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괜찮아, 어떻게든 살아간다옹 - 노자와 길고양이에게 배우는 인문학 사진에세이
이토 준코 지음, 박미정 옮김, 미나미하바 슌스케 그림 / 미디어샘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괜찮아 어떻게든 살아간다옹》
내가 어쩌다 냥이들의 집사가 되었는지 어쩌다 4마리나 모!시!게! 되었는지 곰곰이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주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때 살던 고향엔 벼농사를 위해 고양이를 키우는 집들이 많았는데 쥐들을 잡을 목적으로 기르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집 또한 그런 이유로 내 친구 집 고양이가 낳은 새끼를 데려오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묘연의 시작이었다. 친구 집에서 우리 집까지는 꽤 먼 거리였는데 삐약삐약거리는 꼬물이를 가슴에 소중히 안고 데리고 올 때 아마도 내 영혼은 냥이에게 저당 잡히지 않았을까. 부모님이 자식들 교육을 위해 농사를 접고 고향을 떠나기로 했을 때 우리는 이별하게 되었다.
그리고 10여년이 흐른 후 냥이를 좋아하는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다시 묘연은 이어졌다. 친구의 친구 집에 낳았다는 길 냥이의 6마리의 새끼중 하나를 데려오게 되면서 나는 드디어 ‘집사’가 되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백수가 되었던 나는 이 녀석에게 무엇을 먹였고 어떻게 함께 살았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녀석은 늘 내 곁에 있었고 몇 번의 출산을 경험하고 출퇴근 냥이로 살다가 아주 늦게 중성화 수술을 하고 드디어 집 냥이가 되었다.
그때 나는 냥이를 그저 시골에서 키우듯 했다. 그러나 여기는 시골과 달랐고, 냥이에 대한 정보를 하나하나 알게 되면서 많이 달라졌다. 육식하는 고양이와 함께 살았지만 공장식 축산업에 반대하는 의미로 육식을 끊었고, 가죽제품과 동물 털 제품을 더 이상 사지 않게 되었으며, 동물복지에 관심이 생겼고 그들과 인간이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에 고민하게 되었다.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하나였던 냥이가 다섯으로 불어났다가 한 녀석을 먼저 떠나보내게 되면서 다시 넷으로, 사귀던 남자와 결혼하여 우리는 다시 다섯 식구가 되었다.
냥이와의 인연만큼 극적인 게 있을까. 오죽하면 ‘묘연’이라고 할까. 그들이 주는 사랑과 위로만큼 애절한 게 있을까. 난 나의 고양이든 길 고양이든 고양이는 다 같은 것 같다. 그들은 세상을 어떻게 사는지 알고 있다. 생존을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지, 친구를 만들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지키는 방법도, 사랑을 하고 사랑을 주는 방법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삶에 치열하면서도 늘 느긋함을 즐긴다. 자기 구역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상처투성이가 되어도 따뜻한 햇볕을 즐길줄 안다. 그들은 인간들에게 언제나 친구가 될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인간은 영물입네, 눈이 무섭네, 지저분하네, 때론 이유 없이 배척하는 것으로 그들을 대한다. 그들은 인간들이 건네는 호의를 기품 있게 받고 때로는 보답하기도 하며 동등한 관계에서 우정을 나눈다. 내가 남편과 함께 매일 밥을 챙겨주는 길냥이들 모두가 그렇다. 우리는 동등한 관계에서 우정을 나누고 애정을 주고받는다. 그들은 가깝다고 집착하지 않고 늘 감정에 충실하고 돌아설 땐 쿨하다.
이 책은 이런 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노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사진은 예쁘게 꾸미거나 포장하지 않고, 길고양이의 있는 그대로를 담고 있다. 보송보송한 털, 장난치는 모습, 때론 그루밍을 못해 때에는 젖었지만 맑은 눈동자. 어쩜! 처음 접할 때부터 노자와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또 저자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싶기도 했다. ‘인문학’ 이라는 무거운 느낌의 책이기 보다도, 노자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하루 한편 격언을 읽는다는 것에 더 어울린다. 출퇴근 버스 안에서 꺼내 보면 조금 위안이 될 것 같기도 하고 생각날 때마다 펼쳐보는 가벼운 책이다. 판형도 작고 분량도 적고 한 페이지는 글이 한 페이지에는 사진이 배치되어 있으니 더욱 가볍다. 깨알같이 적힌 고양이에 대한 토막상식은 고양이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도움이 될 만한 정보다.
고양이 앞에 선 참 수다쟁이가 된다. 책에 대한 이야기보다 내 묘연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지니 말이다. 집사들은 다 수다쟁이다.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정말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