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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언덕의 안개
김성종 지음 / 새움 / 2015년 3월
평점 :
《달맞이 언덕의 안개》
한국 추리문학의 대부 <김성종>작가의 작품이라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예전에 그의 단편들을 여러 편 읽었고 단편 추리소설 모음집에서도 그의 이름이 보이면 꼭 찾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의 대표작중 <여명의 눈동자>는 드라마로 접했었는데 정말 재미있게 보았지만 그가 원작자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1941년 출생하셨으니 벌써 70세를 훌쩍 넘기셨지만 이렇게 현역으로 활동하시는 것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달맞이 언덕의 안개》는 작가가 1년 동안 매주 한편씩 부산일보에 연재한 단편 52편 중 전반부 25편을 담아낸 연작소설이다. 작가를 형상한 70대의 유명한 추리소설가 ‘노준기’가 주인공인 소설은 부산 해운대 달맞이 언덕의 노천카페 ‘죄와 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 때문에 알게 된 것이지만 부산 달맞이 언덕에는 ‘김성종’작가 사재를 털어 세운 ‘추리문학관’이 있는데 ‘죄와 벌’은 바로 그곳의 가상 카페다. 그런데 신문 소설 연재 후 카페 '죄와 벌'이 어디 있는지 묻는 독자들을 위해 실제 카페 겸 책방 '죄와 벌'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정말 독특한 사람이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많은 팬들을 거느린 사람이기도 하지만 여러 번 결혼하고 이혼을 했으며, 이 외에 아주 많은 여자들을 만나 자신도 모르는 자식이 있기도 했고 본의 아니게 사기를 치기도 하고 군사독재시절 억울하게 시국 사범이 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전쟁 때문에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몸 한 쪽이 마비되어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서도 여전히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대출을 받아 억대가 넘는 캠핑카를 사서 여행을 다닌다.
모든 소설은 ‘안개’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며 카페 ‘죄와 벌’의 주인인 고혹적 여인 ‘포’와는 사랑하는 사이다. 주인공은 매일같이 죄와 벌에 들러 커피와 와인을 마시고 그 곳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도 하고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기도 한다. 자세히 뜯어보면 연작 소설이기는 하지만 완벽하게 같은 인물의 이야기라고는 볼 수 없다. ‘찢어진 안개’ 편에서 도진기는 북에서 살다 한국 전쟁 때 자기 대신 형님이 입대 한 후 남쪽으로 피난 와 헤어진 형님을 겨우 만나고, ‘안개 속으로 사라진 여인’ 편에서 도진기는 서울에서 살다 한국 전쟁 때 피난 갔다 어머니를 잃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체적으로 한 인물의 이야기지만 그의 과거 이야기는 각각의 다른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각각 모든 단편에서 한 번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안개’는 현재 상황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소재이기도 하고 주인공의 회상을 돕기도 하는 중요한 매개체이기도 하다. 때로는 사건을 일으키기도 하고 해결의 단서가 되기도 한다. 또한 단편들은 현실의 과감한 풍자이기도 하고 저자가 한국사를 관통해 살아오며 직접 눈으로 목도했던 전쟁과 독재의 뼈아픈 되새김이도 하여 (달리, 안개를 그리다, 안개는 알고 있다, 찢어진 안개, 죽음의 땅에 흐르는 안개, 그리고 개들의 축제 편 등) 짧은 작품이고 때로는 좀 황당한 진행과 결말로 맺어지더라도 허투루 읽을 수 없게 한다. 억대가 넘는 캠핑카라든지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여러 여자와 사랑을 나누고 과거 여인들이 그를 잊지 못해 찾아오는 장면들은 저자의 로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슬며시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 작품을 접한 후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달맞이 언덕’과 ‘안개’다. 멋진 노신사가 늘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카페가 있는 언덕, 그 언덕에만 유난히 가라앉아있는 짙은 안개. 시인 ‘류시화’도 말했듯 안개는 가까이 있건 멀리 있건 그 거리는 안개에 가려지고 채워진다.-안개속에 숨다- 이렇게 신비하고 몽환적이며 비밀을 간직한 것 같은 안개. 그 속에 앉아 세상을 관조하는 ‘미스터리 작가’ 그리고 그가 들려주는 사랑과 추억과 인생과 미스터리하며 에로틱하고 관능적인 이야기는 독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