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건방진 캥거루에 관한 고찰
마크 우베 클링 지음, 채민정 옮김, 안병현 그림 / 윌컴퍼니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어느 건방진 캥거루에 관한 고찰》




어느 날 느닷없이 캥거루 한 마리가 우리 집에 들어왔다. 그냥 밀고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뭐, 갑자기 들이닥친 동물이 꼭 ‘캥거루’가 아니어도, 그 어떤 동물이라도 상관없겠지만


읽을 책을 선택하는 데는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난 출판사의 서평이나 책 소개, 이 책을 먼저 읽은 사람들의 한줄 평이 주된 선택의 기준이다. 때론 표지를 보고 그냥 읽고 싶은 느낌이 팍 오면 이유 없이 읽기도 하고 다른 독자들의 서평을 꼼꼼히 살펴보기도 한다. 이 소설은 책 소개에서 굉장한 호기심을 느꼈는데 예술가와 캥거루란 등장인물의 생경한 조합과 주된 내용이 자본주의와 현실 풍자, 정치였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나면 책 읽기 전에 기대했던 것들이 얼마나 충족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는데 이 책은 애초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일단 주인공 인간은 ‘카바레티스트’라는 생경한 직업을 갖고 있는데 난 클럽에서 연주하는 뮤지션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카바레트(Kabarett)란 독일의 민중 소극으로 ‘예술가를 위한 예술’로도 불리며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전반에 대한 비판적 유머를 펼치는 예술이라고 한다. (p 018) 그리고 캥거루는 그냥 캥거루인데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캐릭터를 찾자면 아는 것 많고 고등교육을 받은 까칠하고 엉뚱하고 이상주의자인 ‘백수 삼촌’ 정도 되겠다.


소설은 짧은 콩트로 이루어지는데 TV를 보거나 장을 보러 가거나 병원을 찾아가거나 하는 설정 속에서 대화하는 것이 전부이다. 설정 자체가 억지스러운(아마 모든 것이 억지스럽겠다, 캥거루라니) 것들도 있는데 1분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장을 본다거나, 장을 보러 가기로 약속해놓고 캥거루가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는데 비가 와서 그 화풀이를 다른 사람에게 한다거나, 다소 폭력적인 캥거루가 사람들을 폭행(?)한다거나 하는.


그들은 일상의 모든 상황에서 부조리를 찾아내고 그 부조리의 원인을 자본주의 시스템이나 정치에서 찾고 있고 이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한다. 유머의 대부분은 언어유희라서 우리의 유머코드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마치 미국의 화상실 유머와 우리의 유머코드가 많이 달라 호불호가 갈리듯이. 이 소설이 독일 작품인데다 표현하는 내용도 우리가 쉽게 접하지 않은 주제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전자의 이유가 더 크다고 느꼈다. 독일식 유머인데다 언어유희니 번역되면서 느낌이 많이 달라졌고 게다가 우리는 ‘토론’하는 문화도 아니니 우스꽝스런 상황에서 그들이 나누는 고차원적인 유머가 그렇게 가슴에 와 닿을 만큼 흥미롭지는 않았다.


그러나 솔직히 우리나라 작품이었다면 특정 브랜드를 대놓고 노조의 적, 어린이 노동 착취, 악덕 대기업이라 욕하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나 영화를 이 기업과 빗대어 이야기 하며 공산주의를 옹호하거나 곧 있을 4.13 국회의원 선거 같은 제도를 신기루라 표현하고, 빚은 환상이며 이 세상사람 반이 믿지 않으면 없어진다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대놓고 이야기하거나, ‘신’과 신을 절대자라 믿는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우스꽝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너무나 좌파다. 나는 웃기고 좋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을 종합하자면 내용과 주제는 너무나 유쾌하고 상쾌했으나 그 표현 방식은 조금 어렵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독일식 유며, 반어법을 기반으로 한 언어유희, 우스꽝스러운 설정 등은 호불호를 가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른 것을 잘못된 것으로 매도하고 이미 자가 검열이 몸에 밴 우리나라 사정을 생각할 때 이런 소설은 너무나 환영하는 바이다. 표현 방식이 기존에 읽었던 소설들과 달라 생경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런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 또한 책을 읽는 즐거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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