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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인육 비사 - 肝膽 (간담)
조동인 지음 / 미래지향 / 2014년 11월
평점 :
《세종 인육 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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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조선 역사에서 '대왕'칭호를 받는 몇 안 되는 성군. 그의 시대에 '인육'을 먹어야 할 만큼 끔찍한 역사가 숨어 있다면, 과연 그는 우리에게 계속 성군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처음 이런 이야기를 접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역사란 것이 늘 승자의 기록이고 기록이 남아 있다 하여도 우리가 그 시대로 직접 돌아가 눈으로 보지 않는 이상 그 시대는 어떠했다고 확신으로 말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금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 시점, 혹은 직접 살아왔던 현대라는 시간의 모습도 입장에 따라 묘사되는 모습이 극과 극으로 달라지니 말이다. 지금 역사 교과서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일제 강점기가 누구에겐 나라를 뺏긴, 그리고 찾으려는 고통의 시간이고 누구에겐 현대화를 앞당긴 축복의 시기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팩션'이다. 다행히 이 소설을 두고 그런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되어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러나 참으로 '녹픽션' 같기도 하다. 소설의 마지막 '작가 후기'에서 그가 밝힌 것은 소설에 '3가지의 의도적인 고증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그 시대에 있지 않았던 '포도청'의 등장, '단종의 세손 책봉시기', 마지막으로 '사창제'라는 환곡제도의 발의자(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들에 왜곡문제가 자주 붉어지는 것에 부담이 없지 않았을 것이고, 소설을 진실로 여겨 너무 빠져드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뜻이기도 하리라. 이렇게 작품과 거리를 두는 것을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가 '거리효과' 라고 한다는 것을 들을 적이 있다.
소설 속 조선은 극심한 가뭄에 허덕이고 있다. 물론 양반네들의 수탈은 여전히 다를 것이 없고 말이다. 농작물 소출이 줄어들고 산천의 먹을 만 한 것들도 이미 동이 난지 오래. 결국 없는 사람들은 죽지 않기 위해 묘를 파헤치거나 자신을 희생시켜 가족들을 살리기도 한다. 그러나 도성의 한 정육소만은 늘 파리떼가 날린다고 하니 이를 이상히 여겨 들이 닥친 포도청 관원의 눈에 주렁주렁 매달린 인육들이 발견된다. 그러나 이내 정육소 안에 있는 '얼음'을 보고 단순히 굶주린 백성이 벌인 일이 아닌 거대한 권력이 개입된 일임을 알아차린다. 이 일은 세종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세종은 밀사를 파견해 조사를 지시한다. 그리고 한편에서 억울한 사연을 가진 몇몇 이들은 세종을 목표로 도성으로 향한다. 건강이 악화되어 눈도 멀어버린 세종이 과연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거대한 학살의 배후에는 과연 누가 버티고 있는가?
소설은 마치 영화를 보듯 생생한 묘사가 압권이다. 등장인물의 개성이 하나하나 잘 살아 있음은 물론 세종 말년의 모습도 자세히 묘사 되어 있으며, 그의 선견지명이나 현명한 모습, 사대부 대신들과의 권력다툼도 긴장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 만일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면 '고어'물이 될 만큼 끔찍한 장면도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식인','인육'이 소재가 되니 그럴 수 밖에 없겠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행하는 잔혹한 일이나 과정은 조금 비현실적이지 않나 싶을 만큼 과장된 부분도 있었는데 이는 바로 작가의 '거리효과'가 아닌가 한다. 너무 빠져든다 싶으면 그런 장면이 양념처럼 등장한다.
공포물이 가지는 묘한 매력이 있다. 보기 힘든데 자꾸 보고 싶은, 이 소설이 바로 그런 소설이 아닌가 한다. 또한 소설은 조금씩, 조금씩 진실에 대한 미끼를 던지며 진행되고, 의외의 인물을 등장시켜 놀라움을 주는 등 여러 가지 장치로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미스터리, 추리, 공포, 스릴러 등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좋아할 소설이고, 역사물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도 추천하고픈 소설이다. 아주 흥미롭고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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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어와 미스터리 추리,역사팩션의 절묘한 조화《세종 인육 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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