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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사회 - 현대사회의 감정에 관한 철학에세이
정지우 지음 / 이경 / 2014년 4월
평점 :
《분노사회》
어제 오늘 뉴스에는 현직 판사가 인터넷 게시판 사회 이슈들에 대해 악성 댓글을 일삼았고 심지어 자신이 판결했던 사건에 까지 그랬다고 한다는 기사가 중요하게 보도 되었다. 엄격한 윤리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법조계 인사까지 이런 일을 벌이는 것에 참으로 놀랍고도 황당했다. 단지 악성 댓글만이 아니다. 성희롱과 성추행에 편향된 판결까지 수면위로 드러난 이들의 범죄행각은 슬프게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도 않는다. 처벌이 아닌, 사의를 표명한 후 당당하게 변호사 개업을 한다거나 다른 조직으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옮겨갈 뿐이다.
우리가 이런 사건들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이 바로 ‘분노’ 이다. 우리가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보편적 원리’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유가 없이 집단적으로 나타나는 분노가 있고 이 분노를 실제로 위험한 방법으로 표출하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분노는 감정중 하나로 이성과 대립되는 개념이며 즉각적으로 신체를 통해 사태에 반응하는 것으로 기쁨, 슬픔, 연민, 공포 등과 같은 요소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의 분노는 ‘정신적 차원’으로 이전되었으며 ‘관념’과 관련되어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즉 윤리, 원칙, 준칙, 당위, 약속, 기대 등의 ‘관념’을 어겼을 때 분노 한다는 것이며, 지금처럼 분노가 만성화 되어있다면 답은 ‘사회의 관념’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P9~14-
한국 사회는 일제 강점기와 급격한 산업화를 지나오면서 서구식 근대화 즉 집단적 산업체제화를 이루었다. 국가를 중심으로 사회전체를 하나의 일관된 체계 속에 구속시키는 형태를 추구했고, 이런 사회에서는 정부와 제도가 모든 것을 규정하고 주도하여 개인들은 ‘체제의 부속품’과 같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한국 사회는 지속적인 ‘집단주의’를 강화해 왔고 여기서 갑을 문화, 군대식 상명하달문화, 지연, 학연, 혈연으로 지칭되는 병리적 인맥문화가 생성 강화되었고 서로 비교하며 우열을 가르고 집단 구타, 왕따, 무차별 폭력 등의 문제들이 생겨나게 된 근거가 되었다.
그런데 90년대를 지나오며 이런 집단주의에 불만을 가진 ‘개인’들이 출연한다. 이들은 개인 간의 거리를 무시하는 문화에 치욕과 분노를 느끼며 집단적 차원의 의식보다는 개인의 근본요건인 공정성, 정의, 민주주의, 법치, 언론의 자유등과 같은 보편적 가치가 훼손될 때 그 어떤 세대보다 불만을 느낀다. 그런데 이들은 ‘개인 소외’라는 문제와 직면한다.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개인의 소외라는 것은 개인주의의 횡횡 대문이라기 보단 개인이 진짜 개인이 되지 못한 데서 오는 현상이라 저자는 말한다. 집단이 아닌 자신의 존재감에서 삶의 가장 중요한 감정을 얻는 ‘개인’이 되지 못한 개인들은 다시 과거의 해답으로 돌아가고자 하며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는 대신 집단에 자신을 투사함으로써 자기에게서 벗어나려한다. -p94- 바로 이런 현상이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 같은 현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저자는 이런 우리의 분노사회, 증오사회, 병리적 사회를 변화시킬 방법으로 ‘개인’을 말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한 사회의 관념은 ‘개인‘의 의식, 생각, 상상을 통해 유지되기 때문이다. -독재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것도 독재자를 영웅시 하거나 독재의 필수 불가결함을 받아들이는 관념적 요소를 통해서만 가능하듯- 진정한 개인의 삶의 모습이란 언제나 타자를 고려하는 삶, 사회적 지평을 담지하고 사는 시민의 삶,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 점검, 반성, 책임의식을 추구하는 ’정의로운 개인들‘이 만드는 삶이다. 책임을 개인들을 억압하고 위협하는 ’사회‘를 향해서만 묻게 된다면 이사회가 개선되기는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p187- 부패와 부정에 대한 공적인 분노, 정당한 저항, 합리적 실천은 자유를 갈망하며 책임을 감수하는 ’개인‘들로부터만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2015 현재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분석하고 그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분노’의 문제는 결국 사회의 병폐에서 기인하며 이를 해결할 방법이 사회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여전히 부정부패, 세대갈등, 빈부 격차, 폭력, 양극화 현상으로 사회는 요동치고 있는데 저자는 이런 문제들의 해답을 ‘사회 제도’가 아닌 ‘개인’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이미 깊어질 데로 깊어진 사회 문제의 해답을 개인의 각성에서 찾기는 좀 힘들지 않을까. 저자의 말대로 이런 삶을 살아가는 ‘개인’도 결국 자신이 속한 가족, 지역, 사회와 특히 교육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니 말이다. 저자의 주장은 백번 맞는 말인데 밀려드는 회의는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개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힘을 모아야 투표를 제대로 하고, 사회제도를 바꾸어 나갈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