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송복 지음 / 시루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현재 2014년 6월,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은 아직 진행 중이고, 이 사건 때문에 정부의 무능과 총체적 부실이 수면위로 떠올라 집권세력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게다가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과거 친일 발언으로 국가개조를 천명한 박대통령의 인사문제가 또 다른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이 사건 때문에 문 후보자와 같은 가치관을 가진 정치인들과 학자들의 '자기고백'이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가 처해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나 전쟁까지 치룬 나라가 경제발전을 이룩하여 화려하게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두 번의 청산되지 않는 과거사는 진정한 국민통합과 발전을 가로막는 원흉이라는 것을.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저자에 대해 먼저 접한 사실은, 앞서 말한 문 후보자의 친일 발언에 관련되어 수면위로 떠오른 역사관의 문제를 다룬 기사였다. 문제가 된 역사관은 일제 강점기 시대는 우리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등의 형태는 다르지만 일제 식민 지배를 정당화 하거나 두둔하는 주장인데, 군대에서 장병들에게 읽히고 독후감을 쓰게 한 이념 편향 역사서적들 중에 저자의 저서 <조선은 왜 망하였나>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저자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 조사해 보니 한국의 대표 보수 논객으로 활동을 해 오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것은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함이다. 역사적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역사를 어떠한 시각으로 보는가에 따라 같은 사건을 두고도 참으로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고, 특히 집권 세력의 시각에 따라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평가와 해석은 너무도 상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조금의 걱정을 안고 이 책《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를 읽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일제 식민 지배를 두둔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일까 봐 조금 걱정을 했고, 그래서 같은 부분을 다룬 다른 저자들의 책들과 비교를 하며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 지배자인 조정 관리들의 실체, 국왕으로서의 선조, 임진왜란의 성격과 이 전쟁의 주체가 된 왜와 명은 어떤 나라였는지에 대한 다양한 면을 살펴보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대해 자신의 경험과 사실을 기록한 <징비록>과 그가 올린 상소문, 임금에게 올린 각종 보고서와 하부기관에 내린 공문서들을 바탕으로 '류성룡'의 활약상과 리더쉽을 알아본다. 저자는 현재 한국을 바람 앞에 등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본에는 군국주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으며, 중국은 여전히 가치 국가를 외면하고 패권 국가를 표방하고 있고 그 사이에 우리는 허리가 잘린 채 대립하고 있다. 저자는 임진왜란의 끔찍한 경험을 하고도 '징비' 하지 않은 우리에게 자비롭지 않았고 통일된 미래를 준비하는데 류성룡처럼 자신을 바치는 리더쉽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임진왜란사이기도 하면서 전쟁의 중심에서 전쟁을 치르고, 조선을 분할 하고자 하는 명과 왜를 저지한 류성룡이란 인물의 리더쉽에 대한 연구다.

 

임진왜란, 선조가 왕이던 시대는 당쟁이 극에 달하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전쟁이 일어날지 아닐지 알아보러 간 사람들도 당색에 따라 다른 의견을 내던 사람들이었다. 여기에 이이의 '십만 양병론'이 등장한다. 저자는 당시 인구와 세입을 근거로 들며 특정 당파의 권력, 지배적 우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된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럼 왜란 당시 조선은 어땠을까? 조선 군대는 그 수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지위체계가 엉망이었고, 왕인 선조에게 중요한 것은 백성이 아니라 오로지 왕조를 지키는 것이었으며, 공직자들은 오로지 권력을 갖기 위해 혈안 되어 있었다. 저자는 조선조에서 권력은 이데올로기였다고 말한다. 이데올로기의 속성은 스스로를 목적화 하는 것이었고, 권력은 정책개념이 아니라 가치개념이었기에 권좌를 점유하는 것 자체가 되고의 가치였다고 말한다. 그런 지식인들에게 명나라는 하늘이나 마찬가지였다.

 

임진왜란의 성격 또한 중요하다. 저자는 임진왜란은 오로지 명과 왜의 조선 분할 전쟁이었다고 말한다. 명이 조선에 구원병을 파병한 것은 조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조선이 명의 최후의 방어선이었기 때문이다. 왜가 명을 치기위해 조선에 길을 내라고 한 것은 명을 상대로 명의 속국이나 마찬가지인 조선의 반쪽을 분할 통치 하고자 함이었다. 저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공명심과 정복욕, 그의 부하들에게 나눠줄 영토의 필요성에 의해 조선을 침공했고, 처음 대승을 거둔 후 이를 통해 강화하기 위해 북진을 미룬다. 명 또한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왜와 싸우기 보다 강화를 원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를 간파한 이는 오로지 '류성룡' 밖에 없었다 한다. 조정과 선조는 명군에게 싸우라고 부탁만 할 뿐 이었고 오로지 류성룡만이 이 사실을 알고, 명과 왜의 강화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한 것이다. 또 하나 전쟁에 있어 류성룡의 가장 큰 업적은 이순신의 발탁이 아닐까 한다. 육군 장수를 수군에 임명한 것도 대단한 일이며, 명군과 조선군을 먹일 군량미 전쟁에서도 류성룡은 큰 업적을 남기는데 수탈이 아닌 공명첩 등을 이용하여 자발적으로 군량미를 충당하게 한 것이기에 대단한 일이다. 오로지 조선의 문제점만을 따진 율곡 이이와는 달리 어떻게 하면 달라질 수 있는지 그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 <대설계>부분은 정말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 고향으로 내려온다. 권력이 이데올로기화 된 조선에서 그는 설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불멸의 영웅 이순신 또한 죽음을 맞이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라는 것을 처절하게 통감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도, 역사를 알지 못하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이 책에 묘사된 선조 시대의 현실이 현재와 너무도 닮아 있어 나는 때로 소름이 돋기도 했다. 나라와 백성이 아닌 오로지 '권력'만을 추구하는 현재 정치인들과 당쟁을 일삼는 조선의 지배세력이 과연 다른지, 그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당파싸움이 결국 나라를 잃어버리게 하지는 않았는지, 선조가 두려워했던 것이 명이나 왜가 아닌 조선의 백성이라 명군이 돌아가기를 원치 않았던 모습은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형태를 보이는 과거와 현재 집권세력의 모습과 정말 닮지 않았는지, 명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모습이 미국에 지나치게 의지하는 모습과 과연 다른 것인지 정말 알 수가 없다. 류성룡이 돌아와 이 모습을 본다면 땅을 치고 통곡 하지나 않을런지지, 여러모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다만, 류성룡의 위대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다른 모든 정황과 관계는 생략한 서술에는 좀 아쉬운 점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조선에 마치 류성룡 한 명 뿐이었던 것처럼 보일 만큼 오로지 류성룡만, 또한 그의 긍정적 업적만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그 동안 조명 받지 못한 인물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어 좋기도 했다. 현재 방영중인 주말 드라마 '정도전' 후속으로 류성룡에 대한 드라마가 준비되고 있다고 하니 이도 참 반갑다. 보수와 진보, 역사관의 논란을 떠나 이 책은 읽어보라고 꼭 권하고 싶다. 그리고 조선이 이 모양이었으니 나라를 통째로 빼앗겼지의 결정론이 아닌, 미래를 대비하는 '거울'로써 기능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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