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묘지에 사는 남자
피터 S. 비글 지음, 정윤조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공동묘지에 사는 남자》




묘지. 나는 가끔 이 묘지가 산자를 위한 곳인지 죽은 자를 위한 곳인지 생각하곤 한다. 다행이라면 다행으로 나는 거의 40년에 가까운 생을 살아오면서 직접적으로 내 혈육을 떠나보내는 경험을 한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그러나 나이가 나이인지라 주위 사람들로부터 예전보다는 자주 그 혈육들의 부고를 듣곤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장례식장에서 그 자식들이 웃는 낯으로 문상객들을 맞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던 나였는데(TV나 소설에서 접하듯 통곡소리와 비통함이 넘쳐나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이제는 그들에게도 아주 개인적인 사연들이 많다는 생각을 할 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죽음은 5년 키우던 고양이를 신부전으로 보내면서 시작되었다. 그전까지 죽음은 내 인생, 내 인식 안에 들어있지 않았다. 건강하던 녀석이 갑자기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약 5일간의 죽음의 과정을 겪으며 죽음이란 것이 생이 끝나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생과 한 몸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아는 사람도 많겠지만 동물사체는 땅에 묻는 것은 불법이다. 화장도 물론 그러하고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는 것만이 합법이다. 나는 그 고양이를 어찌 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다니던 동물병원에 맡겨 ‘소각’하는 것으로 장례를 마쳤다. 물론 뼛가루를 받아 어떤 무덤도 만들지 않았다. 그때였다. 묘지에 대해 생각한 것은. 죽음에 대해 생각한 것은.


묘지는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산 자를 위한 것임을 알 것 같았다. 죽은 다음 생명이 없는 몸이 어디에 뉘이던 무슨 상관인지, 명당이니 성묘니 하는 것도 결국 산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어쩌면 이런 문화는 우리가 죽음을 아직도 이렇게 두려워하고 있으며 또 이기적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지. 이 소설 속 주인공은 공원묘지에 몰래 숨어들어 근 20여년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그 곳에서 숱한 죽음과 장례를 지켜보았다. 작가는 인간의 사후를 놀라운 상상력으로 그려냈는데 그 영혼이 살아생전의 기억을 서서히 잃어가는 것으로 영혼의 죽음을 맞는 것으로 설정했다.


주인공 남자는 그런 영혼들을 볼 수 있고 또 대화를 하기도 한다. 그는 아주 시크하고 대담하기까지 한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음식으로 연명하고 그가 물어다 주는 책이나 신문을 보며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안다. 그러다 자신이 아내에게 독살당한 금방 죽은 한 남자 영혼과 그 곳에 들른 한 여성을 알게 되어 이야기는 이어진다. 그는 영혼과 이야기 하다 여성과 체스를 두기도 하고 까마귀와 대화를 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와 죽은 남자 영혼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또 독살사건은 어떻게 해결될까? 소설을 읽다보면 황당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주인공 남자가 과연 제정신인지 궁금하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가 어떻게 풀리고 궁금증이 해소되는지도 흥미로울 것이다.


나는 죽음과 묘지의 키워드 때문에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고양이의 죽음 이후에 내 인생은 참으로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는데 죽음에 많은 관심이 생긴 것이다. 죽음 후에 환생을 할지 천국이나 지옥에 가게 될지 뭐 이런 것 보다는 죽음에 대한 고민은 결국 ‘삶’에 대한 고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남자가 묘지에서 자발적으로 살게 된 사연이 이런 이유와 관련이 있을까? 망자의 영혼이 서서히 진짜 죽음을 맞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을 지켜보고 도와주는 것이 어쩌면 이 남자의 사는 법이 아닐지.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법과 다르게 사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그려낸 작가의 상상력과 통찰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엉뚱하지만 즐겁고 유쾌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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