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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J의 다이어리
전아리 지음 / 답(도서출판)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간호사J의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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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로 읽는 책은 소설인데 그 중에서도 미스터리, 추리, SF판타지를 좋아한다. 탐정이 나오면 더욱 좋고 그 배경이 역사라면 더더욱 좋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헤치고 말미에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한 반전이 있으면 더욱 좋다. 범죄나 스릴러, 활극 보다는 진실을 파헤치고 머리싸움을 하는 서사에 집중하는 그런 소설들을 좋아한다. 역사 미스터리나 음모, 외계인이 나오면 정말 좋다.
그리고 또 하나. 이런 소설과는 영 딴판인 잔잔한 드라마도 좋다. 앞서 말한 소설은 가슴 두근거리고 막 밤에 자다가도 일어나 읽고 싶은 그런 스타일이라면 후자의 것은 뭔가 일상이 의미 없이 느껴질 때나 너무 지쳐서 에너지를 받고 싶을 때, 위로를 받고 싶을 때 손이 가는 소설이다. 늘 똑같이, 별 의미 없이, 큰 사건 없이, 말 그대로 무미건조하게 지나가는 일상에도 뭔가 깨달음이 있고 내가 놓치고 있는 소중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기 때문이라 그런 걸까. 이런 소설을 읽으면 뭔가 가슴이 따뜻해지고 지긋지긋하던 일들에도 애정이 느껴진다. 심지어 밉던 사람도 그리 밉지가 않다.
예전에 읽은 무레 요코의《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정이현의《달콤한 나의 도시》데이비드 제임스 덩컨의《낚싯대를 메고 산으로 간 거스 오비스턴은 왜?》등의 작품들이 내게는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소설 《간호사J의 다이어리》도 바로 그런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솔직히 별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단숨에 다 읽어버릴 정도로 꽤 괜찮았달까? (분량이 적었다는 것은 비밀)
주인공은 소위 말하는 날라리 였다가 어떤 기회로 열심히 공부해 간호사가 된 인물이다. 그러나 공부와 실전 근무는 달랐다. 늘 친구들과 클럽에 죽치고 있다가 병원 현장에서 환자들을 만나려니, 게다가 까칠한 상사라도 만나면 늘 핀잔에 깨지기 일쑤니 좀 힘들었을까. 결국 몇 군데 전전하다 경기도 변두리의 한 쓰러져가는 병원에 근무하게 된다. 이 병원도 수상한 것이 건물은 쓰러져가고 환자도 순 ‘나이롱’ 환자들만, 원장도 가끔 한번 씩 들러 분위기를 잡는 게 전부다.
그러나 이런 이상한 분위기였기에 주인공은 그나마 근무를 할 수 있는지 몰랐다, 크게 아프거나 병든 환자도 없으니 심적 부담이나 업무의 압박감이 적었고 자기 집처럼 드나드는 환자들을 컨트롤 하는 방법을 터득한 후론 그냥 한 가족처럼 지내게 된다. 물론 가족에 비유 하려해도 정이 넘치는 집은 아닌 막장 콩가루 집안 이겠지만. 소설은 이런 배경위에서 마치 드라마처럼 한편씩 에피소드들을 풀어간다. 문고판 보다 조금 큰 판본에 200여 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분량이라 각 등장인물들을 설명하는 내용은 짧지만 오밀조밀하게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티격태격 대는 두 할머니는 원수 같지만 가장 가까운 영혼의 동반자이고, 이주 노동자의 서툰 사랑이야기는 안타깝지만 슬며시 미소 짓게 되고, 부부 자해 공갈단의 진짜 사고와 할머니 한 명의 보호자 자살소동은 주인공을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매개가 된다.
주인공의 행동과 생각, 하루하루 일어나는 일을 따라가다 보면 허황된 것 같기도 하지만 너무나 현실적이고, 뻔 한 듯해도 가슴이 슬며시 젖어오는 우리의 일상을 만난다. 솔직히 기대하지 않고 읽은 작품이었는데 의외의 수확을 얻은 듯 하여 기분이 매우 좋았다.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일상에도 언제나 깨달음은 가까이 있고 소중한 것도 가까이 있는데 외면하고 사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런 소설이다. 이 소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