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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네마의 신
하라다 마하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키네마의 신》

아버지. 늘 제 멋 데로인 아버지. 평생 가족을 위해서 라곤 무엇 하나 해준 적이 없던 아버지. 심지어 경마로 생긴 빚을 뻔뻔하게도 가족들이 대신 갚게 한 아버지. 딱 보면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 같다. -그나마 여자문제는 없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이런 아버지라도 엄마는 외면하지 못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늘 아버지의 빚을 갚아주며 딸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그리고 나. 얼마 전까지 승승장구하던 회사에서 새로운 일을 추진하다 악의적인 소문 때문에 마흔이 넘은 나이에 결국 사표를 내고 말았다. 아직 퇴직했단 말도 못했는데 아버지의 빚 문제가 터지고, 엎친데 겹친 격으로 아버지는 심장수술까지 받게 된다. 그래서 딸은 입원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건물 관리 일을 하게 되는데 그 곳에서 아버지가 이제껏 쓴 영화 감상노트를 보게 된다.
아버지는 자신이 번 돈은 대부분 도박으로 날렸고 놀랍게도 나머지는 영화를 보는데 썼다. 하루에 2~3편을 보기도 했고 개봉한 거의 모든 영화를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양한 스타일의 영화를 섭렵한 마니였다. 몇 십 년 전부터 써온 아버지의 평론(감상)은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페이지 속에 딸은 자신이 그날 본 영화의 평론을 끼워 놓았는데 나중에 퇴원한 아버지가 이 평론을 한 영화 잡지에 기고한 것이 인연이 되어 딸은 일본의 가장 유서 깊은 영화잡지에 취직하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참으로 엉뚱하게 흘러간다. 분명 주인공은 딸인데 어느새 아버지로 바뀌어 있고 또 어느새 영화 잡지사의 구성원들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있다. 소설은 ‘영화’ 라는 매개체 하나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고, 복합상영관이란 거대한 공룡에 짓밟히는 작은 영화관을 살려내고, 사회와 담 쌓은 히키코모리를 세상으로 불러낸다. 회생불능인 것 같던 잡지사도 ‘자본’인 아닌 블로그, 그 안에 담긴 진정성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며 부활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딸, 남편과 아내는 화해를 통해 단란한 가족이 되고, 이 사회에서 더 이상 생산의 주체가 아닌 ‘노인’은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은 잔잔하지만 굉장히 속도가 빠르다. 마흔 넘어 퇴직한 사람이 다시 직업을 갖고 제 2의 전성기를 누리는 것, 누가 봐도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이 젊은이들과 소통하며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 거대자본에 무너지는 골목상권, 가족의 해체와 소외 등 우리가 처한 현실의 암담함이 그대로 녹아있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을 넘기게 된다. 그 해결이 ‘영화’와 블로그를 통한 국적을 넘어서는 ‘우정’ 이라니! 다소 동화적인 설정이 분명 말도 안 되는 것이나 그래도 ‘영화’이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영화의 신. 결국 힘들 때 우리가 찾게 되는 것은 너무나 소중하다 못해 내 모든 것이 되어버린 ‘꿈’이 아닐까. 순수함 일 수도 있겠고, 어떠한 순간에도 잊어버리면 안 되는 그 무엇일 수도 있는. 이 소설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이 소설을 읽은 후에 꼭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미뤄두었던 영화를 영화관에 가서 보았고, 퇴근 후 멍하게 예능 프로그램만 보던 TV로 영화를 보기도 했다. 소설에선 그래도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아야 한다고 하지만 난 남편과 잠옷을 입고 과자를 먹으며 감상하는 영화도 좋다. 사랑하는 내 야옹이 ‘미오’를 쓰다듬으면서. 이 소설은 그런 소설이다. 따뜻한 내 집에서 보는 로맨틱 코미디처럼 달콤하고 따뜻하고 환상적인. 겨울에 읽으면 마음까지 따스해질 그런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