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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맨발
한승원 지음 / 불광출판사 / 2014년 4월
평점 :
《사람의 맨발》

종교가 아닌 철학으로써의 불교, 신이 아닌 인간으로써의 부처 나는 이것이 궁금했다. 개신교 쪽에서도 종교, 신으로써가 아닌 그러니까 인간 예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얼마 전 소설 <서초교회 잔혹사>를 읽으며 인간의 탐욕이 신을 무기로 삼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는 지금의 종교들이 제 모습을 잃었다는 것에 깊이 공감한다. 애초에 가르침은 왜곡되고 탈색되고 변색되어 그 누구보다도 더욱 재물과 권력을 탐하는 선봉에 서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런 일은 시대를 초월해 인간이 있는 곳은 어디든 똑 같았던 것 같다. 불교든 다른 종교든 늘 교단은 썩어 있었고 늘 신의 핑계를 대며 약자들을 수탈하고 권력의 정점에서 혹은 권력을 이어가기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싯다르타가 살던 때도 그랬다. 그는 한 나라의 태자로 태어나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다. 그가 태어난 인도는 카스트제도가 견고한 곳으로 이 모든 차별은 '신의 뜻'이라는 말로 합리화 되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왜 인간의 세상에서 인간이 만든 제도와 법과 모순들이 늘 '신의 뜻'이라는 한 마디 말로 합리화되는지, 카스트 제도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하위계급은 늘 수탈당하고 비인간적인 취급을 당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는 한 마디 말로 설명이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진 자는 더욱 가지려 들고, 재물이 쌓이면 색을 탐하고, 권력을 손에 넣고 싶어 하는지 그 원인과 해결책은 무엇인지 싯다르타는 알지 못했다.
싯다르타는 아버지인 왕을 대신해 나라를 통치하면서 이런 모순을 없애려 하였다. 그는 이런 모순을 만들어 내는 카스트제도를 없애기 위해 먼저 사람들을 교화하려한다. 경제제도와 농업을 손보게 되자 나라는 점점 풍요로워졌다. 그리고 그는 카스트 안에도 들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에게도 살 기회를 만들어 주고 이를 자신의 개혁의 시발로 삼으려 했으나 자신의 장인이자 집정대신의 탐욕으로 인해 결국 개혁이 실패로 돌아가고 불가촉천민들은 가진 자들의 노예로 전락하고 싯다르타는 왕보다도 더 큰 권력을 가진 노회한 집정대신에 의해 태자궁에 유폐되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는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야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지, 끊임없이 반복되는 탐욕의 굴레, 인간을 자신의 뜻대로 조정하고 부리는 폭력적인 신, 이런 허위의 신을 없애기, 위해 진정한 개혁을 위해 결국 출가를 하게 된다.

그는 당시 수행자들이 행하던 고행, 천상에서 화려하게 태어나는 것이 목적인 고행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으며 오로지 현실 속에서의 해탈, 신의 뜻이 아닌 인간 중심, 모든 사람들의 근본적인 고통을 없애주는 지혜를 얻기 위한 깨달음을 추구했다. 그는 기도하면 모든 걸 이루게 해 준다는 신이 아닌 스스로 깨달은 자였으며, 철저하게 인간이었고, 혁명가였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를 신으로 떠받들고 있을까. 왜 우리는 절에 가서 불상 앞에서 영험하다는 바위 앞에서 왜 돈 잘 벌게 해달라고, 자식 합격시켜 달라고, 취직하게 해달라고 결혼하게 해달라고 건강하게 해달라고 빌고 있을까. 언제부터 부처가 신이 되었고, 언제부터 불교가 신을 믿는 종교가 되었나. 왜 불사를 일으키고, 등을 달고, 천도 제를 하고, 기왓장을 올리기 위해 신도들에게 돈을 내라고 하는가. 왜 절이, 종단이 재산을 가지고 수행자가 외제차를 가지게 되었는가. 왜 우리는 '혁명가'였던 싯다르타의 삶과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지 못하고 그에게 발 복을 기원하게 되었는가. 이 소설을 읽으며 내내 드는 생각이었다.
그가 살았던 때나 지금이나 형태만 다를 뿐 인간사 내용은 달라진 바가 없다. 그가 살았던 나라는 아직도 계급제도를 유지하고 있다며 미개하다고 욕을 하겠지만, '돈'으로 만들어진 계급은 형태는 없지만 오히려 더 견고하지 않은가. 작가는 그리하여 싯다르타의 성불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출가'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했다. 그는 위대한 혁명가로써 부처가 되어 귀한 가르침을 남겼지만 우리네 삶은 여전히 어둠속을 헤매고 있다. 그러나 나는 가슴이 뛰었다. 인간으로써 싯다르타는 여전히 살아있고 그의 혁명정신 또한 이렇게 기억되고 있으니.
<서초교회 잔혹사> http://blog.daum.net/yoonseongvocal/7343661
<어느 불교 무신론자의 고백> http://blog.daum.net/yoonseongvocal/7343633