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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꽃
장 퇼레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천둥꽃》
실은, 이 소설은 읽는 내내 당혹스러웠다. 소설이니까 뭔가 이야깃거리나 등장인물들의 독특함이나 사건의 특이함 뭐 하여간 이런 것을 기대했고, 주인공이 '연쇄 살인마'이니 아주 무시무시하거나 엽기적이거나 심장을 죄어오는 긴장감을 상상했건만 이 소설은 내가 원한 것과는 아주 먼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팔려가다시피 하녀(요리사)로 전국을 떠돌아 다녀야 했던 몰락한 귀족의 딸이다. 엘란 제가도 이것이 그녀의 이름이다. 그녀는 이유 없이 사람을 독살하고 다녔다. 그녀는 팜므파탈의 전형으로 아주 섹시하며 고혹적이고 아름다운 외모에 그러나 선량하고 인간적인, 겉으로 보면 완벽한 사람이다. 그녀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프랑스 브르타뉴 지역의 유명한 '선돌'에 기대어, 그 곳에 전해 내려오는 온갖 신화와 초월적인 존재들과 교감하며 결국 자신이 죽음의 신인 <앙쿠>라고 믿어버린 여자다. 그렇게 사제관과 가정집에서 일하며 그녀가 일했던 곳은 모두 시체로 넘쳐나게 만들었고, 서른 명이 넘는 사람들을 그녀가 만든 요리들로 독살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의술이 발달한 시대가 아니었고, 콜레라가 창궐하던 때라 그녀의 행각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결국 그녀는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
<죽음의 신 앙쿠>네이버 이미지
아주 오랫동안 브르타뉴 남부는 프랑스의 위대한 화가들에게 영감을 준 곳이기도 하다는데 켈트 문화의 영향을 받은 곳으로 많은 신화와 이야기들이 전승되는 곳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된 거석문화인 선돌, 고인돌이 발견되는 문화권으로, 전승되는 신비한 이야기들이 많다고 한다. 산과 바다사이에서 고갱, 르노와르, 모네는 뛰어난 재능으로 그 지방의 멋진 경치를 영원히 간직할 수 있게 했다고 하며, 특색 있는 마을, 돌로 된 예배당, 패어 들어간 절벽, 가는 모래로 덮인 해변이 아름다운 도시라고 한다. 소설 속에는 그 지역에 내려오는 많은 금기와 독특한 믿음들이 등장하는데 집에서 사람이 죽으면 물을 치워 영혼이 빠져나가게 한다든지, 죽음의 신 앙쿠가 오면 사람들이 죽고, 죽음을 몰고 오는 사람을 찔러 피를 내면 자신은 죽음을 면할 수 있다고 하는 등의 신비롭고 재미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프랑스 브리타뉴지역의 선돌>네이버 이미지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이런 신비로운 소재 외에도 독특한 '문체'가 한 몫 하는데, 마치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처럼 '그녀는 ~하고 만다.', '가발 장수가 묻는다.'.등의 묘사와 서술체에 대화이외에는 모두 현재형으로 표현하는 스타일로 소설을 아주 독특한 느낌이 나도록 만든다. 또한 우연인지 손에 낫을 들고 마차를 타고 죽음을 몰고 다니는 <앙쿠>의 코믹버전처럼 주인공을 따라다니는 2명의 가발 상인의 모습은 블랙코미디의 모습을 띄기도 한다. 소설은 어떠한 기승전결이나 인과관계의 구조 없이 그저 주인공이 여러 지역을 다니며 사람들을 죽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사이사이 전승되는 이야기들이 등장시키는데 각 지역의 사람들의 생활 모습, 간간히 등장하는 주인공과 남성인물의 에로티시즘이 소설이 지겨워지는 것을 막아준다.
글쎄, 이 소설은 그래서 독특한 매력이 있는 듯하다. 번역의 한계랄지(번역이 잘 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원어로 읽으면 뭔가 문장에서 운율이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짐작을 해 보기도 했다. 뭔가 신비한 느낌, 분위기, 할머니한테 들었던 무시무시한 이야기, 어른들이 해 주었던 금기의 이야기들이 떠오르는 나름의 재미가 있는 소설인 것은 틀림없다. 비록 내 예상과 다른 소설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다 읽고 나서 앙쿠와 켈트 신화 등에 관해 찾아보았지만 큰 정보가 없어서 좀 아쉽긴 했다. 남아있는 판화 자료에 주인공인 엘란 제가도의 실제 모습은 소설처럼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는 게 가장 놀랄 일이었다면 그럴까. 그 용도가 밝혀지지 않은 거석문화와 연결되는 초 고대 문명이나 외계인의 이야기들을 접한 것은 지금 읽고 있는《태양계 연대기》와 닿아있어 굉장히 반갑기도 했다. 추천을 한다면 나처럼 뭔가 신기하고 독특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고딕, 켈트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분명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