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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내가 믿고 보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처음으로 읽은 일본 소설은 호흡이 얼마나 느렸던지 끝까지 읽는데 진저리치게 고생한 후에 일본 작가라면 덮어놓고 싫어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을 읽고 그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후에 일본 작가들의 추리 스릴러 류의 정르 소설을 즐겨 읽게 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우리나라에서도 마니아들이 있을 만큼 큰 사랑을 받고 있고 다작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이 책을 다 읽을 때 즈음이면 또 다른 책이 출간되는데다가 그 내용도 가볍지 않을뿐더러 술술 읽어갈 수 있는 문장력에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솜씨까지 정말 하나도 나무랄 데 없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공허한 십자가》는 어떤 소재를 다루었을지 무척이나 궁금하고 기대를 했다.
한 남자가 있다. 아내와는 딸의 살해사건으로 인해 오래전에 헤어졌고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반려동물 장례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의 사건을 맡았던 형사에게 연락이 와 헤어진 아내가 강도를 당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남자. 소설은 전 아내의 죽음을 고리로 과거 딸의 사건을 꺼낸다. 딸을 죽인 범인은 살인혐의로 복역하다 출소한 남자였는데 사회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한 번의 살인을 저지른 것이었다. 남편과 아내는 그 범인의 사형선고를 원해 싸웠고 결국 원하는 것은 얻어냈지만 다시 행복해 지지는 않았고 결국 헤어지게 되어 각자의 삶을 살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아내의 죽음. 남자는 전 아내의 부모님과 함께 살인범이 사형을 선고 받도록 하기위해 싸울 결심을 한다. 그런데 사건에 더 깊이 다가갈수록 사건에 의문점이 드러나고, 사형제도의 효과와 의미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된다.
소설엔 여러 번의 살인 사건이 등장한다. 우발적인 사건도 의도적인 사건도 있었지만 속죄와 구원, 용서와 법 제도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형제도에 관한 논의가 여전하고 찬, 반에 대한 의견은 각각 타당한 이유를 갖고 있기에 뭐라 결론 낼 수는 없다. 소설 뿐 아니라 영화 '데이비드 게일', '밀양', '그린마일', '집행자' 등 현재까지 꾸준히 사형제도, 속죄와 구원, 용서에 관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시각에 따라 여러 가지 생각을 갖게 한다. 인간과 인간이 만든 제도가 과연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 할 만큼 완벽한지, 범죄의 형벌로써 적당한 수준은 어느 정도여야 할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억울함은 어떻게 풀어야 할지, 범인이 반성의 십자가를 지는 지 아닌지, 갱생의 효과가 유의미 한지 우리는 참으로 많은 의문과 질문 앞에 서야 한다.
'공허한 십자가'는 죽은 아내의 논문 속에 언급된 문장이다. 그녀가 고민하던 법과 사형제도에 관한 고민은 바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제다. 2014년 올해는 우리나라에서 사형집행이 중단된 지 17년이 된다. 국제 앰네스티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는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국가를 '사실상 사형 폐지 국'으로 분류하고 있으니 우리나라 또한 사실상 사형 폐지 국이다. 나 또한 인간의 불완전성을 이유로 사형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이만 내 생각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타인을 해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고, 응징보다는 속죄와 반성이, 이를 통해 피해자 가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뿐, 참으로 어렵다. 이런 이야기를 한 쪽에 치지 않고 담담한 어조로 극적인 사건에 반전, 추리의 묘미까지 놓치지 않고 보여 준 작가의 실력에 또 한 번 놀란다. 역시 추리소설의 제왕답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든 아니든 이 소설은 참 재미있다. 읽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