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 류시화의 하이쿠 읽기
류시화 지음 / 연금술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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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예전 류시화의 <한줄도 너무 길다>를 읽고 하이쿠는 처음인 것 같다. 실은 시집도 거의 처음이지만 말이다. 이 책은 과거 <한줄도 너무 길다>의 여운 덕에 선택하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아마도 거의 10여년 전에 읽은 책인데도 뇌리에 깊숙히 남아있는 것을 보면 짧지만 강렬한 느낌을 받았었나 보다.


하이쿠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라 일컬어지며 5.7.5 의 열일곱 자로 된 한줄의 정형시를 말한다. 450여년전 일본에서 시작되었고 현재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암송되고 있고 각 국의 시인들이 자국의 언어로 하이쿠를 짓고 있다 한다.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가 여타의 다른 책들과 다른 점이라면 이런 하이쿠를 소개하는 데 있어 하이쿠를 대표하는 시인인 부손, 바쇼, 잇사, 카키 등의 시를 소개하고 류시화가 직접 해설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 시들의 해설, 작가들의 특징과 그 시를 지을 때의 상황, 후대인들의 평가 등이 곁들여 있다. 또한 류시화 자신의 감상과 해설, 이와 연관된 다른 작가들의 말이나 싯구절들도 소개되고 있어 하이쿠와 시인 나아가 일본의 문화까지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로써의 역할도 충분히 하고 있다.


솔직히 굉장히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어쨌거나 시를 번역한 것인데 우리말로 5.7.5 글자를 맞춘다는 것, 우리와 문화가 다른 나라의 시들과 과거 시인들까지 이렇듯 상세하게 조사하고 소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얼마나 노력 했을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나는 소설을 좋아해서 번역된 소설을 읽을 땐 문체라든지 어감 등에 조금 민감해 질 때가 있는데 여기에 소개된 하이쿠 시들은 마치 애초에 이 나라 말로 창작된 것인양 자연스러우니 말이다. 역시 번역에 대해 저자도 책의 뒷 부분에 자신의 의견을 밝혀 놓았다. 물론 운율을 중시하는 시이니 5.7.5 로 엄격하게 번역하는 것이 맞지만 이에 너무 얽매여 시 자체의 느낌을 잃어버린 다면 이도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말이다. 역시 번역은, 특히 시의 번역은 신중함과 감을 가져야 하는, 제2의 창작행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혼자라고

숙박부에 적는 

추운 겨울밤      -잇사-


돌아 앉아 잠든 나비

나의 슬픈 인생을

꿈꾸고 있는지도 몰라     -시키-


문을 나서면

나도 길 떠나는 사람

가을 저물녘    -부손-


또 하나 놀란 것은 뒷 부분의 자유율 하이쿠들이다. 이 시들은 말그대로 5.7.5의 운율에 구애받지 않은 찰나의 순간에 태어난 시들이다. 마치 불가의 선승이 오도송을 읊거나 한 소식 들었을 때 뱉어내는 소리처럼 짧아서 강렬하고 찰나의 순간을 담아 더욱 날이 서 있다. 감정은 충만하고 짧아서 모든 걸 품고 있는 듯 하다. 실제 과거 하이쿠 시인들은 수도승처럼 살았던 가보다. 이해가 되었다. 그러했기에 이런 시들이 튀어나왔을 거라고 고개가 끄덕여 졌다. 책은 제본이나 디자인에도 정말 많은 공을 들인것 같다. 판형이 크지는 않지만 700페이지가 넘는 많은 분량이라 받고 조금 놀랐는데 각 장마다 실려있는 아름다운 그림, 책갈피 끈이 2개가 달려있다는 것 등에서 정성을 느낄 수가 있었다.


 

-모두 거짓말이었다며 봄은 달아나 버렸다- 산토카


-기침이 멎지 않는다 등 두르려 줄 손이 없다 -산토카


저자도 밝혔듯이 하이쿠는 일본을 이해하지 않고는, 일본을 떼고서는 이해하지도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시이다. 나 또한 일본 극우 세력에는 반감을 갖고 있지만 교류하는 친구들, 좋아하는 음악과 문화등에서 배울 것은 배우고 있는 입장이라 정치적인 문제와 사람과 예술 문화적인 문제는 다르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나는 가까운 그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고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를 보기 위해서는 제국주의 망령, 강한일본의 망령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을 가지고 진정으로 사과를 하여야 한다고 본다. 또한 저자의 말처럼 이런 시와 문화, 예술이 그 과정에 큰 역할을 하리라는 것에 동의한다. 아름다운 것, 예술과 문화는 시대와 국가를 초월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작품은 결국 읽는 사람의 몫인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네들은 알까? 몇 세기를 지나 전 세계인들이 자신의 시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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