 모습은 요즘 유행하는 ‘남남 캐미’를 보여주기도 하고 느린듯하지만 날카롭게 단서를 파헤치는 과정은 꽤나 흥미롭다. 결국 그들은 현재의 사건에 뒷장이 잘려나간 풍속 소설의 내용이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는 유곽의 여인이 사망하고 만다. 그 소설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1598년 사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내용은 임진왜란의 발발과 종료, 히데요시의 사망에 관한 놀랄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액자 식으로 구성된 그 풍속소설의 마지막 ‘노’를 연기하는 장면은 정말 숨이 멎을 것처럼 긴박감이 넘친다.
이 소설을 읽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노(能)’ 때문인데 예전에 이에 관한 다큐를 보고 굉장히 깊은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대사도 없이 극한의 정적인 동작과 무시무시한 가면, 역시 극도로 자제한 무대 장치에 기괴한 음악까지. 무슨 저런 공연을 어떻게 하고 보는 사람은 또 어떻게 볼까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던 독특한 무대 예술이었다. 보는 것도 힘든 장면을 어떻게 글로 표현했을까 궁금했는데 작가는 소설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와 음모까지 엮어내며 정말 기가 막히게 표현해 놓았다. 게다가 조선과 일본을 넘나드는 가슴 절절한 사랑까지 엮여 있으니 이 부분을 읽을 땐 정말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소설로써는 아주 오랜 시간 이 책을 잡고 있었다. 이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표시해놓은 부분들을 읽다보니 좀 편하게 읽히고 앞뒤 내용도 매끄럽게 정리되는 것 같은데 읽는 동안은 정말 많이 힘들었다.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거나 역사 팩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읽으면 참 재미있을 소설이다. 일본 거리에 명준이 이리저리 누비고, 일반인들이라면 상상도 못한 높은 신분의 사람들을 만나 취조하고 기 싸움을 하는 장면도 빼 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