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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궁궐의 비밀 - 그들이 말하지 않는
혜문 지음 / 작은숲 / 2014년 5월
평점 :
《우리 궁궐의 비밀》

조선을 이어 대한제국 일제 침탈을 거치고 실제 궁과 그 곳에 살던 왕족들이 우리 삶에서 사라진 건 실제로 얼마 되지 않았다. 마지막 황손인 이은 황태자와 그의 비 이방자 여사가 사망하면서 조선 왕조가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1989년이었으니까 말이다.《퍼펙트 조선왕조2》http://blog.daum.net/yoonseongvocal/7343652
어쩌면 그 전부터 궁궐은 우리 민중의 인식에서는 이미 지워진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우리 궁궐의 비밀》앞 부분에 잠시 언급하듯, 지금은 궁궐이며 과거의 왕조의 이야기가 보존, 보호되어야 할 '유물', '유적', '역사' 이지만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가던 사람들, 혁명을 일으킬 수밖에 없을 만큼 절박했던 민중들에게 과연 그 궁궐과 왕조는, 그리고 이들을 받치던 신분제와 차별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나 또한 막연히 우리의 궁궐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과거를 지나 현대로 지나오며 어떤 모습과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궁금하여 호기심에 이 책을 읽기는 했지만 곳곳에 숨어있는 저자 혜문 승려의 질문들은 순간순간 나를 고민에 빠지게 하였다.
궁궐 앞을 지키던 해태(해치)상이 치워지자 우연인 듯 필연인 듯 불타버렸던 숭례문, 다시 복원하고 나서도 날림 공사가 아닌가하는 논란에 휩쓸려야 했던 이야기는 앞 서 말한 고민들 중 하나이다. 복원인가 복구인가 하는 단어선택에서부터도 많은 철학적 고민이 앞 서야 한다는 것은 조금 충격이었고, 복원(복구)의 방식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으며, 이 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예전보다 귀엽게 복원되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던 용 그림에다가 불을 낸 사람의 대통령 언급 사건 그리고 이런 과정에도 정치권과 권력의 암투와 힘겨루기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참으로 씁쓸한 부분이다.
궁궐 안에 낚시를 즐기던 대통령을 위해 정각을 세우고, 이를 철거해야 하나 말아야 하는 가도 역사인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고, 명성황후가 살해당했던 건청궁의 허술한 복원도 슬픈 역사만큼이나 슬픈 일이며, '시해'란 용어에 대한 의의제기도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게다가 일본은 명성황후를 살해한 검을 아직도 깍듯이 보관하고 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닌가. 궁궐이 동물원으로 바뀐 일이나, 전각으로 이어지는 다리들이 별 생각 없이 복원된 것도 모두 역사 인식의 부재, 탁상 행정의 적나라한 모습이 아닐런지. 거기다 현판 하나 복원하는 것도 나라의 원수의 입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니 이 모든 것이 '철학'의 부재, 무관심의 증거가 아닐까.
이 책은 우리 궁궐에 관한 책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역사 인식, 철학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문화재를 대하는 우리 태도에 어떤 문제가 있는건 아닐까? 과연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보아야 할까? 왜 역사를 배우고, 문화제를 보존하고, 복원하고 복구하고, 발굴하여야 하는지 지금의 교육은 그 무엇에 대한 답도 주지 못한다. 실적 위주의 행정, 눈치 보기, 권력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정책에다 심지어 종교관에 따라서도 수난은 이어질 수 있다. 역사를 보면 현재 우리의 삶에 대해 알 수 있다. 우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그 모든 것들이 결국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경제, 정치, 역사, 문화 모든 것이 결국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 책 한권이 가진 무게는 어떤 시각으로 보는 가에 따라 이렇듯 많은 것들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분명 흥미롭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서울 나들이를 한다면 더 즐거운 관광도 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는 가에 따라 더 깊은 울림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공부하는 학생에겐 참고 자료로, 일반인들에겐 교양서로, 심지어 연애를 하는 젊은이들이 데이트할 때 이 책을 참고 한다면 많은 이야기 거리로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훌륭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