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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나무 1
존 그리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속죄나무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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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폐암의 극심한 고통 속에 시한부 인생을 살던 남자가 있다. 이 남자는 한 변호사에게 전달한 자필 유서를 통해 깨끗하고 정상적인 정신 상태로 유서를 작성하고 자신의 죽음을 철저하고 냉철하게 계획하고 실행했음을 알린다. 그리고 그 유서의 내용은 놀랍게도 자신의 어마어마한 재산을 이혼한 전처, 자신의 자녀, 손자손녀들 그 누구에게도 남기지 않고,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 5%,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동생에게 5%, 나머지 90%를 죽기 전까지 자신의 집에서 일하던 흑인 가정부에게 남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자필 유서는 법적으로 효력을 가진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과거 로펌에서 작성한 세금을 줄인, 전처와 자녀들에게 일정부분의 유산을 남긴 '상식적인' 유언장을 근거로 그의 가족들이 소송을 시작할 것 또한 예상한 바, 자신이 지명한 변호사에게 자신의 뜻을 끝까지 지켜주기를, 절대 지지 말기를 당부한다. 그리고 그 남자는 자신의 소유이던 땅의 나무에 목을 매 자살하고 그의 주검을 자신이 고용한 일꾼이 발견하도록 조치한다.
이 사건을 맡은 변호사는 과거 자신의 딸을 강간하고 죽이려한 백인 두 명을 살해한 흑인 남성의 재판 일명 '칼 리 헤일리' 사건을 승리로 이끈 '제이크 브리건스' 이다. 때는 1988년 아직 KKK단이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는 흑백 인종차별이 빈번히 일어나는 시대다. 제이크는 과거 '칼 리 헤일리 사건' 때 백인을 죽인 흑인을 비호한다는 이유로 KKK단에게 살해위협을 받았고, 집에 불을 질러 아예 몽땅 태워버리기 까지 했다. 이런 시기에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갑부인 남자는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겨우 3년 자신의 집을 돌본 '흑인 여자'에게 남긴다고 유언하였으니 이 사건은 도시 전체를 웅성거리게 만드는 일임과 동시에 또 다시 흑백 인종간의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민감한 사건이었다.
소설 속에서 독자를 가장 궁금하게 만든 것은 대체 왜? 의 문제일 것이다. 소설 속에서 사람들의 관심은 죽은 남자의 자산 총액이 얼마인가와 대체 왜 가정부에게? 혹은 가정부는 어쩌다가 상속을 받을 수 있었는가? 자신의 자녀들은 제쳐두고 연락도 끊어지고 생사도 막연한 자신의 동생에게는 왜 재산을 남겼나? 하는 것이다. <속죄나무>라는 제목에서 이미 남자의 죽음과 자필유서가 과거의 어떤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고, 독자는 과연 그 사건이 무엇인지를 궁금해 하며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그 단서는 또한 유서에서 밝힌 동생에게 재산을 남기려는 '이유'에 있음도 알 수가 있다.
소설은 법정 소설답게 재판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과정이 상세히 묘사된다. 그들이 변호인단을 꾸리고 사전 조사를 하고, 실제 재판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과정은 정말 자세하다. 얼마 전에 읽었던 일본의 법정 소설 <파계재판>이나 <열세 번째 배심원> 과는 달리 재판 자체보다 재판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시간이 너무 길었고, 배심원을 선정하게 되면서 등장하는 인물들도 너무 많아졌다. 법정에서의 상황묘사는 정말로 세밀했는데 이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한 장면들을 글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였다면 그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거나 카메라 워크에 따라 시각적으로 처리되는 장면들을 글로써 표현하려니 지나치게 길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이런 방식은 진행이 지루해지는 단점도 있지만, 장면 하나하나를 연출가의 의도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기에는 좋은 방법인 듯 보였다. 글로 읽는 영화한편인 것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 측에게 불리한 증거들이 나오고 수세에 몰리게 되지만 주인공 측 주정뱅이 건물주인의 활약으로(주인공 사무실의 원주인, 변호사 자격이 박탈된) 과거의 사실이 밝혀지면서 재판은 극적으로 일단락된다. 이 소설은 과거의 끔찍한 일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자신의 죽음과 상속을 계획한 남자의 자필 유서가 그들의 암울한 역사를 알리고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그리고 훈훈한 마무리로 마음까지 숙연하게 만들어 주는 소설이다. 400쪽에 달하는 분량의 책 2권, 물론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가독성이 좋아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아마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자국의 독자들과 우리나라의 독자들에게 다가오는 느낌은 굉장히 다를 수 있겠지만 과거의 끔찍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도 충분히 호소력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사 청산, 왜곡된 사실은 바로 잡아야 할 의무가 후손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직면하기 끔찍하지만 우리는 언젠가는 그 사실 앞에 서야하고 처벌과 반성, 위로, 용서의 시간은 꼭 필요하다. 우리에게도 아픈 현대사가 있어 꼭 남의 일 같지 않게 이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에게도 이 법정에서처럼 진실이 밝혀지고 부조리의 추체가 스스로 속죄하는 모습을 볼 날이 있기를 바라는 것은 한낱 소설 속의 꿈에 불과한 것일까.
<열세 번째 배심원> http://blog.daum.net/yoonseongvocal/7343588
<파계 재판> http://blog.daum.net/yoonseongvocal/73436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