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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
강흥수 지음 / 북향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조광조》
역사적 인물 중 얼마 전엔 개혁 군주였던 정조나 광해군이 관심을 받았는데 요즘은 이순신, 정도전, 조광조 등의 진취적이고 나라와 백성을 생각했던 정치가(관료)가 주목을 받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의 예술은 그 시대상을 반영할 수밖에 없기에 이들이 유독 주목을 받는 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부패했으며 전체적인 민심이 개혁을 바란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 또한 그런 의미에서 재조명된 이 인물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고, 이 소설까지 읽게 된 것이다. '사람이 바뀌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란 도발적인 카피 문구에서도 깊은 인상을 받았고.
폭정을 일삼던 연산군을 폐위시킨 반정으로 왕의 자리에 오른 중종은 한 때 '뭬야?'하는 유행어를 낳은 드라마 '여인천하' 속 그 우유부단한 왕이다. 조광조는 중종을 임금의 자리에 앉힌 공신들의 아바타의 역할로 궁에 들어온 경빈, 희빈 등의 궁중 여인들의 암투에 최대 악으로 등장하는 인물이었다. 굽힐 줄 모르는 대쪽 같은 성품, 원리원칙만 따지고 절대 타협을 모르는 어찌 보면 갑갑한 인물일지 모르는 그는, 연산군의 패악으로 거의 씨가 말라버린 사림의 우두머리였다. 중종은 정식으로 세자위치를 거쳐 보위에 앉은 것이 아니라 공신들에 의해 용상에 앉은 것이었기에 임금이 되어서도 10여년이 흐르도록 자신이 원하는 정치를 펼 수 없었고 임금을 넘어서는 권력을 가진 권신들의 위세 속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중종은 학문의 깊이가 남다르고 그 깨우침이 경지에 까지 오른 조광조를 중용하고 그를 통해 공신들에 대적할 사림들을 끌어들여 조정을 장악하려 한다. 이런 내심을 가졌으나 그렇게 카리스마 있지는 않은 중종은 조광조를 앞세워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지만 돈과 정보력, 인맥을 장악한 반정 공신들의 세력은 사림이 앞세운 학문적 명분을 가볍게 뛰어넘는 정치적 권모술수에 정통한 노회한자들이었기 때문에 개혁을 하려다가도 늘 벽에 부딪히고 어쩔 수 없는 타협을 해야만 했다. 조광조는 중중의 총애를 무기로 소격서를 타파하고, 현량과를 실시해 새로운 인물들을 등용했고, 수탈과 억압의 정점에 서있는 공신들의 위훈을 삭제하였지만 결국 자신들의 설 기반을 잃은 공신들과 너무 커버린 사림들의 세력에 두려움을 느낀 중종은 '주초위왕' 사건을 빌미로 기묘사화를 통해 조광조와 사림파를 제거하고 만다.
얼마 전에 읽었던《조선 임금 잔혹사》나《퍼펙트 조선왕조1》에서 중종과 조광조가 어떤 인물인지 읽은 기억이 있어 이 소설 속의 그들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는데《조선 임금 잔혹사》에서는 중종이 대단한 전략가로 조광조를 '이용'했다면 이 소설 속 중종은 자신의 정치를 펴려고 하였으나 공신들의 세도로 그러지 못해 조광조를 등용하고 사화 전까지 굉장한 믿음을 주는 따뜻한 관계로 그려진다. 또한 소설 속 한 여인을 두고 미묘한 관계가 되거나 그 여인을 구해주는 장면은 정치가가 아닌 남성으로써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조선 임금 잔혹사》 http://africarockacademy.com/220027248056
《퍼펙트 조선왕조1》http://africarockacademy.com/10189385962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정치 출사를 권유하고자 조광조가 찾아가 만난 '화담 서경덕'과 조광조의 대화였는데, 신분제 폐지까지 생각한 서경덕과 달리 성리학의 세계관에 갇혀 위치와 질서만을 생각한 조광조의 대화를 통해 진정한 개혁과 정치란 무엇인지, 진정한 앎과 실천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 준 부분이다. 주자학과 양명학의 토론으로 보기기도 한 그 대화는 이후 조광조의 운명을 예상하게 해준 명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역사적 인물이 시대와 문화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는 것을 보면 늘 신선하고 재미있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꼭 안타까운 부분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역사는 발전한다는 말보다는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에 더 공감한다. 조광조가 살았던 그 시대, 공신들이 전횡을 일삼고 사사로이 치부를 하고 백성들을 수탈해 결국 도성에 역병이 도지던 과거와 과연 2014년 현재가 다른 점이 있을까? 현 대통령이 자신의 힘으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님은 이미 다 알고 있고, 대통령을 그 자리에 앉힌 공훈으로 사이좋게 주요 공직에 나누어 앉은 노회한 권력자들이 과연 중종과 조광조시대의 공신과 다른 점이 있을까. 그나마 중종은 그들을 견제하려고나 했지 지금은 과연 어떤 모습인지. 이것이 바로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소설 속 화담 서경덕 선생의 말대로 세상은 변하고 때가 꼭 있다는 말에 위안을 삼고 싶다. 아직 싹이 여물지 않은 것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